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르쉐, 폭스바겐, 아우디, 람보르기니 등 글로벌 유명 자동차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폭스바겐 그룹의 실소유주인 피에히-포르쉐 가문의 행보에 글로벌 경제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미국 등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덕분에 수십 년 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패권을 지켜 온 피에히-포르쉐 가문의 내력에도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폭스바겐, 포르쉐 등 화려한 명성 뒤에 가려진 소유한 포르쉐-피에히 가문 영욕의 세월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역사는 1931년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설립한 '포르쉐 자동차 설계 사무소'에서 시작됐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현 체코) 출신인 페르디난트는 당시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의뢰를 받아 '대중(Volks)을 위한 자동차(Wagen)'인 폭스바겐 비틀을 설계했다. 히틀러는 그에게 '위대한 독일 공업자'라는 칭호를 수여하고 같은 해 독일 시민권을 부여했다. 1937년에는 나치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페르디난트는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폭스바겐 차량 생산을 계속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같은 해 12월 전범 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1948년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후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3년여 간의 수감생활 동안 생겨난 경영공백으로 사세는 크게 기울었다. 장남 페리 포르쉐가 폭스바겐 비틀의 로열티 수입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긴 했으나 과거의 위상과는 갈수록 멀어졌다.
그 시기 페르디난트의 장녀 루이스 포르쉐는 당시 폭스바겐 그룹의 핵심 임원인 '안톤 피에히'와 결혼해 성을 '피에히'로 바꿨다. 가문의 일원이 된 안톤은 창립자 페르디난트의 이름을 딴 또 하나의 자동차 브랜드인 '포르쉐'를 출범시켰다. 이후 폭스바겐은 페르디난트의 장녀 '루이제 피에히'의 자손들이, 포르쉐는 장남 '페리 포르쉐'의 자손들이 각각 경영을 책임지며 분리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두 가문 소유의 지주회사 '포르쉐SE' 중심의 지배구조 체제도 갖췄다.
그러나 비교적 순탄했던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동행은 3세 경영에 돌입하면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두 가문의 후손들이 '내전'에 가까운 경영권 분쟁을 벌인 것이다. 지난 2005년 페르디난트의 친손자이자 페리 포르쉐의 4남인 '볼프강 포르쉐'가 이끄는 포르쉐는 페르디난트의 외손자이자 루이스 피에히의 아들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이끄는 폭스바겐의 지분을 51%까지 확보하며 경영권 장악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포르쉐는 무리한 지분 인수의 후폭풍을 겪어야 했고 결국 2009년 폭스바겐에 역으로 인수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로부터 약 6년 후인 2015년 4월 두 사람의 운명은 또 다시 엇갈렸다. 당시 폭스바겐그룹 이사회 의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자신이 발탁한 마르틴 빈터콘 전 CEO와의 갈등 끝에 그를 해임하려 했으나 빈터콘을 지지한 이사회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자신이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반면 과거 인수전에서 맞붙었던 볼프강 포르쉐는 폭스바겐그룹 지주회사인 포르쉐SE 회장에 공식 취임했다. 이후 2017년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자신이 보유하던 포르쉐SE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경영 일선에서도 사실상 물러났다.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2019년 8월 독일 로젠하임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식사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120유로➞40유로' 주가 폭락한 위기의 폭스바겐그룹…'신사업·AI' 역발상 베팅 관심
폭스바겐그룹에 대한 피에히-포르쉐 가문의 영향력은 100% 지분을 보유한 '포르쉐오토모빌홀딩스'(이하 포르쉐SE)에서 나온다. 현재 포르쉐SE는 폭스바겐그룹의 지분(의결권 기준) 53%를 보유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포르쉐, 아우디, 스코다, 세아트, 두가티,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유명 자동차·모터사이클 기업을 자회사·손자회사로 두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를 두 가문이 보유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구조다.
최근 폭스바겐그룹은 주력 기업인 포르쉐의 실적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포르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간 15%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폭스바겐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중국 시장에서 BYD 등 현지 전기차 업체들의 공세에 밀리고 미국에서는 보호무역 강화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으며 실적이 급락했다. 특히 올해 2분기 자동차 부문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1% 감소했다.
실적 부진은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과거 120유로에 육박했던 주가는 올해 들어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해 1일(현지시간) 기준 41.59유로까지 떨어지며 고점 대비 약 65% 하락했다. 결국 포르쉐는 독일 시가총액 상위 40개 종목으로 구성된 DAX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포르쉐-피에히 오너 가문은 포르쉐의 실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의 후임자 물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피에히-포르쉐 가문은 기존 자동차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가문의 투자회사인 포르쉐SE는 그레이하운드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 최대 고속버스 회사 플릭스, 드론 제조업체 퀀텀 시스템, 자율주행 트럭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와비 등에 지분 투자를 진행하며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한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5'에선 인공지능(AI) 기술 확대를 전사적으로 추진하겠다며 2030년까지 최대 10억유로(원하 약 1조60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폭스바겐그룹은 AI 기반 차량 개발, 산업용 애플리케이션, 고성능 IT 인프라 확충을 핵심 투자 분야로 제시하며 이를 통해 자동차와 혁신 기술을 더욱 신속하게 시장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계 자동차 업계를 주도해 온 피에히-포르쉐 가문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기술 중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다각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며 "특히 AI 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는 자동차 산업의 혁신을 가속화하고 향후 몇 년간 자동차 외에도 다양한 산업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실적 부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져야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주가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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