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박동선 기자] "무기력한 일상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직업에 대한 한우물만 파는 모습에는 크게 공감이 갔다" 배우 이성민이 박찬욱 감독과의 첫 호흡 '어쩔수가없다' 속 캐릭터 '범모'를 향한 몰입포인트를 이같이 밝혔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극장개봉 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에서 열연한 이성민과 인터뷰를 가졌다. '어쩔수가없다'는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된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아내와 두 자식,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이성민은 극 중 만수(이병헌)의 잠재적 경쟁자인 실직 상태의 제지업계 베테랑 '구범모' 역을 연기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을 연출한 거장 박찬욱과의 첫 호흡이라는 점과 함께, 기존 이성민의 필모그래피에서는 찾기 어려운 평범한 중년 분위기를 보여주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주목도는 캐릭터에 대한 호응으로도 이어졌다. 파격적인 뒤태노출이나 아내 아라(염혜란 분)과의 독특한 부부케미 등은 물론,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눈빛과 대사호흡을 토대로 시들어가는 평범한 중년남자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그려내는 이성민의 모습은 영화팬들의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이성민은 본연의 소탈유쾌한 모습과 함께, 박찬욱 감독과의 '어쩔수가없다' 현장 비하인드는 물론 배우로서의 새로운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여러 번의 시사회와 함께 완성작을 본 소회?
▲제 상상력을 뛰어넘는 감독님의 서사능력을 느끼게 됐다. 시나리오로 이해했을 때는 실직자가 경쟁자를 제거하는 식의 단편적인 서사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완성작을 보니 서사전개 과정에서 웃음포인트로 감정이입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작품 전반의 일들을 정신차리고 바라보게 했다.
-캐스팅 당시 비하인드?
▲처음 회사에 도착한 시나리오에서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봤을 때 '올 것이 왔다' 싶으면서도 제 연기약점이 드러날까 싶어서 '어쩌지'하는 마음도 들었다.
대본 속에서 '내가 만수인가' '싶기도 했다(웃음). 언젠가는 한 번 해보고 싶던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이라는 점이 출연결정으로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과의 현장은 어땠나?
▲여러 감독님들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디렉션 자체가 면도날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준비해간 것들 가운데 가끔 놓치는 부분들을 파고들어 채워주는 모습에 크게 감탄했다.
또한 평소 모니터링보다 디렉팅에 집중하는 편인데, 이러한 박찬욱 감독의 디테일한 면모가 제게는 좀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범모 역을 소화하기 위한 핵심은 어디에 뒀나?
▲평범한 범주의 캐릭터이기에, 특징적인 것에 접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데 집중했다. 원래 캐릭터 특징이 명확하면 표현하기 쉽지만,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더 어렵다.
특히 일상의 저와는 별로 닮은 구석이 없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오타쿠' 기질의 면모를 찾아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집중하려 했던 것은 직업적인 애착감이었다. 제지 한 우물만 파온 범모처럼, 저도 연기밖에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인간실존의 관점에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어쩔수가없다' 속 이성민의 명장면은 '회상 신'과 '난투극 신'이다. 그에 대한 비하인드는?
▲우선 '회상신'은 순수를 잃어버린 현실의 모습을 극대화하는 요소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했고, 나중에 디에이징 등의 후반작업을 거친 것으로 안다. 완성도는 놀라웠지만 젊을 때 저와는 좀 다른 비주얼인 것 같더라(웃음).
'난투극' 신은 삽입곡 '고추잠자리'(조용필)와 함께 많이 회자되는 장면이다. 당시 촬영장에는 따로 음악을 틀지 않았고, 감독님과의 소통 속에서 여러 테이크를 이어가며 가다듬어 완성됐다. 음질 좋은 극장에서 그를 본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초반의 파격적인 뒷태노출도 있는데, 어땠나?
▲원래 대본상에 있었던 내용이다. '범모가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온다'라는 걸 표현하는 장면인데, 원래는 걸어서 프레임 아웃되는 부분까지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아쉬운 장면도 있나?
▲감독도 배우도 자기작품에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쩔수가없다' 속 제 장면 가운데서는 상의를 벗고 소주를 주방에 버리는 신이 좀 아쉽다.
눈물을 흘린 뒤 이어지는 설정인데, 그 감정이 얼굴에 좀 더 드러났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는 지난해 말 10주년을 맞이한 '미생' 당시의 일부 장면과 함께, 제 평생의 흉터처럼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염혜란과의 부부연기, 어땠나?
▲좋았다. 20여년 전 연극할 때도 그랬지만, 실제 함께하면서 더 감탄했다. 많은 준비와 함께 적극적인 모습으로 기존과는 다른 캐릭터감을 표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최근 대세라는 수식어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병헌·손예진·염혜란·박희순 등 동료들의 연기 가운데 새롭게 눈에 띈 것이 있나?
▲(이)병헌 씨는 말할 나위 없었다. '저런 표정을 어떻게 하나' 싶을 정도로 풍부한 연기면모들을 보여줘서 뒤에서 따라해보기도 했다. (염)혜란 씨의 모습도 물론 그러했다.
그 가운데 (손)예진 씨의 모습이 정말 신선했다. 7년만의 스크린 복귀라고 들었는데 연기가 참 매력있었다. 특히 후반부에 피폐해져가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볼때마다 다르다는 '어쩔수가없다', 이성민에게도 그러한지?
▲맞다. 처음에는 제 장면만 보였다면, 두 번째는 관객들의 반응이 보였다. 세 번째 돼서야 편하게 볼 수 있었는데, 놓친 부분은 물론 감독님의 숨은 디테일과 의미들이 계속 나와서 집중하게 되더라.
연출공부중인 딸은 시사회와 함께 이병헌 씨의 면접 신 중 햇빛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묻더라.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직업과 그에 따른 인간실존, 일상에 대한 상실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보스'와 '어쩔수가없다' 두 작품으로 올 추석극장의 남자가 됐는데?
▲쑥스럽다. 오래 전 촬영을 마친 작품과 최근 작업한 작품까지 비슷하게 개봉하는 터라 기분이 남다르다. 늘 그렇듯 무대인사를 비롯한 홍보일정을 열심히 수행하려고 한다.
뉴스컬처 박동선 dspark@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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