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9월 수출 최대치의 이면, 기회인가 경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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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9월 수출 최대치의 이면, 기회인가 경고인가

비즈니스플러스 2025-10-10 08:48:43 신고

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미국과의 관세협상 난항으로 9월 대미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2.3% 감소한 19억1000만달러로 집계됐지만 유럽연합(EU) 국가에 대한 수출액은 7억달러로 54% 늘어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2020년 개봉한 덴마크 영화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가 생각났다.

영화는 갱단의 폭발물 테러 때문에 아내를 잃었다고 확신한 현직 군인 마르쿠스가 처절한 복수를 감행한다는 단순 스토리인데 빅데이터 연구가인 오토라는 또 다른 주인공의 역할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오토는 빅데이터 전문가인데 문제에 휘말리기 전에 자기가 소속된 회사에서 해고되는 불운을 겪는다. 46주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오토는 "덴마크 사람들은 소득수준에 따라 현대기아차, 피아트, 테슬라, 벤츠 등을 구매한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회사 고위 간부는 "서민층이 기아차를 사고 부유층이 고가 벤츠를 산다는 것은 (덴마크 사람들에게) 상식인데 그걸 연구한다고 1년을 허비했느냐"고 질타하고 오토를 해고한다. 

불운이 겹친 오토는 우연한 기회에 열차사고 이면에는 경쟁 갱단 수장을 제거하려는 또 다른 갱단의 음모가 있었음을 확신하고 그 사고로 아내를 잃은 마르쿠스를 찾아가 나름 수집한 빅데이터를 증거로 제시한다.

영화에서 한 번 스쳐가는 장면이지만 현대기아차가 덴마크 서민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차는 역시 싸다"고 곡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역시 강남 부유층 사이에서는 비싼 독일차를 산 뒤 시위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 양재 사옥. /사진=현대차·기아
현대차·기아 양재 사옥. /사진=현대차·기아

현대기아차가 미국의 관세폭탄을 피해 유럽 등 여타 지역으로 수출을 다변화해서 위기극복의 단초를 마련해간다는 소식은 덴마크 영화의 한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가치가 만만치 않음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수출을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순수전기차(EV)·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와 내연기관차 수출이 모두 증가하면서 역대 9월 중 최대 실적인 64억달러를 기록했다. 우리 차가 서민들은 물론 다양한 소비층을 공략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앞에 언급한 영화는 2020년에 나온 작품인데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유럽 지역의 친환경차, 전기차 추세에 발맞추어 시장공략을 적극화한 것이 주효했으며 기업 이미지는 더욱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평가된다.  

인포그래픽 전문미디어 '비주얼 캐피탈리스트'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르노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유럽지역에서 판매실적이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으며, 두 회사 모두 매출의 43%가 하이브리드 또는 EV에서 나왔다.  

◇9월 수출실적에서 읽히는 수출다변화 전략의 내면 그리고 '리드타임'의 경고 

9월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2.7% 증가한 659억5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긴장하고 있던 국민들에게는 한줄기 희망을 보여주였다.

물론 조업일수를 감안하면 일평균 수출액은 27억5000만달러로 6.1% 줄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9월 조업일수는 24일로 전년(20일) 대비 4일 많았지만 10월에는 아주 긴 추석연휴가 끼어 있어 실적악화는 이미 예고되어 있다. 때문에 한 달 실적을 갖고 터무니없는 자신감으로 미국과의 관세협상 전략을 짜는 것은 위태로운 일임도 분명하다. 

2025년 9월 현재(증감률은 전년동기대비 %) / 자료=산업통상부
2025년 9월 현재(증감률은 전년동기대비 %) / 자료=산업통상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 수출 실적은 분명 우리 경제구조가 매우 탄력적으로 변화하고 적응하고 있음을 확인해준 반가운 뉴스임에는 분명하다. 

9월 주요품목 수출 실적을 보면 자동차 외에도 반도체 수출이 인공지능(AI) 서버를 중심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메모리가 강한 수요를 보이는 가운데 메모리 고정가격도 양호한 흐름을 지속하면서 사상 최대치인 166억1000만달러로 22.0% 늘었다.

선박 수출은 21.9% 증가한 28억9000만달러로 7개월 연속 늘었고 이밖에 일반기계(10.3%), 석유제품(3.7%), 선박(21.9%), 차부품(6.0%), 디스플레이(0.9%), 바이오헬스(35.8%), 섬유(7.1%), 가전(12.3%) 등 주력제품은 아직까지는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9월 수출 실적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앞서 언급한 자동차 외에도 반도체 부문에서 미국 이외 지역에 대한 수출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의 반도체 수출은 약 102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했지만 EU에의 수출액은 늘었는데 이는 유럽지역의 친환경차 및 산업재 수요 증가로 반도체 수요도 동반 상승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세안(ASEAN) 대상 수출구조를 보면 중저가 소비재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5년 9월 현재(증감률은 전년동기대비 %) / 자료=산업통상부
2025년 9월 현재(증감률은 전년동기대비 %) / 자료=산업통상부

