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명의 연구를 얼핏보면 '기술이 발전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라는 것으로 '밥벅으면 배가 부르다'는 이론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 세 경제학는 수백 년간 풀지 못했던 장기 성장의 근본적인 수수께끼를 풀었으며, 이를 수학적 엄밀성을 갖춘 이론적 틀 안에 통합했기 때문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성장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외임을 증명 (조엘 모키르의 기여)
"기술이 발전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통념은 직관적으로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 교수의 연구는 정반대의 사실을 밝혀냈다.
바로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정체였다"라는 사실을 먼저 제시했다.
노벨 위원회 의장 존 해슬러(John Hassler) 교수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삶의 수준은 세대 간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며, 새로운 발명으로 인한 짧은 성장기도 곧 사라지고 정체 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인류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지난 200년 동안뿐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모키르 교수의 기여는 바로 이 정체 상태가 깨지고 지속적인 성장 궤도로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를 역사적, 문화적으로 규명한 것이다. 그는 단순히 발명품(know-how)만으로는 성장이 지속될 수 없으며, 혁신이 연속적인 과정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왜 작동하는지(know-why)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필수적임을 설명했다.
2.'창조적 파괴' 개념을 거시경제 모델에 수학적으로 통합 (아기옹과 하윗의 기여)
요제프 슈페터가 1940년대에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를 제시했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묘사하는 철학적이고 서술적인 개념에 머물렀다. 경제학은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는 엄밀한 이론으로 만들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개념'을 '법칙'으로 전환한 공로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 중 아기옹과 하윗의 1992년 논문은 슈페터의 이 통찰을 일반 균형 틀 안에 통합한 최초의 거시경제학 모델을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서술에서 벗어나 다음의 성과를 달성했다.
성장의 내생화: 1950년대의 신고전파 성장 모델(솔로우 모델)은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인 기술을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처럼 취급하여 그 발생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기옹-하윗 모델은 혁신이 기업들의 전략적인 R&D 투자 결정과 이윤 추구 행위의 내생적인 결과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는 성장 이론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자본주의의 '동적인 불안정성' 포착: 이 모델은 성장이 자본 축적처럼 부드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창조)이 기존 기술(파괴)을 대체하는 불연속적이고 경쟁적인 과정임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역동적이고 불안정한 자본주의의 본질을 거시경제학의 엄밀한 언어(수학)로 성공적으로 번역해낸 것이 이들의 최대 학술적 공로다.
경쟁과 혁신의 역U자 관계: 혁신을 극대화하려면 경쟁 강도가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이들은 경쟁이 너무 약해도 (독점이라 혁신할 유인이 적음), 너무 강해도 (이윤이 적어 R&D에 투자할 인센티브가 사라짐) 혁신이 줄어든다는 역U자(Inverted-U) 형태의 복잡한 관계를 입증했다. 이는 정부가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최적의 경쟁 수준을 관리해야 한다는 중요한 지침이다.
혁신은 당연한 보상이 아니다 (갈등 관리의 중요성): 이들의 연구는 창조적 파괴가 기업 파산, 일자리 손실 등 단기적인 파괴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며 , 이러한 부작용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는 기득권층이나 기존 기업들이 혁신을 저지하려 할 위험이 있음을 경고했다. 따라서 혁신을 건설적으로 관리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제도적 노력이 없으면 성장은 언제든 정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를 던졌다.
이처럼 세 학자는 인류의 번영을 이끈 지속 가능한 성장이 역사적, 문화적, 제도적 전제 조건 위에서만 가능하며(모키르), 그 이후에는 기업들의 경쟁적 R&D 투자와 시장 재편(창조적 파괴)이라는 역동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내생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엄밀한 학문적 언어로 통합하고 증명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이론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거시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선구적인 기여'로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유다.
"수천년, 수만년 동안 정체됐던 인류의 삶의 경제 수준이 지난 200년간 폭발적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한 이유를 밝혀냈다."
이같은 이유로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경제학자 조엘 모키르(Joel Mokyr, 79), 필리프 아기옹(Philippe Aghion, 69), 피터 하윗(Peter Howitt, 79) 세 명에게 2025년 노벨경제학상(스웨덴 중앙은행 기념 알프레드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수상 공로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인정됐다.
조엘 모키르 교수에게는 상금의 절반(50%)이 "기술 진보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의 전제 조건을 규명한 공로"로 수여되었고 , 필리프 아기옹 교수(25%)와 피터 하윗 교수(25%)에게 나머지 절반이 "창조적 파괴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의 이론"을 구축한 공로로 공동 수여됐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들의 기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학 내 성장이론의 발전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50~60년대 로버트 솔로우 등에 의해 정립된 신고전파 성장 모델은 [자본 축적+노동 투입]을 통해 단기 성장을 설명했지만, 장기적인 1인당 소득 성장은 오직 [기술 진보라는 외생적 요인(Exogenous Factor)]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 모델은 성장의 근본적인 원천인 기술 진보를 경제 시스템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성장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기옹과 하윗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제프 슈페터가 제시한 '창조적 파괴' 개념을 현대 거시경제학의 엄밀한 수학적 틀 안에 성공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성장이 단순한 자본 축적이 아니라 혁신과 경쟁에 의해 유지되는 불연속적이고 경쟁적인 과정임을 입증했다. 이들의 슈페터리안 성장 패러다임은 성장의 근원을 기업의 전략적 R&D 투자와 시장 리더의 끊임없는 교체에서 찾음으로써, 이전의 모델들이 놓쳤던 자본주의의 역동적인 본질을 포착했다.
특히 202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성장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두 가지 근본적인 축을 통합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정당성이 매우 높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왜 인류는 수천 년의 정체기를 겪었는데 지난 200년 동안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경험했는가?"였다.
조엘 모키르는 경제사학자로서 이 질문에 대한 '선행 조건'을 역사적, 문화적, 제도적 관점에서 제공했다. 그는 지식의 축적, 사회적 개방성, 그리고 제도적 신뢰가 기술 진보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임을 규명하였다. 다시 말해, 모키르는 성장의 엔진을 가동할 수 있었던 '문화적 연료'를 설명했다. 반면, 필리프 아기옹과 피터 하윗은 일단 이러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성장이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동역학적 메커니즘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했다. 그들은 혁신이 시장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창조적 파괴)이 성장을 지속시키는 '엔진 작동 방식'임을 입증했다. 이 세 학자의 연구를 결합하면, 인류가 정체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로 진입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완전하고 포괄적인 인과적 설명을 제공한다.
'잃어버린 아인슈타인' 문제
창조적 파괴는 필연적으로 단기적인 일자리 손실, 기업 파산,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같은 파괴의 결과를 수반한다. 아기옹과 하윗의 이론은 이러한 파괴의 갈등을 건설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혁신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기득권이나 기존 기업들이 혁신을 저지하게 되어 결국 경제가 정체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경고한다.
더 나아가 이들의 연구는 인적 자본과 포용성 문제를 혁신과 연결한다.
'잃어버린 아인슈타인(Lost Einsteins)'이라는 개념은 재능 있는 개인이 사회경제적 배경 때문에 혁신가나 발명가가 되지 못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 특히 R&D 보조금이 필요하다. 대다수의 연구는 R&D 보조금이 민간 R&D 지출을 위축시키기보다 보완하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연구 결과는 인공지능(AI) 주도 성장이 자동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혁신을 장려하고, 혁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예: 대규모 실업, 불평등 심화)을 건설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노력이 뒷받침될 때에만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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