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봐도 출간하자며 낸 소설, 7년 뒤 노벨문학상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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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봐도 출간하자며 낸 소설, 7년 뒤 노벨문학상으로 화답했다

연합뉴스 2025-10-11 06:42: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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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등 6종 단독 출간한 알마출판사 안지미 대표

"손익 내기 어려운 크러스너호르커이 소설, 신경 안 쓰고 출간했죠"

안지미 알마출판사 대표 안지미 알마출판사 대표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은중은 영화제작사 프로듀서(PD)다. 은중의 취미는 영화 감상이다. 거의 모든 개봉작을 본다. 술자리에서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고 은중은 마이크 리 감독이 연출한 '세상의 모든 계절'(2011)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9) 같은 '예술영화'를 언급한다. 하지만 그런 영화는 그저 "선물 같은 것"이라며 어떤 영화를 만들든 손익분기점(BEP)을 넘기는 게 PD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알마출판사의 안지미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가 바라는 건 베스트셀러까지는 아닐지라도 BEP를 넘기는 것이다. 그게 직원 3명의 월급을 줘야 하는 출판사 대표의 의무라면 의무다. 하지만 가끔은 '선물 같은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돈이 안 되더라도, 좋아하는 책을 내고 싶다고 한다.

안 대표는 지난 1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출판사 대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매번 책을 출간할 때마다 손익분기점을 따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으로 낸 책이 올해 노벨문학상에 호명된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들이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 중 한 장면 드라마 '은중과 상연'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크러스너호르커이를 알게 된 건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 때문이 아니다. 안 대표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벨라 타르의 영화 '사탄탱고'(1994)를 훨씬 먼저 봤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스크린에서 소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카메라 무빙을 따라가면서 '경탄'과 '지루함'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봤던 예술영화. 밀레니엄이었던 2000년 어느 늦은 밤 극장으로 들어가 동창이 밝은 아침까지 그를 붙잡아뒀던, 7시간 18분짜리 영화.

"20여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어요. 타르코프스키도 그렇고, 벨라 타르도 그렇고, 볼 때는 고통스럽습니다. 중간에 졸기도 하고, 허리가 아프기도 하죠. 하지만 보고 나선 엄청난 (감정의) 후폭풍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 고통 속으로 다시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시 보게 되는 그런 존재들인 것 같아요. 어떤 영화들은 말이죠."

사탄탱고 중 한 장면 사탄탱고 중 한 장면

책을 읽고 원작의 번역본을 낸 건 그로부터 한참 후다. 2018년에야 비로소 소설 '사탄탱고'가 출간됐다. 헝가리 원어가 아닌 영어 중역이었다. 한 장면을 길게 찍는 롱테이크로 꽉 채워진 타르의 '사탄탱고'는 동명 소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타르가 롱테이크를 썼듯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긴 문장을 썼다. 만연체 문장은 정말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분위기 덕택에 영화는 초긴장하면서 보게 되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이 소설(사탄탱고)은 정말 1~2초만 딴생각을 해도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읽어야 합니다. 작가의 문장이 길게 흐르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정말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요. 앞으로 돌아가서 읽는 일을 거의 무한히 반복하면서 그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난한 노력 끝에 비로소 예술이 열어주는 하나의 경지에 가닿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안 대표는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만든) 세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예술의 경지)가 크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책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알마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알마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알마출판사는 국내에 번역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소설 6종을 모두 선보였다. '사탄탱고'를 시작으로 '저항의 멜랑콜리'(2019), '라스트 울프'(2021), '서왕모의 강림'(2022), '세계는 계속된다'(2023),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2024)이다. 내년 1월에는 '헤르쉬트 07769'도 번역돼 출간된다. 이 판권이 종료되고 나면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소설 판권을 다시 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안 대표는 예상했다. 노벨문학상으로 주가가 올라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는 돈이 되지 않지만, '선물 같은' 소설들이기에 이들 작품을 번역해 출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핀치에 몰릴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방씩 터진 다른 작품들이 출판사를 지탱해줬다. 호프 자런의 '랩 걸'과 권일용 등이 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방송에 추천 책으로 소개되면서 판매가 급격히 올라갔다.

출판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랩 걸' 출판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랩 걸'

[알마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안 대표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굳이 손익을 따지면 계속 내기가 어려웠지만, 신경을 쓰지 않고 냈다"고 했다. 그렇게 꾸준히 낸 책이 7년 만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다.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 이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3대 서점의 베스트셀러 1위를 싹쓸이했다.

안 대표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책들은 잘 읽히는 문학이 아니고, '허들'도 상당히 높다. 초반에는 호기심 때문에 많이 주문하실 것 같은데, 뒷심을 얼마나 발휘할지는 예측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2025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2025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로이터=연합뉴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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