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엄마 이해 하기: 비난 대신 연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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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엄마 이해 하기: 비난 대신 연민으로

나만아는상담소 2025-09-26 10:37:00 신고

나르시시스트 엄마 이해

어느 명절 저녁, 당신은 거실 소파에 앉아 북적이는 친척들 사이에서 유독 빛나고 있는 엄마를 바라본다.

그녀는 과장된 몸짓과 웃음으로 대화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젊은 시절 고생담이나 자식(바로 당신)을 얼마나 훌륭하게 키워냈는지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다.

모두가 “대단하다”, “고생 많았다”며 추임새를 넣는다. 그 순간, 당신은 익숙한 분노나 짜증 대신, 기이하고도 낯선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연민’에 가깝다. 필사적으로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는 저 모습이, 마치 서커스 무대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위태롭고 처절해 보이는 것이다.

저 화려한 가면 뒤에 숨겨진 텅 빈 공허함이, 그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당신의 눈에 들어온다.

이 순간의 발견은 당신의 내면에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평생 당신을 괴롭혀 온 ‘나르시시스트 엄마’라는 거대한 존재를, ‘가해자’라는 단일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인지적 대전환.

이것은 그녀를 용서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직 당신 자신을, 지긋지긋한 분노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마지막 열쇠를 찾는 과정이다.

이 글은 비난의 칼을 내려놓고 연민이라는 현미경으로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당신이 얻게 될 진정한 자유에 관한 탐구다.


그녀는 왜 ‘나르시시스트’가 되었는가


우리가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쁘다’는 도덕적 판단을 잠시 멈추고 ‘왜?’라는 분석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성격이 못됐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무언가가 결핍되고 뒤틀려버린 결과물, 즉 발달 과정의 실패에 가깝다.

1. ‘진짜 자기(True Self)’를 잃어버린 아이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진짜 자기’와 ‘가짜 자기(False Self)’가 있다. ‘진짜 자기’는 꾸밈없고, 자발적이며, 솔직한 감정과 욕구를 가진 우리의 본질이다.

아기는 배고프면 울고, 기쁘면 웃으며 자신의 ‘진짜 자기’를 자유롭게 표현한다. 이때 부모가 아기의 욕구를 수용하고 반응해주면, 아이는 ‘아,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사랑받을 만하구나’라고 느끼며 건강한 자아를 형성한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아이는 정반대의 경험을 한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슬픔, 기쁨, 두려움)을 표현할 때, 부모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대신 “쓸데없이 울지 마”, “시끄럽게 웃지 마”, “네가 뭘 안다고”와 같은 말로 아이의 ‘진짜 자기’를 억압하고 거부한다. 아이는 생존을 위해 깨닫는다. ‘진짜 나’를 보여줘서는 사랑받을 수 없구나. 살아남으려면 부모가 원하는 모습, 즉 칭찬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나를 위장해야 하는구나.

이때부터 아이는 자신의 내면에 ‘가짜 자기’라는 정교한 가면을 만들기 시작한다. ‘착한 아이’, ‘똑똑한 아이’, ‘문제없는 아이’라는 가면을 쓰고,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연기를 평생에 걸쳐 수행한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모든 과장된 행동,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 완벽주의적인 모습은 바로 이 ‘가짜 자기’가 벌이는 필사적인 연극이다.

그녀는 ‘진짜 자기’를 너무 깊숙한 곳에 묻어버린 나머지, 스스로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비극적인 인물이다.

2. ‘공감’이라는 소프트웨어의 부재

우리는 엄마가 왜 우리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분노한다. 하지만 그녀는 공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에 가깝다.

공감 능력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갖춰진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되고 설치되는 일종의 ‘정서적 소프트웨어’다.

아이가 울 때 엄마가 “슬펐구나”라고 말해주며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반영해주는 과정이 반복될 때, 아이의 뇌에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회로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신의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녀가 울 때,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감정을 읽어주기는커녕 무시하거나 처벌했다.

그 결과, 그녀의 내면에는 ‘공감’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아예 설치되지 않았다. 그녀는 당신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처럼 느낄 수 있는 신경 회로 자체가 없다. 마치 색맹인 사람에게 빨간색을 설명할 수 없듯, 그녀에게 공감을 요구하는 것은 작동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3. 끝없는 공허함과 ‘나르시시스트적 공급’

‘진짜 자기’를 잃어버리고 ‘가짜 자기’로 살아가는 사람의 내면은, 마치 블랙홀처럼 끝없는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오는 인정, 칭찬, 관심, 때로는 복종이나 두려움과 같은 자극을 끊임없이 수혈받아야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시스트적 공급(Narcissistic Supply)’이라고 부른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이 ‘공급’을 얻기 위한 처절한 전략이다. 그녀가 당신의 성취를 자신의 것인 양 자랑하는 것은, 당신을 통해 찬사라는 ‘공급’을 얻기 위함이다. 그녀가 당신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것은, 당신을 통제함으로써 우월감이라는 ‘공급’을 얻기 위함이다.

