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신진작가에게 전시 공간의 기회는 많지 않다. 서울에 위치한 공간들의 대관료는 부담스럽고, 지원사업을 받아 전시를 하기 위해서 작동하는 운은 안 그래도 투명할 리가 없는 미래에 추가적으로 스모그까지 깔리는 것마냥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10월이 되니 지원사업 공고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내년에는 어떤 사업에 지원해 볼지 고민을 하며 예전보다 확연히 떨어진 에너지를 느낀다. 과거에는 ‘일 년에 50개 지원해 보기’와 같은 무모한 목표를 세우며 사업과 공모 지원에 열정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힘이 없다. 밥을 먹고 작업실에 가는 일상은 어느 때보다 익숙해졌음에도 더 이상 새로운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더하여 전시를 하는 1부터 100을 신경 쓰고 하나하나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에너지가 내 작업에 쓰이는 에너지의 얼마나 많은 비율을 갉아먹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소모되고 싶지 않다.
내년에는 새로운 기획을 짜내서 또 새로운 길로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 천천히 작업을 생각하면서 여러 작업의 방법과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법을 스스로에게 제안해 보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 마치 안식년 같은 그 시간은 너무 거창해서 과거 누군가와 장난스럽게 말했던 꿈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10월에는 책상에 앉아 하루종일 기획서만 쓸지도 모르겠다.
9월인 지금, 올라온 공모를 살짝 들여다보니 지원 자격이 예년보다 높아진 것 같다. 한 해마다 약간씩 바뀌는 공모 요강과 조건들을 보고 파악하는 내 모습에서 대학 입시 때의 기분을 되새김질하며 오랜만에 한국의 역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올해는 공간을 지원받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좋은 기회로 서울의 비싼 대관료는 ‘세이브’했지만 작품을 위한 재료비와 디자인과 서문에 대한 인건비를 송금하고 나니 돈은 금방이고 궁해지고 다시 채워지고를 반복한다. 교통비와 커피값을 아끼는 생활 속에서 힘든 여름도 있었지만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이 조금 자랑스럽기도 하다. 지원사업의 예산처리를 위한 영수증 처리와 이상한 구매 포인트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궁금한 재료를 ‘쫌 쫌따리’ 구매해 보고 실험해 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일을 하며 계약서와 같은 업무 때문에 그들의 시간을 뺏지 않아도 되었다. 재료의 가격 앞에서 가끔 멈칫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들여 더 좋고 값싼 가격의 재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전시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라는 마음과 ‘그래도 공모는 써봐야지’라는 마음은 계속 싸우며 [지원서 제출]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괴롭힐 것이다.
지원사업 자체에 비관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지원사업을 틈을 파고들어 내 작업과 엮을 방법을 고민한다. 자율적인 이력을 구축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전시장이 아닌 여러 공간에서 내 작업을 어떻게 보여줄지 생각한다. 광고판에서 보여주는 작업, 오프사이트에서의 작업, 작업이 여기저기에 놓이고 일면식 없는 누군가의 일상에 가 닿는 그 순간을 내가 기대해도 될까. 나는 자율적인 이력 구축을 고민한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전시가 아닌 내가 원하는 실험들을 시도하고 스스로에게 제안하는 한 해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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