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LG그룹 최초의 여성 사장 타이틀을 달고 화려하게 LG생활건강의 수장 자리에 올랐던 이정애(62) 사장이 내년 3월 정기 임기 만료를 약 6개월 앞두고 최근 전격 용퇴를 결정했다. 이는 단순히 '후진에게 길을 터 주는 용퇴'라는 공식 입장을 넘어, LG생활건강이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건이나 다름없다. LG생활건강은 "이정애 사장의 사의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LG생활건강은 정기 인사에 앞선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고 외부 전문가인 이선주(55) 사장을 신임 CEO로 선임하는 '선장 교체' 초강수를 뒀다 .
당초 이정애 사장은 LG생활건강의 음료 사업부장 시절 조직 운영의 안정화와 포트폴리오 균형 관리에 대한 역량을 인정받아 2022년 말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었다. 이는 중국 럭셔리 뷰티 의존도가 초래한 리스크를 경험한 LG그룹이, 차석용 전 부회장의 인수합병(M&A) 중심의 공격 경영 대신, 내부 효율성 강화와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둔 리더십을 원했음을 시사했었다. 따라서 이정애 사장은 '상생 중심의 리더십'으로 내부적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조직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
전략적 방향: 브랜드 정비와 글로벌 재편
이정애 CEO가 취임한 뒤 내세운 핵심 전략은 '브랜드 정비와 글로벌 사업 리밸런싱'을 통한 사업 구조의 고도화였다. 그녀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비중국 판로 개척에 주력하여 전사적으로 고른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이를 위해 '더후(后)' 리브랜딩, 북미 색조 브랜드 '더 크렘샵' 완전 인수 , 그리고 국내 유통 채널(올리브영, 쿠팡) 입점과 같은 채널 다각화를 추진했다.
이정애 전 사장을 중도 퇴진시킨
LG생활건강 화장품 부문 그래프
실패의 결정타: 82분기 만의 적자 쇼크
이정애 CEO의 글로벌 리밸런싱 노력에도 불구하고, LG생활건강은 올해 들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며 CEO 교체의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했다.
이정애 CEO 용퇴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2025년 2분기 화장품 사업 부문에서 82분기 만에 적자를 기록한 어닝 쇼크였다 . 이는 2005년 이후 약 20년간 이어져 온 화장품 사업의 이익 창출 역량이 근본적으로 붕괴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실적 부진은 그의 임기 내내 이어졌다. 2023년 연결 매출액은 전년 대비 0.1% 증가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5.7% 감소한 4,590억 원을 기록하며 수익성 방어에 실패했다.
구조조정의 역설과 수익성 회복 지연
이정애 CEO는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화장품 부문의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나 , 이는 단기적으로 고정비 부담과 초기 투자 비용 증가를 초래하며 재무적 압박을 가중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
증권가에서는 "기존 고마진 채널(면세/방판)의 매출 감소가 이어지는 반면, 새롭게 투자하는 신규 채널들이 아직 정상적인 이익 체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수익성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이정애 CEO 체제에서 LG생활건강이 겪은 또 다른 심각한 위기는 시장 지배력 상실이었다.
LG생활건강은 한때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K-뷰티 시장의 투톱으로 불렸으나, 디지털 기반의 신흥 뷰티 기업인 에이피알(APR)에 시가총액을 추월당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 이는 LG생활건강이 전통적인 유통 및 럭셔리 마케팅에 의존하는 사이, 시장이 이미 뷰티 테크와 D2C 채널 (Direct to Consumer·온라인몰,SNS 등 소비자 직접판매 방식)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음을 의미한다.
가전제품 팔듯 뷰티 기기 판매?
APR이 뷰티 디바이스 '메디큐브'를 통해 기기와 화장품의 연계 구매를 유도하며 D2C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반면 , LG생활건강이 2017년 선보인 'LG 프라엘'은 가전제품의 관점에서 뷰티 기기를 판매하는 데 그쳐 화장품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다라 이정애 CEO도 '브랜드 정비'를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전반의 디지털 전환 및 시장 민첩성 확보라는 근본적인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뼈아픈 현실 직시 이선주 구원투수 영입
이정애 CEO는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으나,화장품 부문의 역사적 적자라는 뼈아픈 현실은 그의 조기 용퇴를 필연적인 결과로 몰아갔다. 그의 사임은 LG생활건강의 위기가 더 이상 내부 역량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경영진의 판단을 반영하며, 글로벌 감각과 브랜드 마케팅 전문성을 가진 외부 전문가(이선주 사장)를 긴급 수혈하는 초강수를 둘 수 밖에 없었다 .
이선주 사장의 영입은 LG생활건강이 과거의 성공 방정식과 내부 관행에서 벗어나, 글로벌 지향적인 마인드셋과 새로운 채널 전략을 주입하기 위한 구조적인 '피벗(Pivot·방향전환)'을 단행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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