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세상은 감정으로 움직인다. 말 한마디에 웃고, 눈빛 하나에 무너지고, 무심한 손끝에 사랑을 느낀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뮤지컬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소년의 얼굴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소년의 이름은 윤재.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편도체가 작았고, 그래서 슬픔도, 기쁨도,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 얼굴은 늘 무표정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그곳에는 말보다 조심스러운, 작지만 선명한 떨림이 있다.
‘아몬드’는 이야기의 리듬을 감정의 고저가 아니라 관계의 변화로 이끈다. 세상과 단절된 듯 보였던 윤재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누군가의 말투 속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엄마의 손, 할머니의 품, 곤이의 주먹, 도라의 웃음. 그 모든 것들이 윤재에게는 감정을 대신하는 언어다.
무대 위는 조용하다. 과잉된 감정도,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도 없다. 대신 기억의 잔상처럼 스며드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때로는 영상이 한 겹의 추억처럼 펼쳐지고, 때로는 음악이 감정을 대신해 숨을 쉰다. 고동욱 영상디자이너가 만든 시각적 여백은 극의 정서를 더욱 섬세하게 조율한다.
정적인 무대를 지탱하는 것은, 배우들의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절제한 연기다. 윤재를 연기하는 문태유, 윤소호, 김리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침묵을 연기한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감정, 느끼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인간성. 그 균열 속에서 윤재는 조금씩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
윤재 곁에는 곤이라는 소년이 있다. 분노로 뒤덮인 얼굴, 세상과 끝없이 충돌하는 주먹, 하지만 어쩌면 누구보다도 감정에 솔직한 인물. 그의 분노는 윤재의 무표정과 대조를 이루며 극의 에너지를 일으킨다.
또 다른 축은 도라다. 자유롭고 솔직한 감정의 소유자. 그녀는 윤재에게 감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는 것으로 윤재를 조금씩 물들인다.
이번 시즌 ‘아몬드’의 진짜 힘은, 세 인물의 관계 페어링에서 발휘된다. 윤소호와 김건우는 팽팽한 긴장을, 김리현과 윤승우는 감정의 실험을, 문태유와 조환지는 가장 서정적인 우정을 그려낸다.
같은 대사, 같은 장면이 배우에 따라 전혀 다른 서사로 탄생하는 구조. 관계 중심의 이 공연은, 매 회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드문 경험을 제공한다.
한편 뮤지컬 ‘아몬드’는 감정을 말하는 작품이지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타인의 마음을 판단하고, 너무 자주 감정을 소비해버리는 것을 되묻는다.
윤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침묵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 침묵을 들어주는 것이 곧 극이 말하는 ‘공감’이고, 그 공감은 관객의 마음 어딘가에서 작은 흔들림을 만든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느낄 줄 아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치곤 한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 시작점에 내가 있었는가?”
뮤지컬 ‘아몬드’는 이 조용한 질문을 관객의 가슴에 오래 남긴다. 감정을 가지지 못한 소년의 이야기로, 오히려 우리가 잊고 지낸 감정의 윤리를 환기시킨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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