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원 칼럼] AI가 기분에 따라 그림을 그린다면: 감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술을 생성하는 사례②에 이어
[문화매거진=정규원 작가] 앞선 두 편에서 EmoArt 데이터셋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그걸로 훈련된 AI가 실제로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는지 살펴봤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그렇다면 ‘이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다. 단순히 “AI가 감정을 흉내 낸다”는 걸 확인하는 데서 멈출 게 아니라, 앞으로 이 기술이 어디로 쓰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예술치료다. 그림이나 색채는 원래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EmoArt 같은 데이터셋으로 훈련된 AI가 “따뜻함을 주는 그림”이나 “마음에 안정을 주는 그림”을 뽑아낼 수 있다면, 개인 맞춤형 예술치료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밤마다 불안을 달래기 위해 차가운 색채의 풍경화를, 또 다른 누군가는 활력을 얻기 위해 따뜻한 추상화를 AI에게 주문하는 식이다.
둘째, 창작 보조 도구로서의 가능성이다. 이전 칼럼들에서 충분히 얘기가 나왔던 분야다. 화가나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단순히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조용한 고양이의 평온한 분위기” 같은 감정 단서까지 넣을 수 있다면 훨씬 더 직관적인 창작 협업이 된다. 인간은 아이디어의 방향을 제시하고, AI는 감정과 스타일을 반영해 결과물을 제시하는 식이다. 창작 과정 자체가 보다 훨씬 유연해질 수 있다.
셋째, 교육과 연구 분야다. 사실 EmoArt는 단순히 AI용 훈련 데이터라기보다 문화와 미술사를 엮어 읽을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의 도구가 된다. 동양화에서는 ‘평온’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는 ‘투쟁’이 두드러진다는 통계는 미술사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딱 좋은 사례다. 더 나아가, 디지털 인문학 연구에서도 문화권별 감정 코드 비교 같은 연구가 가능해진다. AI 덕분에 예술사를 ‘숫자와 데이터’로 읽어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물론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AI가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곧 그 감정을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차분한 푸른색을 쓰면 평온해 보인다는 패턴을 배운 것뿐, 실제로 그 평온함을 느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인간 역시 서로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는 게 아니라, 표현을 통해 ‘공감’할 뿐이니까. 결국 핵심은 AI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감정을 담아내느냐일 것이다.
EmoArt는 아직 완성된 답이 아니다. 긍정적이고 차분한 데이터가 많아 때로는 그림들이 지나치게 “예쁘고 안정적”인 방향으로만 쏠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첫걸음 덕분에 우리는 이제 감정과 예술, 그리고 AI의 접점을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언젠가 AI가 그린 그림을 보고 “와, 이거 내 마음 같아”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날이 올까? EmoArt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첫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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