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AI를 쓰겠다면서 시작했지만, 맞나 싶었습니다. 일단 공개하고 '기준'을 잡아주자는 마음이었죠. 복잡한 심경으로 내놓은 영화입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AI를 활용해 완성한 상업 영화 '중간계'를 선보인 강윤성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중간계'를 제작·연출한 강윤성 감독과 AI 연출을 담당한 권한슬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대표를 만났다. '중간계' 제작 과정 및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중간계'는 이승과 저승 사이 '중간계'에 갇힌 사람들과 그 영혼을 소멸시키려는 저승사자들 간의 추격 액션 블록버스터다. '범죄도시' '카지노' '파인: 촌뜨기들'을 연출한 강윤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배우 변요한, 김강우, 방효린, 임형준, 양세종 등이 열연했다.
특히 영화는 강 감독이 25년 전 데뷔작으로 선보이려고 했던 '뫼비우스' 시니라오를 고쳐 AI 영화로 만들게 돼 화제가 됐다. 강 감독은 "디즈니+ '파인: 촌뜨기들'을 찍을 때 KT 쪽으로부터 5분~1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라며 "그럴 거면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말했고, 그러면서 판을 키웠다"고 밝혔다.
이어 "복합적인 상황이 있어서 제작비를 뚜렷하게 말씀드리긴 어렵다"라며 "다만 손익분기점은 20만 명 정도다. AI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80~ 90억 정도 예산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정도 규모의 CG 작업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걸 AI를 활용하면서 절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 감독은 "예를 들면 차랑 폭발 장면의 경우 기존대로 CG만 사용했다면 후반 작업만 4~ 5일이 걸렸을 것이다. 현장에서 테스트를 거쳐 1분 만에 만들었다. 현장에서 바로 만든 폭발 장면을 실제로 영화에 썼다. 그 정도로 엄청난 효율을 가져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권한슬 대표는 '중간계'에 등장하는 크리처를 비롯해 액션 전반을 디자인했다. 그는 이미 국내 AI 창작 영역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순수 생성형 AI로 완성한 단편영화 '원모어 펌킨'으로 제 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 및 관객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권 대표는 "CG에 비해 효율적이라고 해서 AI가 결코 싼 기술이 아니다. 전문성을 가진 장인이 필요한 직군이다. 영화, 광고 등에 사용하는 AI 기술은 하이앤드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유튜브 영상 등에 사용하는 기술과는 다르다"라며 "'중간계'에는 현존하는 모든 기술을 다 썼다. 한 장면을 위해 수십 개를 돌려서 그중 제일 잘 나온 걸 선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기존 CG 회사처럼 60~70명이 함께 체계화된 작업으로 완성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AI를 활용한 장면이 나타날 때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 권 대표는 "제작 단계에서의 AI 기술이 완벽하지 않았다. 실사와 붙는 장면에서는 더욱 그런 걸 느낄 것이다"라며 "작업 기간이 짧았다는 아쉬움도 있다. 실 작업을 5개월 정도 했다면 더 좋아졌을 것이다. 특히나 영화를 만드는 6개월 사이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다. 내년이면 퀄리티가 훨씬 좋아질 것이다. 분명한 건 전 세계 누구도 이 짧은 시간에 이 정도 퀄리티는 못 낸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도자기 하나를 굽기 위해 수백 번 부수고 다시 빚고를 반복하지 않나. AI 작업도 마찬가지다. 모든 창작엔 대충이 없다. 뚝딱 만들더라도 베스트를 '선택'하는 과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AI의 빠른 발전을 우려하고, 반감을 보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계'를 위협받을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권 대표는 "AI는 말 그대로 인공으로 만든 지능이다. 인간의 뇌 구조를 똑같이 카피해 코딩한 것이다. 결국 인간이 창작하는 것과 같다"라며 "이를테면 우리도 살아가면서 많은 걸 보고 학습하지 않았나. 누아르 영화를 봤기 때문에 같은 장르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의 뇌를 컴퓨터 안에 넣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인간이 선택하고, 인간이 결정한다.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 감독도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창작의 영역'이다. 포토샵 등 사람들이 편의성을 위해 사용한 도구와는 달리, AI는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나. 그런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라며 "그러나 중요한 건 만드는 것보다 결정이다. 영화 작업을 할 때도 AI가 도와주면 '이 컷이 좋다' '이 장면을 붙이면 되겠다' '이 음악을 쓰면 좋겠다' 등의 결정은 최종적으로 인간이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강 감독은 "이번 '중간계'에서도 드러났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앞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훗날 AI가 더 발전했을 때 '이병헌 연기 해줘' '설경구 연기 해줘'라고 한다 해도, 실제 배우들이 한 것처럼 감정이 오롯이 전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중간계'는 극 초반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와 강 감독 특유의 쫄깃한 연출로 흥미를 안긴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통 아저씨'(개그맨 이양승)의 등장이 예기치 못한 반전을 선사한다. 몰입도 높은 추격 액션물이 순식간에 B급 병맛 코미디로 뒤바뀐다.
이에 대해 강 감독은 "누구나 예상하는 염라대왕의 모습을 탈피하고 싶었다"라며 "사대천왕을 놀려대고, 통아저씨 특유의 포즈를 잡는 모습들을 충분히 유치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저는 더 유치하고 싶었다. '중간계' 라는 공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에서 벗어났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통아저씨 존재 자체를 좋아했다. 미팅 이후 연기가 안 되는 분인 걸 알았지만, 부자연스러운 게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사실 기획 단계에서는 염라대왕도 AI를 활용하려고 했다. 연기적인 부분이 필요해서 통아저씨를 섭외했는데, 오히려 연기를 잘 못 하는 부분이 좋게 다가왔다. 2편이 제작된다면 통아저씨가 계속 나올 것이다. 캐릭터가 힘있게 계속 밀고 나가면 관객들이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AI 활용을 선도하겠다는 마음으로 '중간계'를 만들었다. 직접 도전해 보니 시간과 예산을 줄인 측면에서 분명히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고충도 있었다.
그는 "기획 단계부터 AI를 쓰겠다고 결정하고 시작했는데, 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때만 해도 AI 퀄리티가 시장에 내놓기 어려울 정도였다"라며 "촬영하면서 풀리는 부분이 많아지더라. 후반 작업할 때 초기와 비교해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안 되는 것들이 되기 시작하고 퀄리티가 보완되면서 극장에 걸어도 되겠다고 판단이 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강 감독은 "사실 시사회 전까지 마음이 복잡했다. 전체 이야기의 절반만 극장에 거는 게 맞나 고민했고, 더 퀄리티를 올리면 좋겠는데 이 상태로 가는 게 맞나 싶었다"라며 "결국 일단 세상에 공개하자고 마음먹었다. 기준을 잡아주자고 생각했다. AI라는 깃발을 꽂고 복잡한 심경에서 내놓은 작품이다"라고 털어놨다.
'중간계'는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끝난다. 다음 시리즈를 암시한다. 첫 편이 잘 돼야 후속편을 만날 수 있다.
15일 전국 CGV 개봉.
뉴스컬처 노규민 presskm@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