심지어 그녀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조차, 당신의 고통스러운 반응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당신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공급’을 얻는 행위일 수 있다.

그녀는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찾아 헤매듯, 평생을 ‘나르시시스트적 공급’을 찾아 헤매는 존재다. 당신은 그저 그녀의 중독을 채워줄 가장 가깝고 손쉬운 공급원이었을 뿐이다.


‘비난’에서 ‘연민’으로: 감정의 프레임 전환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당신의 감정 프레임을 ‘분노’에서 ‘연민’으로 전환하는 첫 단추다. 이것은 그녀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더 깊고, 더 차갑고,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이다.

1. 가해자에서 ‘불쌍한 환자’로 바라보기

지금까지 당신은 그녀를 의도적으로 당신을 괴롭히는 ‘사악한 가해자’로 인식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녀를, 스스로의 통제 능력을 상실한 채 평생을 같은 패턴에 갇혀 고통받는 ‘정서적 환자’로 프레임을 바꿔보라.

우리는 암 환자에게 왜 아프냐고 비난하지 않고, 치매 환자에게 왜 기억을 못 하냐고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이 병의 ‘증상’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모든 기이한 행동들—공감 능력의 부재, 끊임없는 자기 자랑, 가스라이팅—역시 그녀가 앓고 있는 ‘성격 장애’라는 병의 ‘증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당신을 감정적 대응에서 해방시킨다. 당신은 더 이상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그저 ‘아, 또 증상이 시작되었구나’라고 인식하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면 그만이다.

2. 연민은 용서가 아니다: 명확한 선 긋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연민은 결코 용서가 아니다. 그녀의 불행한 과거가 현재 당신에게 가하는 고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과, 그녀의 학대적인 행동을 용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연민은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그녀를 당신의 삶에 다시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연민은 당신이 그녀에게서 더 멀리, 더 안전하게 물러나기 위해 필요한 감정적 작업이다.

그녀가 ‘불쌍한 존재’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저 사람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미련을 버리고, 건강한 경계를 설정할 힘을 얻게 된다. 연민은 당신의 해방을 위한 도구이지, 그녀를 위한 면죄부가 아니다.

3. ‘어머니’라는 역할극의 종결

연민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녀에게 씌워져 있던 ‘어머니’라는 신성한 역할을 마침내 벗겨낼 수 있게 해준다. 비난과 분노에 휩싸여 있을 때, 당신은 역설적으로 ‘어머니라면 저래서는 안 되는데’라는 기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그녀가 ‘이상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해주기를 바라며, 그 역할에서 벗어나는 그녀의 모든 행동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그녀를 한 명의 불쌍하고 미성숙한 개인으로 바라보는 순간, 이 지긋지긋한 역할극은 끝이 난다. 그녀는 더 이상 당신의 ‘위대한 어머니’도, ‘끔찍한 어머니’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당신과 생물학적 관계가 있는, 깊은 상처를 가진 한 명의 여성일 뿐이다. 이 역할의 해체는, 당신을 ‘상처받은 딸’이라는 역할에서도 해방시킨다.


연민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해방


비난의 불길을 끄고 연민의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당신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들이 찾아온다.

1. 내면의 소음이 멈추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을 수십 년간 지배해온 소음이 멈춘다. 과거의 상처를 되새김질하고,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분노하고, 미래의 만남을 상상하며 불안해하던 그 모든 내면의 독백이 서서히 잦아든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를 (비록 슬픈 방식이지만) 이해하게 되면서, 당신은 더 이상 ‘왜?’라는 질문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된다. 그 자리에 고요한 평화가 찾아온다.

2. 대물림의 고리를 끊는 힘

그녀의 나르시시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곧 당신 자신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 상처의 씨앗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녀의 행동 패턴과 나의 행동 패턴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이 앎은 당신에게 강력한 힘을 준다. 바로 그 불행의 고리를, 당신의 세대에서 의식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힘이다.

3. ‘나’라는 이야기의 온전한 주인이 되다

엄마를 비난하는 동안, 당신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전히 엄마였다. 당신의 모든 감정과 행동은 ‘엄마 때문에’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당신이 그녀를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당신의 삶의 배경으로 밀어내는 순간, 비로소 당신은 당신 이야기의 온전한 주인공이 된다.

그녀는 더 이상 당신의 삶을 규정하는 거대한 변수가 아니라, 당신의 과거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신은 이제 그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오롯이 당신만의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다. 그녀가 누구인지 이해하는 마지막 여정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가장 위대한 시작인 셈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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