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벼내림 작가] 여름이 끝나간다.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 마트에서 수박을 만날 수 있으니, 여름이 조금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여름과 수박은 짝꿍이다. ‘여름’하면 ‘수박’이, ‘수박’하면 ‘여름’이 떠오르니까. 과일을 좋아해서 그런가, 과일과 계절을 묶음으로 기억하나 보다.
지나가는 이 계절이 아쉬워 하나의 재밌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바로 ‘수박으로 여름이라는 글씨 만들기’다. 수박의 특징적인 모양새를 글씨 디자인에 녹여 나만의 여름을 간직해보려 한다.
이 귀여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마트에서 아담한 크기의 수박을 샀다. 아마 여름에 먹는 마지막 수박일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집에 오자마자 분해를 시작했다. 위 뚜껑을 자르는데 영화 ‘킬 빌(Kill Bill)’에서 주인공이 오렌 이시이의 머리를 가르는 장면이 떠올라 잠시 오싹했다.
여러 모양으로 분해하며 ‘수박’하면 떠올랐던 얼룩말 무늬와 빨강과 초록보다도 속살의 연두색 형광 빛이 가장 또렷하게 다가왔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 먹지 못한다고 한다.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은 안 되지만 이해는 간다. 확실히 단맛이 덜 느껴지는 부분이긴 하다. 생각해 보니 과일에서 이렇게 형광색을 띠는 걸 본 적이 있던가? 기껏해야 석류 정도가 떠올랐다. 오래 들여보고 있으니 분명 익숙한 과일인데 낯설기도 했다.
탐색 끝에 단면, 꼭지, 씨, 무늬로 재밌는 형태를 완성했다. 수박씨는 먹을 때마다 거슬린다고만 여겼는데 그림 속에선 재밌는 디자인 씨앗이 되었다. 앞으론 미워하지 말아야지. 해체한 수박은 몇 주간 부지런히 먹었다. 이젠 여름을 보내줄 시간이다. 잘 가 여름아, 또 보자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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