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존 부스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바탕으로 도예, 텍스타일,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하는 이다. 모교인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겸임 교수로도 활동 중인 그는 특유의 독창적이고 컬러풀한 작업으로 주목받으며 펜디, 폴 스미스와 같은 굵직한 패션 하우스를 비롯해 애플, 레고 등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와 활발한 협업을 전개해왔다. 국내에서는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더콘란숍과의 협업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가 최근 한섬에서 전개하는 여성복 브랜드 래트(LÄTT)와의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선보였다. 2016년 시작한 래트는 북유럽의 창의적인 라이프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 활기차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섬세함, 창의성, 모던함, 유니크함 등의 가치를 선사하고 있다. 브랜드가 표방하는 예술적 감수성을 담아낸 이번 컬렉션 론칭을 기념해 <더네이버> 가 영국 이스트 런던에 위치한 존 부스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와 예술과 삶, 협업에 관한 다채로운 대화를 나눴다.
1 존 부스의 책상에 걸려 있는 그의 시그너처 튤립 그림. 2 최근 수집하고 있는 <아파르타멘토> 초기 에디션. 3 래트와의 협업을 위한 작업들.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존 부스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노스웨스트 잉글랜드에서 성장했죠. 21년 전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해왔고, 그건 제 삶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어요. 예술과 디자인, 패션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한편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거든요. 현재는 아트와 디자인, 패션 프로젝트 등을 아우르는 창작 활동을 합니다. 세라믹, 종이, 나무를 포함해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것을 즐깁니다.
작가님 작업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즐거움, 컬러풀함 그리고 경쾌함 같아요. 특정 주제보다는 ‘감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제 작업들이 재미있고 편안하며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해요. 물론 즐겨 사용하는 모티프들도 존재합니다. 튤립과 꽃, 얼굴, 최근에는 달팽이까지. 이러한 상징을 반복하는 이유는 시각적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반복’의 개념도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네요.
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영감은 무엇인가요? 런던 자체가 주요한 영감입니다. 21년을 살았지만 지겹지 않고, 이곳의 생활이 여전히 좋아요. 아직 가본 적 없는 멋진 곳들을 늘 발견할 수 있고요. 또 도시 자체가 수준 높은 아트&디자인 신을 지니고 있기에 아티스트로서 이곳을 기반 삼는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런던에선 무한한 창의성과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죠. 제 생각에 영감이란 끊임없이 지속되는 개념인 것 같아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일이죠. 그런 맥락에서 책 또한 제 삶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특별히 런던에는 양질의 출판물을 접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서점이 많아요.
1, 2, 3, 4 종이, 나무, 패브릭, 세라믹, 타일까지. 다채로운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의 스튜디오 풍경.
즐겨 찾는 곳들을 소개해주신다면요? 독립 출판물을 비롯해 다양한 아트 서적을 접할 수 있는 센트럴 런던의 텐터북스(Tenderbooks). 그리고 소호에 위치한 전 세계 잡지를 취급하는 매거진 전문 서점도 자주 가요. 학생 시절부터 패션 매거진에 완전히 사로잡혔어요. 지금은 다양한 책을 골고루 읽지만 여전히 잡지가 정말 좋아요. 최근엔 2008년 론칭한 <아파르타멘토(Apartamento)>의 초기 발행본을 에디션 순서대로 수집하고 있어요. 디자인이 멋진 데다 영감을 주거든요. 타인의 집을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최근 작업 경향을 보니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런던에 살면서 관심사가 패션에서 인테리어, 홈웨어, 오브제 등 라이프스타일군으로 확장된 것 같아요. 저에게는 유의미한 변화예요. 패션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영역을 옮겼다고 생각해요. 특히 패브릭에 관심이 많아요. 다양한 방식으로 핸들링이 가능해 매우 창의적인 작업들을 할 수 있거든요.
요즘의 가장 주요한 관심사인 건가요? 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집에 들이고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무척 흥미로워요. 생활 공간을 장식할 물건으로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한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기능적인지 장식적인지, 그런 부분들이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 거죠.
당신은 어떤가요? 개인적으로 장식적인 물건들을 좋아해요. 모든 것이 다 기능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것들로 저의 환경을 둘러싸는 거죠.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요즘은 무얼 읽고 있나요?
(그의 포터 백팩에서 책을 꺼내며) 미국 아티스트 앤 트루잇(Anne Truitt)이 수년간 써 내려간 일기를 담은 책 <데이북(Daybook)>을 읽고 있어요. 같은 예술가로서 공감 가는 이야기나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요.
스튜디오 책장에도 다양한 책이 꽂혀 있는 게 눈에 띄었어요. 모두 저에게 영감을 주는 책들이에요. 이탈리아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요. 엔조 마리와 멤피스 그룹, 브루노 무나리, 나탈리 뒤 파스키에 등. 그 밖에 미피를 만든 딕 브루너, 패션 디자이너 버나드 윌헴, 그리고 애정하는 사진가 잭 데이비슨의 사진 위로 제가 페인팅한 작업물이 담긴 책도 있고요. 포토그래피도 좋아해요.
