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가을비', 침묵 속에 스며든 삶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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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가을비', 침묵 속에 스며든 삶의 울림

뉴스컬처 2025-09-30 10:09:45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현대 사회의 잔혹한 이면을 섬세한 미학으로 담아낸 연극 '가을비'가 오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어댑터씨어터 2관에서 다시 관객을 만난다. 극단 세아미(SEAMI)가 제작하고, 정소정이 집필, 김세일이 연출한 이 작품은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아 일본 초청 무대에 오르며, 아시아 연극 교류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사진=가을비
사진=가을비
사진=가을비
사진=가을비

2011년 초연 이후 14년간 재공연을 거듭하며 한국 현대연극의 중요한 성취로 자리매김한 '가을비'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붕괴되어 가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정면으로 응응시한다. 일반적인 가족극을 넘어, 빈곤과 소외, 그리고 존재의 경계에 선 이들의 침묵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고드는 문제작이다.

극은 몰락한 한 가족 작곡가 출신 아버지 원재, 병든 몸으로 생계를 잇는 어머니 승자, 그리고 15세의 어린 나이에 성매매에 내몰린 딸 선아의 파국을 따라간다. 절망의 끝에서 원재는 피에로의 얼굴로 다시 무대에 등장하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죽어가는 것과 죽는 것, 무엇이 더 나은가요?"

삶과 죽음, 존재와 소멸, 해체된 가족과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근원적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이 작품은 관객에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다시금 들이민다. 칼날 같은 긴장감 속, 관객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는 ‘한순간의 삶’을 체감하게 된다.

연출을 맡은 김세일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도시의 일상은 쉼 없이 흐르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이 침묵처럼 깔려 있다. '가을비'는 그 소외된 목소리들, 넋들의 노래를 무대 위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김세일 연출은 2019년 부산시립극단에서 연출한 '물의 정거장'으로 부산 연극계에 깊은 울림을 남겼고, 2022년에는 이 작품이 폴란드 그롭토프스키 연구소에 초청되어 국제적으로도 호평받았다. 이번 무대는 그가 9년 만에 다시 부산에서 대표작을 선보이는 자리로, 연극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가을비
사진=가을비

김세일의 연출은 관객을 단순한 방관자가 아닌 ‘극의 일부’로 초대한다. 침묵과 여백, 비움 속에서 채움을 완성해가는 역설적인 미학, 그리고 일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신체 표현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독특한 무대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요소는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이번 무대에는 치에, 토자와 신지, 모리시마 타카히로, 카타미네 호노카, 카시무라 하야테 등 일본 무대에서 활약해온 배우들이 참여해 더욱 깊이 있는 공연을 완성할 예정이다. 작품의 언어는 다르지만, 그 안의 절망과 희망은 국경을 초월해 관객의 감각을 건드린다.

'가을비'는 예술이 어떻게 현실을 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자,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슬픔을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장이 될 것이다. 이 공연은 단지 연극을 넘어, 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하나의 의식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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