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은중과 상연', 시청자 설득시키려 노력... 극한 단식도 감행

사진 =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서 천상연을 연기한 배우 박지현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취재진과 만나 캐릭터와 연기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전했다.

극 중 은중(김고은 분)은 가난한 집에서 자랐지만 사랑을 듬뿍 받아 그늘 없이 자란 아이로, 상연은 유복한 집에서 자라났지만 사랑에 대한 결핍이 가득한 아이로 그려진다. 둘은 10대부터 40대까지 끊임없이 얽히며 서로를 선망하고, 동시에 질투와 원망을 느낀다.

특히 상연은 은중에게 "네가 멀쩡한 게 싫어", "너도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 등 모진 말을 남기며 결핍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에 일부 시청자들은 상연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하기도 했다. 박지현은 이러한 반응을 모두 예상했다고 한다. 그는 "아무래도 은중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드라마여서 사람들이 좀 더 은중의 시선으로 상연을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좋지 않은 반응이 당연히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지현은 모든 캐릭터에 정당성이 있다고 믿는다며 상연을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것을 연기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그는 "(시청자들이) 은중도 이해하고 상연도 이해해야 마지막 결말까지 함께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대체 '왜 저럴까' 싶다가도 품어줄 수밖에 없는 캐릭터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라도 상연을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설명했다.

감정의 굴곡이 많은 역할이었기에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박지현은 오히려 촬영 중에 "물을 만난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촬영을 하면서 제가 감정의 폭이 큰 역할을 즐긴다는 걸 깨달았다"며 "서사도 너무 좋고, 대사도 다채로워 마음껏 연기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느낌이었다.

삶과 죽음까지 연대기가 대본에 다 있어서 전사와 후사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고 했다. '은중과 상연'은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의 이해' 조영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송혜진 작가가 각본을 쓴 시리즈다.

사진 = 넷플릭스

박지현은 상연이 10대부터 40대까지 우정과 사랑, 질투와 동경을 오가는 일대기를 섬세한 감정선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연기한 그는 나이, 건강 상태에 따라 외적인 변화에도 신경 썼다. 20대 상연은 가세가 기울면서 냉장고가 텅텅 비는 장면 등을 위해 마른 모습을 표현하려 했으나, "현장이 너무 추워서 내복을 엄청 껴입어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웃었다.

특히 시한부가 된 40대 상연을 표현하기 위해 극한의 노력을 감행했다. 박지현은 "(환자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2~3주 정도 물과 아메리카노 정도만 마시며 단식을 했다. 몸은 마르는데 얼굴만 노랗게 붓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며 "얼굴을 붓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촬영 직전에 일부러 집에서 두세 시간씩 울고 가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극 중 두 친구는 점점 오해가 쌓이면서 멀어지지만, 상연은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말기 암을 앓게 되면서 다시 은중을 찾는다. 조력 사망을 결정한 상연은 스위스로 떠나는 마지막 여행길에 유일한 친구인 은중이 동행해주길 원한다.

박지현은 조력 사망이라는 주제에 대해 "아직 상연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 저는 좀 더 상연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선택하지 못하지만, 그 정도의 아픔과 고통을 가진 사람이라면 삶의 끝자락에서 본인의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라고 조심스럽게 지지를 보탰다.

사진 = 넷플릭스

그는 "저는 그동안 역할과 자아의 분리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상연의 가치관이 남아있는 걸 보면 아직 캐릭터와 분리가 덜 됐다는 걸 느낀다"고 덧붙였다.

박지현은 촬영 현장에서 은중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물을 참는 것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40대의 상연은 초연하고 덤덤해야 하는데 눈물을 참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울면 안 되는 장면에서도 자꾸 울어서 고은 언니에게도 너무 미안했죠."

그는 이 작품이 자신에게 남긴 가장 큰 것은 김고은이라는 귀인이라고 강조했다.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지금까지 (김고은이) 유일하다. 제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며 "언니의 완성된 연기를 보고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상연의 질투와는 결이 다르다. 원망 따윈 없는 선망과 존경 그 자체"라고 덧붙이며 상대역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