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칼럼] 이십오년 유정의 규칙: 불쾌함을 모른척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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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 칼럼] 이십오년 유정의 규칙: 불쾌함을 모른척하지 말 것

문화매거진 2025-09-30 17:21:26 신고

[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살던 중 지금이 가장 감각이 열려 있음을 느낀다. 특정시간이나 특정작업에 해당한다기 보다는 유정으로서 지나온 지난 날의 굴곡과 변곡점이 시각화되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음이 그렇다.

기묘하고 당연하고 충만하다. 힘들었던 장면조차 겪어야 했던 것을 겪었다는 신뢰에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걷고 있다.

이 감각을 계속 켜두기 위해 상황별 감정에 더 신경쓰고 있다. 특히 사람과 대면하는 동안 찰랑이는 내면의 파도에 집중하는 편이다. 예기치 못한 해일이 몰아칠 때면 상대에게 실례를 무릅쓰고서라도 잠깐의 정적을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화하는 동안 술렁이던 불쾌감이 어느 기점을 넘어 솟구쳐 오르면 양해를 구한다.

“잠시,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중 굉장히 불쾌함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의도와는 달리 제가 이해하는 부분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사실 이보다는 덜 나이스한 태도일 것이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날 것의 불편함을 보일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감수하고라도 나에 대해 파헤치다 보면 정립할 수 있다. ‘내가 어떤 태도로 작업을 지속할 것인지.’ 달리 말해 ‘내가 어떤 마인드로 작가 생활을 유지할 것인지.’ 따위와 같은 방향성을 말이다.

▲ 선물로 메론 한 덩이를 들고 갔는데, 그 표면이 기이하여 찍어 두었다. 다시 보니 그날의 내 감정선을 똑닮은 것이 재밌다. '요동치나 뻗치지 말 것.' / 사진: 유정 제공
▲ 선물로 메론 한 덩이를 들고 갔는데, 그 표면이 기이하여 찍어 두었다. 다시 보니 그날의 내 감정선을 똑닮은 것이 재밌다. '요동치나 뻗치지 말 것.' / 사진: 유정 제공


얼마 전 미팅 아닌 미팅을 하게 된 이와는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름을 확인하고 헤어진 바 있다. 그는 그림을 그려보진 않았지만, 화가인 가족의 영향으로 디렉터의 길로 들어선 이였다.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한국에선 화가가 유명해지거나 대우를 받기 어렵다.’ ‘한국에서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선 외국의 비엔날레 경험을 다수 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비용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등의 류였다.

내 작업과 어울리는 곳에서 전시를 하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이들, 내 작업스타일을 찾기까지 이것저것 겪어봤을 이들, 그런 나와 같은 이들 또한 그리 반박할 말은 아니었으나 불쾌함의 기점을 넘은 것은 이 것이었다.

“제가 하는 일은 그런 기회를 만들어 작가님들을 도와주는 거예요. 저는 작가님을 도울 수 있어요.”

돕는다라... 기약 없는 비용이 전제된 그 말을 되돌이표처럼 듣다보니 ‘수수료를 먼저 보내면 아트옥션에 참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한창 어수룩한 유정을 꾀던 외국인들이 생각났다. 그날 만났던 디렉터가 사기를 행하는 류는 아니었지만, 굳이 비주류라고 여김 받는 (유정이 그러하다) 순수회화를 고집하는 상대에겐 참으로 효과 없는 단어들을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유정에게는 영업에 실패하셨군, 하며 귀갓길에 그날 나눴던 대화를 되새기니 내가 작업하는 이유를 조금 더 명확히 할 수 있었다. 

하나. 내가 멈추지 않는 한 결국 유정의 스타일은 주목받을 것이다.
둘. 그렇기 때문에 있는 힘, 없는 힘 쥐어 짜내어 계단을 오를 필요는 없다.
셋. 유명해지기 위해(잘 판매되는 작가가 되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면 나는 이미 하락세다.
넷. 그보다는 내가 살아가는 태도와 그 과정에서 겪는 수양의 깊이, 내면의 깨달음 등이 타인에게 이로운 형태를 구현해내고 싶다.
다섯. 이것은 마라톤이다. 돈을 마련하여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보다 건강한 신체로 오래 달릴 수 있는 페이스를 찾고 유지할 줄 알면 좋겠다.

▲ 최근 이사한 화실 단면. 여러모로 생각이 많을 땐 정적을 두고 작업실 한켠에 앉아 있으면 도움 된다 / 사진: 유정 제공
▲ 최근 이사한 화실 단면. 여러모로 생각이 많을 땐 정적을 두고 작업실 한켠에 앉아 있으면 도움 된다 / 사진: 유정 제공


이와 같이 덕분에 내가 유정에게 바라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재차 정리할 수 있었다. 자신만의 고독과 고양을 덤블링하며 지내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실없는 유혹인지, 아니면 실로 결이 맞는 도움인지 고민된다면 ‘불쾌함을 모른척하지 말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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