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당신이 달라고 해서 막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강산 칼럼] 당신이 달라고 해서 막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매거진 2025-10-15 14:43:29 신고

▲ 강산 작품
▲ 강산 작품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회사에 소문이 난 후,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많았지만, 그중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겠다.

친분이 있지도 않고, 아니 오히려 과거 나와 같은 부서에 있을 때 내게 막말을 일삼던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 퇴직자가 세 분인데, 그분들에게 퇴직 선물로 주려 하니 초상화를 그려드려.”
“제가 그림 그릴 시간이 없습니다.”
“왜? 퇴근하고 뭐 해?”
“퇴근하고 애들 밥 차려주고 집안일하죠.”
“에이~ 그럼 그거 다 하고 저녁 때 그리면 되잖아.”
“저도 쉬어야죠.”
“아이~ 좀 부탁해!”

이번 퇴직자가 누구인지도 모를뿐더러, 솔직히 관심도 없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퇴직하는데, 도대체 내가 왜 그들을 위해 초상화를 그려야 하지? 우리 회사는 엄격한 위계 조직이다. 윗사람의 말은 거절할 수가 없다. 거절하더라도 강압적으로 말하면, 나이와 계급이 낮은 나로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우리 회사는 인사 관련 권한이 상급자와 동료들에게 집중되어 있어,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결국 부탁을 받아들이고 퇴직 예정자 한 분을 만나 사진을 찍은 후, 집에 와서 초상화를 그렸다. 그런데 그리다 보니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근무시간에 그릴 수는 없으니 온전히 나의 개인 시간을 쏟아야 했다.

한 분을 그리고 난 후, 그 상급자에게 전화했다.

“진짜로 못 그리겠습니다. 잠잘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그려야 하는데 너무 힘듭니다.”

그렇게 한 분만 그려드리고 더 이상 그려드리지 않게 되었다.

그 후 그 상급자는 나를 볼 때마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앞으로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강제 ‘재능기부’로 초상화를 그린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차라리 처음부터 못 하겠다고 강하게 말할걸.

상급자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고 상급자의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잠시 사무실에 오라는 것이었다. 궁금증을 안고 사무실에 가자, 그 상급자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앞서 말했듯, 상급자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위압감에 “알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필로 초상화를 그려 조금 가격이 나가는 액자에 고이 넣어 갖다 드렸다. 그런데 표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컬러로 그릴 수 없나?”
“네? 아... 네.”
“컬러로 다시 좀 부탁해.”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존경하지도, 친분도 없는 사람의 초상화를, 단지 상급자라는 이유만으로 내 시간을 쏟아 그리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게다가 그려줬으면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결국 그 상급자의 얼굴을 출력해서 그냥 대고 그렸다. 그리고 색칠 공부하듯 대충 색칠해서 갖다 드렸다. 그제야 그는 만족하는 듯했다. 공짜를 바라고 고마움을 모르는 인간들에게는 성의 있는 그림을 그려줄 필요가 없다. 딱 그 수준으로만 그려줘도 고마워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회사 행사 때 쓸 간판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시간이 없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거의 바짓가랑이를 매달리듯 요청했다.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하자 그다음부터 태도는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마치 나에게 그림을 ‘맡겨놓은’ 사람처럼 굴었다.

“이번 주 내로 가능하지?”
“상사한테 결재받아야 하니까 이왕이면 넉넉하게 서너 점 그려와.”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난다.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내가 바보라며, 결국 내 탓을 한다.

개인적으로도 사진을 보낼 테니 그려달라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려달라고 할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하더니, 승낙하고 나면 하나같이 태도가 180도 바뀐다. 3만 원짜리 기프티콘 하나 보내놓고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안면몰수하는 인간은 나를 더 화나게 했다. 

또 어떤 경우는 줄 생각도 없는데 내 작품이 걸린 공간에 와서, 벼룩시장 물건 고르듯 굴었다.

“내 사무실 벽이 좀 허전해서 그림 하나 걸고 싶었는데 잘 됐다! 난 이거~”
“난 좀 큰 거! 이거!”

이런 인간들의 공통점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모르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다. 정말 너무너무 무식해서 그런 것이라고 결론 내리기로 했다. 안 그러면 더 화가 날 것 같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 쇼윈도의 공예품들이 너무 아름다워 이끌리듯 들어간 곳이 있었다. 당연히 공예품들은 판매하는 작품들이었다. 안에는 4명가량의 다른 사람들이 가게 안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작가님은 몹시 화가 난 투로 그들에게 말했다.

“막 만지지 마세요!! 작품이라구요!!”

그 작가님의 마음에 너무 공감이 갔다. 작품은 그냥 물건이 아니다. 그 안에는 내 역사와 고민, 노력, 자아가 투영되어 있다.

“이딴 그림이 어떻게 몇백, 몇천이야.”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그런 말 하지 마라,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당신들이 달라고 해서 그냥 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작품은 그 작가의 인생 전부라는 것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