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추석 밥상에 송편보다 ‘정치이슈’가 더 많았다. 민족 최대 명절임에도 여야는 휴전을 택하지 않았다. ‘냉부해 논란’과 ‘건국전쟁2’ 공방으로 얼룩진 연휴는 국민의 피로감만 더했다.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다음 주 국정감사로 향한다. 명절 여진이 곧 ‘정치 전쟁’으로 번질 조짐이다.
정쟁의 문법, 정치는 쉬지 않는다
정치는 늘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예외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귀향 인사 대신 여론전에 집중했다. 민심 청취보다 상대를 향한 공격 메시지가 앞섰고, 명절 덕담 대신 논평과 해명이 오갔다. 국민이 송편을 빚는 동안, 정치권은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명절 정치는 통상 ‘민심을 읽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번 연휴는 ‘전략의 시간’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냉부해’(냉장고를 부탁해) 출연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건국전쟁2’ 관람이 맞물리며 정쟁은 불붙었다. 두 사건은 각각 여야의 프레임 전쟁의 핵심 무기가 됐다.
정치문법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필연적이다. 큰 정치 일정이 다가올수록 ‘휴전’은 불가능하다. 여론의 흐름을 선점하기 위해 정치권은 명절마저 ‘서사적 무대’로 활용한다. 한 장의 사진, 한 문장의 논평이 여론의 축이 되는 시대, 정치는 쉼을 모른다.
이번 추석 정치는 결과적으로 ‘쉬는 자는 잊힌다’는 정치의 냉정한 문법을 다시 입증했다. 여야 모두 쉼 대신 상대를 공격하는데 힘을 쏟았고, 국민은 그 피로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추석이 끝나도 정치의 휴일은 오지 않는다.
명절은 민심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한가위, 정치권은 그 민심을 여론전의 도구로 바꿔버렸다.
명절 밥상까지 점령한 ‘냉부해’ vs ‘건국전쟁2’
올 추석 정치권을 뒤덮은 단어는 ‘냉부해’였다. 대통령 부부가 JTBC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의힘은 즉각 공세에 나섰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가 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방송 녹화에 나섰다”는 비판이었다. 대통령의 친근 행보가 ‘리더십의 가벼움’으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민주당은 즉각 반격했다. “K-푸드 홍보를 위한 외교 일정이며, 재난 대응은 차질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실의 대응은 미숙했다. 화재 회의와 촬영이 같은 날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은폐 의혹’이 번졌다. 정치문법의 핵심은 ‘진실’보다 ‘설명력’이다. 정부는 타이밍을 놓쳤고, 프레임은 이미 만들어져버렸다.
이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건국전쟁2’ 관람 논란도 불을 붙였다. 제주 4·3사건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장 대표가 “열린 역사관이 필요하다”고 발언하자, 민주당은 즉시 “극우 역사관 옹호”로 몰아세웠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관람 인증까지 겹치며 논란은 확산됐다.
결국 추석 밥상 위에는 송편보다 논쟁이 더 많았다. 정치문법상 ‘프레임’은 감정으로 작동한다. 냉부해와 건국전쟁 논란은 정책보다 감정의 전선을 만들었다. 국민의 식탁은 대화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의 실험장이 됐다. 정치는 의제를 놓고 싸운다. 그러나 이번 추석의 정치는, 감정을 놓고 싸웠다.
추석 민심 해석도 동상이몽
명절 민심은 언제나 정치의 나침반이다. 그러나 이번 한가위, 여야의 나침반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민주당은 “개혁에 힘을 실어준 명절”이라 했고, 국민의힘은 “불안과 분노가 폭발 직전이다”고 했다. 같은 민심을 두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다.
정청래 대표는 “국민이 내란 종식과 민생 회복을 명령했다”고 말했다. 반면 장동혁 대표는 “민심의 핵심은 ‘살기 어렵다’는 절규였다”고 단언했다. 여야는 모두 ‘국민의 뜻’을 자신들의 논리에 맞게 해석했고, 그 속에서 국민의 실질적 목소리는 묻혔다.
정치문법의 차원에서 ‘민심’은 사실보다 상징에 가깝다. 여야 모두 민심을 ‘확증 편향’의 근거로 사용했다. 민주당은 소비쿠폰과 민생정책으로, 국민의힘은 물가와 부동산 불안으로 각각 ‘자기 민심’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민심 해석의 평행선은 결국 ‘정치적 자기확신’의 결과다. 양당 모두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었다. 민심은 존재했지만, 그 해석은 정치적 계산에 묻혔다. 민심은 존재하지만, 그 민심을 번역하는 자마다 다른 언어로 말한다.
냉전(冷戰)의 서막, 국정감사
명절의 여론전은 곧 국감의 전초전이었다. 오는 13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공식 검증대다. 여야 모두 ‘전면전’을 예고하며 전열을 정비했다. 이번 국감은 단순한 질의응답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의 전장이다.
국민의힘은 김현지 제1부속실장 증인 출석을 고리로 대통령실의 인사 문제를 파고들 예정이다. ‘증인 회피용 인사’ 프레임으로 대통령실을 겨냥하고,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체포 논란을 ‘야당 탄압’과 연결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반대로 윤석열 정부의 인사 적폐와 공공기관 ‘알박기’ 문제를 부각시켜 ‘청산과 회복의 국감’을 선언했다. 내란 종식, 대왕고래 프로젝트, 공공기관 인사 논란 등 과거 정부의 흔적을 다시 소환하며 ‘정당성 회복’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정치문법상 국감은 정책의 장이 아니라 프레임의 전장이다. 각 당은 국민에게 보여줄 ‘한 장면’을 위해 각본을 짜고 있다. 질문보다 목소리, 근거보다 이미지가 우위를 점한다. 국감의 본질이 ‘감사’가 아니라 ‘공세’로 치환되는 이유다. 국감은 국정의 거울이 아니라, 정쟁의 스크린이 된다.
왜 우리는 피곤한가
명절은 국민의 마음을 잇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 정치는 그 마음의 틈을 파고들었다. 정쟁은 쉼 없이 이어졌고, 국민은 정치의 소음을 견뎌야 했다.
정치의 본질은 협의와 조정이지만, 현실의 정치는 대결과 과시로 움직인다. 정치인은 침묵보다 말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 결과, 국민은 정치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명절의 ‘정’은 사라지고, 불필요한 정쟁으로 ‘미움’만 남았다.
정치의 언어가 현실의 언어를 압도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피로해진다. 국민이 쉼을 원할 때조차 정치가 멈추지 않는다면, 신뢰의 공간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여야의 공방이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가, 정치가 ‘듣는 법’을 파악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정치가 국민의 언어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음 명절에도 평화는 없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다 말할 때, 국민은 조용히 묻는다. “왜 우리는 피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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