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고마워요, 나한테 잘해줘서."
연극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에서 울려 퍼진 이 대사는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문다. 아이유와 故이선균이 드라마를 통해 남긴 서사의 여운을, 연극은 더 느리게, 더 가까이, 더 인간적인 온기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 차분한 감동은 무대를 경험한 이들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스며든다.
2018년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는 이미 수많은 이들에게 인생작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연극 '나의 아저씨'는 원작의 그림자를 더듬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장르의 언어로 서사의 본질을 새롭게 조각한다. 드라마가 컷과 음악으로 감정을 밀도 있게 다듬었다면, 연극은 배우의 호흡과 순간의 공기로 감정을 직조한다. 무대는 숨결로 움직이고, 조명은 침묵 속의 감정을 밝힌다. 그것은 스크린이 줄 수 없는 현장의 진동이다.
박동훈 역의 이동하와 박은석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동하는 무거운 침묵과 절제된 감정으로 '따뜻한 어른'의 상징을 구현하고, 박은석은 인간적인 취약성과 여백을 통해 동훈의 내면을 더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지안 역의 김현수와 홍예지는 스물한 살의 절박함과 생존 본능, 그리고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무대 위에 쌓아 올린다. 연극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들이 만들어낸 감정의 밀도는 압도적이다.
도준영을 연기한 이규한과 윤선우는 욕망과 성공이라는 익숙한 틀 안에서 점차 무너져가는 인간의 모습을 각기 다른 결로 표현하며 서사에 긴장감을 더한다. 이들이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불안과 공허를 안고 살아가는 또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은 작품 전체에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오연아와 장희진이 그려낸 강윤희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내적 흔들림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누군가의 아픔과 불완전함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대는 배우들의 감정만큼이나 정제돼 있다. 연출 김재엽은 불필요한 장치 없이 무대의 호흡과 조명, 그리고 침묵을 통해 관객의 내면에 다가선다. 절제된 구조 속에서도 드라마보다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한다. 특히 지안의 대사 '고마워요, 나한테 잘해줘서'는 공연의 핵심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응축한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이 짧은 문장이 증명한다.
음악 역시 무대를 풍성하게 만든다. 가수 AVYN이 보컬로 참여한 오리지널 타이틀곡은 작품의 정서를 끌어올리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슬픔도 위로도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더 큰 울림이 나온다. 그것은 감정의 절정을 소리보다 조용한 떨림으로 풀어낸 결과다.
'나의 아저씨'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사람의 고단한 하루를 묵묵히 따라가며, 관객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꺼내게 만든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지안이 되기도 하고, 동훈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윤희나 준영의 내면에도 머문다. 이 연극은 말한다. 사람은 건물이 아니라고. 견뎌야 하는 존재이자, 함께 살아내야 하는 존재라고.
서울 LG아트센터에서의 성공적인 폐막 이후, 연극 '나의 아저씨'는 전국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작품은 단지 성공적인 콘텐츠를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서사를 통해 따뜻한 연대를 확장해 나가는 여정이다.
연극 '나의 아저씨'는 ‘연극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누군가의 작은 친절, 진심 어린 시선, 함께 버텨주는 존재가 결국 사람을 살린다는 이야기. 연극을 보고 나오면, 누군가에게 조금 더 잘해주고 싶어진다.
그건, 이 연극이 아주 잘 만들어졌다는 증거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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