수출지역이 다변화하고 있는 것도 확인이 가능하다. 대 아세안 수출은 17.8% 늘어난 110억6000만달러를 기록했고 EU지역으로는 무려 19.3% 증가한 71억6000만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대치를 보여주었다. 이밖에도 중국이 0.5% 플러스(116억8000만달러)로 전환했고 중남미는 34% 늘어난 30억3000만달러, CIS(독립구가연합) 국가들에 대한 수출은 54.3% 늘어난 15억2000만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하지만 일부 품목에서 밀어내기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EU가 역내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철강 수입 쿼터(할당량)를 절반으로 축소하고 철강 관세를 50%로 높이겠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EU는 수입 철강 제품에 적용하는 글로벌 무관세 쿼터를 작년 기준 연간 3053만톤에서 1830만촌으로 47% 축소하고, 쿼터 외 수입 물량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EU에 철강을 총 393만톤을 수출했는데 이는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물량이다. 

수출 실적을 볼 때 당장 그때 그때 숫자보다는 '리드타임'(Lead Time)이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리드타임은 고객이 주문을 한 시점부터 제품이나 서비스가 실제로 전달되기까지 소요되는 모든 시간을 말한다. 

2025년 9월 현재(증감률은 전년동기대비 %) / 자료=산업통상부
2025년 9월 현재(증감률은 전년동기대비 %) / 자료=산업통상부

대부분 우리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수요예측시스템(SCM·Supply Chain Management)을 통해 리드타임을 조정한다. 관련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통 한 타임을 정리하는데 전자제품의 경우 6개월, 자동차 등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틀어지자마자 타 지역으로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 재고 물량이 단기간에 해외로 출하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밀어내기 수출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앞으로 몇 개월 안에 심각한 수출 공백과 가격 붕괴로 이어질 위험을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미국에의 수출이 줄어들어 기타 지역으로 수출을 늘리기 위한 가격인하 정책은 반드시 후과가 따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일시적으로 미국 외 지역에의 수출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또 그래야만 하지만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꾸준히 6~7위를 차지했던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순위가 10위로 내려앉은 사실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한국무역협회가 미국 상무부 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미국이 수입한 한국 제품은 총 756억달러(약 108조원)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한국보다 순위가 낮았던 대만, 아일랜드, 스위스가 올해는 한국을 추월했다.  

◇불투명한 한미 관세협상의 막전막후, 속도보다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국과 미국 양국은 지난 7월 미국으로 수입되는 한국산 제품 등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15%로 잠정 합의했지만, 그후 70일이 지나도록 전제조건인 3500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패키지를 놓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당장 현금을 투입하는 방식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잠정합의 이후 대미 투자에 대해 일관되게 현금성 직접 투자(up-front payment) 방식을 거론하고 있어 평행선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로 다가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극적인 대미 관세협상 타결을 노리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PEC 때 한국에서 와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만 만나고 그냥 떠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분위기는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경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지난달 29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트럼프가 한국으로부터 받을 3500억달러의 사이닝보너스는 불확실하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 사진=포브스 웹사이트 캡처
미국 경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지난달 29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트럼프가 한국으로부터 받을 3500억달러의 사이닝보너스는 불확실하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 사진=포브스 웹사이트 캡처

이와 관련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의 윌리엄 페섹 기고가는 최근 포브스 기고문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관세율을 더 올리거나 심지어 K팝 공연에도 막대한 세금을 부과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페섹은 "한국이 트럼프 진영으로부터 곧 몇 차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 상호관세를 무효로 판결할 가능성을 엿보며 시간을 끄는 작전을 펼칠 수 있고 이러한 작전은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페섹 기고가는 설명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와 관련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가 한·미 통상협상의 최대 쟁점인 3500억달러 대미 투자펀드와 관련해 미국 측에 양해각서(MOU) 수정안을 발송했다면서 "낙관하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는 해피엔딩(happy ending)이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김 실장은 그같은 전망의 근거로 미국이 제조업을 부활시키는데 한국 기업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한 비중은 36.6%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육박할 때도 있었다. 때문에 9월 실적 하나만 놓고 미국 시장을 놓치더라도 다른 나라들로 수출을 늘리면 된다는 생각은 일시적인 방편은 될지 몰라도 해법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갑자기 959억달러(지난해 기준)의 미국 대체시장을 만들려면 덤핑수출은 불가피하고 그렇게 될 경우 당연히 미국에게 당한 것 이상의 반덤핑관세에 마주할 것이다. 

미국 시장은 한국 경제에 있어 단순한 수출처가 아니라 기술, 투자, 전략적 협력의 복합적 파트너다.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무모하고 모진 통상전략에 국내 일각에서 반미, 반트럼프 정서가 거세지고 있지만, 언론이나 민간 영역은 몰라도 집권여당에서 그같은 정서에 편승하는 레토릭이 반복되는 것은 결코 좋은 협상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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