【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현대자동차가 대미 투자 전략으로 국감장에 오르내리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산업통상부를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에서 김정관 장관을 소환해 정부의 관세 협상 기조와 다른 행보를 보인 현대차의 개별 대응을 비판한 데 이어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을 향한 책임 추궁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 회장은 오는 24일 산자위 종합감사 증인으로 추가 신청된 상태다.
변수가 없다면 정 회장의 증인 출석은 불가피하다. 15일 현재까지 증인 신청을 한 김종민 의원(무소속) 측은 “철회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산자위 소속 다수 의원들이 증인 신청 취지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져 증인 채택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채택 여부는 간사 협의를 통해 늦어도 17일 전후에 결정될 전망이다. 국회법상 국감장 출석요구서는 증인에게 출석일 7일 전에 송달돼야 한다.
현대차로선 이번 실책이 뼈아플 수밖에 없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략적으로 대미 투자를 확대해 온 현대차는 관세 압박 속에서도 현지화 전략을 유지하며 위기 돌파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 9월 뉴욕 맨해튼에서 개최한 ‘2025 CEO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약 15조3000억원(116억달러)의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기존(88억달러) 계획보다 3조7000억원(28억달러)을 늘려 공격적인 투자 방침을 보여줬다.
미국은 현대차의 최대 수출국이자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실제 현대차그룹의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판매량의 30%, 매출액의 38%를 북미에서 차지했다. 때문에 관세 불확실성에 대한 현대차의 고심이 컸을 것이란 해석이 뒤따른다. 조지아주(州) 소재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현지 이민당국에 의해 구금된 이른바 ‘조지아 구금 사태’ 이후에도 대미 투자 확대를 결단한 것은 나름의 승부수로 읽힌다.
하지만 대미 투자 확대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보도된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WSJ는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력 공세를 펼쳤지만 냉대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무역 정책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을 세웠으나, 고통스러운 오판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지아 구금 사태’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던 현대차의 노력에 성과가 별로 없었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실효성 없이 파문은 컸다. WSJ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현대차가 구금 사태 후에도 260억달러(약 37조500억원) 규모의 미국 투자와 미국 내 생산 확충을 재차 공언했다”면서 “이 같은 전략 때문에 한국 정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현대차의 선제적 투자가 한국 정부의 무역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게 질책 배경으로 설명됐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역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결국 현대차는 산자위 국감에서 질타를 받았다. 지난 13일 김종민 의원은 “통상은 국가 대항전인데, 정부 따로 기업 따로 움직이는 구조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며 현대차의 대응 방식을 문제 삼았다. ‘메인 플레이어’인 현대차가 선제적으로 움직이면서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미국 입장에선 “한국 대표 기업이 관세 부과를 수용할 의지가 있다고 오인했을 수 있다”는 게 김 의원의 지적이다.
이뿐만 아니다. 현대차는 한·미 관세 갈등 국면에서 대미 투자를 강행하면서도 정부와 사전 조율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감장에 출석한 산자부 김정관 장관은 “정부가 현대차·기아 등 업계를 위해 협상에 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움직인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학계 전문가들은 국감장에 오른 현대차 논란을 정부와 기업 간 조율 부재에서 비롯된 통상 전략 실패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협상 전략과 기업의 투자 타이밍이 어긋나면서, 외교·통상 대응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림대 김필수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대규모 투자 자체는 현대차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정부와의 조율 없이 성급하게 발표된 점은 전략적 실수였다”며 “한·미 관세 협상이 가장 민감한 시점에서 기업이 먼저 나서면 정부가 활용할 외교·통상 카드가 줄어드는 만큼, 투자 효과가 오히려 반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도 “현대차가 25% 관세 부담 속에서도 미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 선제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은 기업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을 것”이라면서도 “정부의 협상력 부재 속에 이 같은 투자가 관세 완화 등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만큼, 결과적으로는 오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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