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꿈은 바뀌어도 괜찮아요. 무대는 여전히 저의 세상이에요.”
15년 전, 발레리나를 꿈꾸던 열아홉의 소녀 백지윤. 다운 증후군이라는 태어날 때부터의 한계를 안고도, 누구보다 빛나는 춤사위로 관객을 감동시켰던 그녀가 돌아왔다. 단, 이번엔 토슈즈 대신 대본을 들고 말이다. 백지윤(33) 씨는 이제 연극배우로 제2막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백지윤 씨가 처음 발레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무대는 그녀에게 세상을 만나는 창이었다. 하지만 낮은 근긴장도로 인한 잦은 부상은 그녀의 꿈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결국 3년 전, 그녀는 20여 년 가까이 함께했던 발레와 이별했다.
잠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녀에게 날아든 건 연극 오디션 소식. 작품은 '젤리피쉬'. 다운 증후군 여성의 삶을 그린 이야기로, 지윤 씨는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다시 무대에 서는 게 두려웠지만, 대사를 외우는 것도,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첫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그녀는 두 번째 무대를 준비하게 됐다.
두 번째 공연은 연극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 명동예술극장. 수백 줄이 넘는 대사, 극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주인공의 무게. 지윤 씨의 어깨는 무거웠지만, 눈빛은 오히려 더 반짝였다.
“무대에서 살아있다고 느껴요. 대사가 내 얘기 같아서, 더 몰입돼요.” 프롬프터 배우와 연출진, 동료들의 배려 속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연기를 쏟아냈다.
하지만 첫날 공연,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으로 무대를 잠시 비우는 일이 생겼다. 그럼에도 지윤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무대에 올라 마지막까지 무사히 공연을 마쳤고,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응답했다.
그날, 영국 원작자 벤 웨더릴 역시 지윤 씨의 무대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무대 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You were incredible.”
연극에 이어 그녀가 선택한 다음 무대는 뮤지컬. 최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통합 예술극단에 합류한 그녀는 노래라는 또 하나의 도전에 나섰다.
프로필 촬영이 있던 날, 연습실에는 낯선 설렘이 찾아왔다. 발레리노 출신의 한 비장애인 남성 단원이 등장하자, 지윤 씨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드라마 속 결혼식은 해봤지만, 진짜 사랑은 나와 먼 얘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33세, 백지윤. 배우로, 친구로, 딸로, 그리고 한 사람의 여자로서 그녀는 여전히 날아오르는 중이다. 무대가 바뀌었을 뿐, 그녀의 꿈은 더 넓어졌다.
오는 13일부터 17일 오전 7시 50분 KBS1 '인간극장'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브라운관에 펼쳐진다. 발레리나에서 연극배우,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 백지윤의 아름다운 여정은 지금도 계속된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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