당신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패션 포토그래퍼 멜 블레스(Mel Bles)와도 친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네 맞아요! 그녀를 사랑해요. 우린 2017년 펜디와 협업 컬렉션을 촬영할 때 만났어요. 그녀가 사진을 바탕으로 콜라주를 비롯해 다양한 아트워크를 더하는 방식이 아주 흥미로워요. 제게 영감을 주죠. 사진가 월터 파이퍼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보통의 직장인처럼 규칙적으로 작업하시나요? 아니면 영감이 떠오를 때? 혼자 작업하는 아티스트지만 일정한 구조를 갖추고 루틴을 유지하며 일하고자 해요. 스튜디오에 가능한 한 오랜 시간 머무르며 스스로를 훈련시키는 편이죠. 특별한 영감이 없더라도 꾸준히 노력해요. 책을 본다거나 때로는 그저 무언가를 하는 과정 속에서 실마리를 얻기도 하고요.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냥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매일 영감이 떠오를 순 없잖아요. 일을 하기 싫을 때도 있고요. 하지만 스튜디오에 와서 동료 아티스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디어를 얻거나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죠. 사람들과 한데 섞여 일하는 것의 장점이 바로 그 부분인 것 같아요. 혼자 일하는 건 선호하지 않아요. 그래서 집에선 일하지 않죠. 작업실과 집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눠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작업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재료, 컬러, 형태 모든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컬러의 믹스, 예상치 못한 재료의 혼합을 즐기죠. 특히 새로운 재료의 사용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계속 흥미를 불러일으키니까요. 세라믹 작업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고요. 종이 위 작업은 충분히 많이 했거든요. 종이는 원하는 방식대로 만지기 쉬운 반면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면 때로는 아주 즉흥적인 작업이 이뤄지고 또 결과가 예상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재미있어요. 완성 전까진 어떤 것이 나올지 알 수 없고, 그것이 긍정적 의미에서 놀라움을 주죠.
이제 패션 이야기를 해볼까요? 패션을 전공한 예술가로서 ‘입는 예술’인 패션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아트의 한 형태이자 표현 방식이죠. 패션 디자인뿐 아니라 무엇을 입는지도 자기표현이니까요. 요즘의 패션은 때때로 상업적이고 지루한 것 같아요. 제가 공부할 때는 보다 아트에 가까웠거든요. 예술적 아이디어를 입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래트와의 작업이 그랬던 것 같아요. 플라워 엠브로이더리 티셔츠만 봐도 알 수 있죠. 많은 회사 및 브랜드가 그런 예술적 터치가 느껴지는 디테일한 결과물을 만들 만큼의 자원을 투자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이번 협업 컬렉션의 실물을 보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아이템은 어떤 건가요? 전면에 튤립을 장식한 오트밀 컬러 니트 풀오버요. 꼭 페인팅처럼 보이는데 플러피한 소재잖아요. ‘복슬복슬한 그림’ 같아 재미있어요. 웨어러블한 디자인의 달팽이 프린트 후디드 스웨트셔츠도 좋았어요. 다양한 프린트가 섞인 플리츠 스커트도요. 오리지널 아트워크의 느낌을 잘 담아낸 것 같아요. 튤립 백 참도 예쁘더라고요. 사실 모든 컬렉션이 마음에 듭니다.
1 현재 몰두하고 있는 타일 작업. 어느 개인의 공간을 위한 프로젝트다. 2, 3 존 부스에게 영감을 주는 책들. 4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는 색을 사용하는 작가의 작업대.
이번 컬렉션에도 자주 등장하는 달팽이 모티프를 즐겨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스튜디오를 공유하는 동료 아티스트 이안 매킨타이어(Ian Mclntyre)와 ‘슈퍼 그룹(Super Group)’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세라믹 오브젝트를 선보이고 있어요. 활동의 일환으로 몇 년 전 사우스 런던에 있는 갤러리에서 스네일 모티프 세라믹 작업들을 전시한 적이 있어요. 그때를 기점으로 자주 사용하는 상징이 되었어요.
브랜드 아이덴티티 위에 자신의 작업 세계를 녹여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번 협업도 그랬지만 그런 어려움과 도전 자체를 즐기는 편입니다. 각 브랜드와 일할 때마다 아트워크의 형식이나 중점을 두는 요소가 다르죠. 서로의 스타일에 차이가 있지만 어떤 중간 지점에서 만나면 그 결과물이 꽤 좋더라고요. 작업 세계의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이번 래트와의 협업은 어땠나요? 즐거웠어요. 저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얼굴, 튤립, 스네일 상징들을 믹스해 다양한 비주얼을 만들었거든요. 멀티 컬러로 재해석한 스트라이프도 사용했고요. 디자인 막바지 과정에 스트라이프 위로 튤립을 그려 넣었는데, 그 프린트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래트 측에서 제게 다양한 프린트 작업을 요청한 부분이 즐거웠습니다. 한편 이번 컬렉션 색채는 제가 평소 사용하는 컬러 팔레트보다 다소 차분한 편인데 그 부분도 마음에 들어요. 아트워크를 다른 컬러 톤으로 재해석한 것이 새로웠거든요. 매우 균형 잡히고 우아하며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클래식하고 세련된 느낌이에요.
한국에 어떤 작가로 소개되고 싶나요? 꽤 무거운 질문이네요. 팬데믹 전에 한국을 방문해 일한 경험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내가 하는 일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이의 시너지가 느껴졌거든요. 한국에서 제 작업이 해석되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한국 사람들은 사소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다는 인상이 있어요. 영국과는 조금 다른데, 베이커리나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포장 패키지들까지 너무 예뻐서 간직했던 기억이 나요. 한국인들이 비주얼적인 것에 신경 쓰고 더 좋은 디자인을 소비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저 또한 그런 부분에 동조하고 또 그 일부이고 싶어요. 제가 무엇을 하는 작가인지 알고, 제 작업을 통해 즐거운 마음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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