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빠름의 시대, 느림을 사유하는 연극 '도시늘보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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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N] 빠름의 시대, 느림을 사유하는 연극 '도시늘보 표류기'

뉴스컬처 2025-10-07 04:00: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도시는 빠르다. 아니, 너무 빠르다. 속도는 미덕이 되고, 방향보다 가속이 더 중요한 시대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조차 점점 잊어간다. 극단 뜬,구름의 신작 연극 '도시늘보 표류기'는 이 급류 속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는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한다.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 극장 봄에서 공연되는 이번 작품은 극단 뜬,구름의 '도시 숲의 생태학 프로젝트' 두 번째 시리즈다. 전작 '판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릴 수 없다'가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을 비춰보았다면, '도시늘보 표류기'는 무기력과 불안, 그리고 현대인의 표류에 주목한다. 작품의 중심에 놓인 '도시늘보'는 '도시'와 '느림보'의 합성어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방향 없이 표류하는 인간의 초상을 나무늘보의 이미지에 빗대어 조형한 개념이다.

연극 '도시늘보 표류기' 포스터. 사진=극단 뜬,구름
연극 '도시늘보 표류기' 포스터. 사진=극단 뜬,구름

연출을 맡은 이민기는 이번 작품에서 극단이 그간 다뤄온 키워드 속도, 욕망, 불안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구성해낸다. 작품의 서사는 단선적이라기보다 파편화되어 있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메타적으로 풀어내며 정처 없이 떠돈다.

이러한 구성은 건축가 렘 콜하스가 말한 ‘정크스페이스(Junkspace)’ 개념을 빌려온 무대와 맞물리며, 무대 자체가 사회의 과잉을 은유하는 거대한 오브제가 된다. 무대 위 소품과 장면들은 질서 없이 뒤엉켜 있고, 이는 정체성을 잃은 현대인의 내면 풍경이기도 하다.

'도시늘보 표류기'는 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자기 반성적 접근이기도 하다. 무대 위 배우들은 끊임없이 작업을 시도하지만, 그 과정은 끊김과 멈춤의 연속이다. 이것은 단지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인간 존재의 상태를 은유한다. 특히 '슬로쓰, 슬로쓰, 퀵 퀵, 슬로쓰'라는 리듬은 이 작품이 지닌 아이러니한 정서를 상징한다. 느림과 빠름, 움직임과 멈춤, 생산과 과잉 사이의 긴장은 이 연극의 정서적 축이다.

이러한 극단 뜬,구름의 실험은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길을 잃고 표류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작품 안의 물음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방향 감각에 대한 되물음이기도 하다. 뜬,구름은 이번 작업을 통해 속도 중심의 세계 속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틈을 제안한다. 그것은 회피나 후퇴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저항일지도 모른다.

'도시늘보 표류기'는 정제된 내러티브로 관객을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파편과 혼란 속에서, 도시라는 정크스페이스를 부유하는 존재의 감각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표류기이며, 느림에 대한 회복이자 질문이다. 연극이 여전히 유효한 예술임을 말하려면, 어쩌면 이처럼 불완전하고 느린 방식이 더 진실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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