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의 시선N] 연극 '에쿠우스’, 50년을 지나 다시 맞서는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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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섭의 시선N] 연극 '에쿠우스’, 50년을 지나 다시 맞서는 불편한 진실

뉴스컬처 2025-10-12 00:00: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975년, 서울 대학로. 극단 실험극장은 하나의 파격적인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 말의 눈을 찌른 한 소년과, 그를 이해하려는 정신과 의사라는 줄거리만으로도 충분히 이목을 끌었지만, 그 이상으로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이 연극이 다루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억압, 신과 욕망에 대한 통렬한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2025년, 이 불편한 고전이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른다. 극단 실험극장은 ‘에쿠우스’의 한국 초연 50주년을 기념하며 시대와 예술, 인간을 다시 마주하는 질문의 장으로서 이 작품을 새롭게 내놓는다.

‘에쿠우스’는 광기 어린 범죄를 심리적으로 해부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작품은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찌른 알런 스트랑이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의 행동을 병리학적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는 병든 사회의 피사체이며, 동시에 신성을 갈망한 인간의 상징이다. 소년을 치료하는 다이사트 박사는 알런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믿어온 삶의 궤도를 흔들리게 만든다. 박사는 알런의 광기 속에서 오히려 ‘진정한 열정’의 실체를 본다. 이 모순과 반전의 구조는 관객에게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는가.

연극 '에쿠우스' 포스터. 사진=극단 실험극장
연극 '에쿠우스' 포스터. 사진=극단 실험극장

이번 시즌은 연출가 이한승이 다시 한 번 지휘봉을 잡았다. 2014년부터 ‘에쿠우스’를 여러 차례 연출해온 그는 50주년 공연에서 한층 더 과감하고 밀도 있는 구성을 시도한다. 가장 큰 변화는 인터미션의 제거다. 110분간 이어지는 공연은 단절 없는 서사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다. 극의 정서적 곡선을 끊김 없이 전달하고, 관객이 인물의 심리와 함께 끝까지 가도록 유도하는 전략적 연출이다. 관객은 무대 앞에 앉은 ‘구경꾼’에서 어느새 인물들의 내면을 함께 목격하는 ‘증인’으로 변화한다.

미술, 조명, 음악, 배우의 움직임까지 모든 요소는 절제와 상징에 초점을 맞춘다. 말은 실제로 등장하지 않지만, 가면과 몸짓, 그리고 빛의 조합을 통해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대는 비워졌고, 그 비어 있음은 관객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관객은 알런의 열망, 다이사트의 회의, 그리고 사회의 위선을 고스란히 맞닥뜨린다. 그로 인해 작품은 무대 위 이야기가 아닌, 무대 밖 관객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2025년 오늘, ‘에쿠우스’가 우리에게 주는 질문은 더욱 절실하다. 극단적 범죄와 청년의 고립, 종교적 왜곡, 불안정한 정체성과 압박받는 성적 자아는 더 이상 연극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알런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는 체벌에 익숙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가정 안에서, 감정을 해석받기보다 판단당하는 청소년으로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또다시 범주화하고 배제할 것인가.

‘에쿠우스’는 회고 공연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술이 던지는 고발이자 성찰이다. 특히 지금처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정상이라는 규범이 지나치게 협소해진 시대에, 이 작품은 위험할 정도로 중요한 목소리를 낸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억누르며 살아가는가? 그 억압의 끝에서,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신을 만들고 파괴하는가?

무대 위 알런은 말의 눈을 찌르지만, 실상 그가 겨눈 것은 자신을 가둔 세계다. 그는 단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 연극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조명이 꺼지고 배우가 퇴장한 뒤에도, 그 질문은 객석에 남는다. 진정한 연극은 무대에서 사라진 후에도 우리 안에서 계속 말하는 법이다. 그리고 ‘에쿠우스’는 바로 그런 연극이다.

예술은 때로 불편함을 견디는 훈련이다. 연극 ‘에쿠우스’는 그 불편함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지금, 그 불편함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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