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진영 기자] 2025년 9월, 경복궁 서촌 정종미 갤러리의 한옥 마루에서 특별한 예술적 조우가 펼쳐진다. 문정수 작가·연출·감독의 무대 공연 '서울의 밤'과 한국화가 정종미의 회화 전시 '어부사시사', 그리고 세계 최초의 숨·춤·시 아티스트 김나윤, 윤관우, 김한상, 김하영이 만나 사조와 관습을 넘어선 새로운 발화를 시도한다.
'서울의 밤'은 지난 6월 대학로에서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 연기”라는 선언과 함께 첫 호흡을 터뜨렸다. 이어 8월 대부도의 바다와 별빛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호흡을 교차시키며 무대를 확장했고, 마침내 9월, 서촌의 한옥 마루 위에서 정종미 화백의 '어부사시사'와 충돌하며,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낸다.
정종미의 회화는 삼베와 광물의 물성이 인간의 숨결과 자연의 빛과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강렬한 진폭을 담고 있다. 한옥의 목질과 기와의 음영 속에서 이 회화는 단순히 전시 작품이 아니라 파동의 현장으로 확장된다. 관객은 무대와 회화가 동시에 발생시키는 파동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그 중심에서 배우들의 숨과 움직임은 공간과 작품을 절단하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낸다.
문정수의 방법론은 숨, 춤, 시라는 세 가지 파장을 관객에게 직접 전송하는 데 있다. 숨은 의미 이전의 신호로서 배우의 폐에서 발생하는 밀도와 기압 차이가 그대로 관객의 신경계를 흔든다. 춤은 안무가 아니라 물리적 공명으로서, 관객의 진동수와 맞닿는 순간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전염으로 바뀐다. 시는 설명이 아닌 폭발의 잔해이며, 파열과 회복의 첫 조각으로 기능한다.
서촌의 한옥은 생동하는 악기처럼 울린다. 마루의 탄성, 처마의 길이, 모시의 밀도는 각각 다른 음을 내며 배우의 발소리와 호흡이 얹히는 순간 합주가 된다. 1651년에 지어진 어부사시사의 언어와 정종미의 회화적 물성이 배우들의 몸짓과 충돌할 때, 관객은 예술의 전통적 문법이 아닌 원초적 생명력의 파동을 체험하게 된다.
이 조우는 크로스오버나 융복합이라는 단어로 환원될 수 없다. 문정수와 정종미, 그리고 네 명의 숨·춤·시 아티스트가 만들어내는 순간은 기존 사조와 미학적 명명을 지워버리고 최초로 회귀한다. 모더니즘도, 포스트-무엇도 아닌, 사조가 생겨나기 이전의 압력과 에너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서울의 밤×어부사시사'는 계보를 잇는 사건이 아니라 태초를 초기화하는 사건이다. 경복궁 서촌의 한옥 음영 속에서 배우들은 삶의 깊은 밤을 숨과 춤과 시로 절단하고, 정종미의 회화와 문정수의 프뉴마티콘 카리스마 언어는 인간 세계의 균열 위에 새로운 생명의 온도를 불어넣는다. 관객은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이 절단을 함께 겪어내고 생동하는 공명체가 된다. 이 순간은 이미 도래한 미래의 예술이며, 서울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증폭될 파동의 원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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