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감독이 비춘 거울 속에는?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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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감독이 비춘 거울 속에는?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독서신문 2025-09-25 06:00:00 신고

정기용 건축가. [사진=KMDb]

<말하는 건축가>를 보았다. 그는 영화에서 많은 말을 한다. 거칠게 깎여버린 목소리로. 야윈 몸으로. 그의 말들 가운데 그가 생각하는 건축가의 역할이 기억에 남는다. “한 시대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받아적는다. 정기용 건축가가 정의한 자신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기에 활동 반경 역시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속 건축가 동료들의 말로 미루어보아도 그는 건축가라기보단 건축 인문학자와 같은 면모가 강했다.

그는 공공 건축에 애정과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것이 무주 프로젝트와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다. 특히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고 구현한 기적의 도서관은 당시 세간을 들썩이던 MBC 프로그램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와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함께한 프로젝트로, 지역사회의 문화적 중추가 되는 공공건축물로써 도서관 건축에 좋은 선례가 되었다. 2003년 순천에서부터 시작해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간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기용 건축가의 ‘거울’ 되어

정기용의 타계 1주기인 2012년 3월 11일에 맞춰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메이킹 필름 같은 책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이 지난달 말 플레인아카이브에서 출간됐다. 정재은 감독의 회고록과도 같은 책이다. 그렇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데뷔한 정재은 감독이다.

어쩌다 그는 정기용 건축가를 찍게 되었을까? <고양이를 부탁해>와 <말하는 건축가>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일단 픽션과 논픽션이라는 경계가 그 두 작품을 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재은 감독은 상업 영화 현장에 지쳐 있었고, 창작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 우연히 건축영화제 측으로부터 영상 제작을 의뢰받았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상영되는 여러 건축 다큐멘터리를 전부 무료로 보게 되었다. 그 경험이 정 감독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것이다.

정 감독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 영화들은 내가 가고 싶은 길과 유사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유사한 세계라는 말에 시선이 고인다. 다섯 여성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여자들은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는데 그것은 마치 정재은 감독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극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부침과 창작에 대한 고민이 그로 하여금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동네에 발을 딛게 했다.

정재은 감독은 건축가 정기용의 ‘거울’이 되기를 자처했다. 주인공이 되기로 선택한 정기용을 따라다니며 그를 비추었다. 어디서 어떻게 서사를 만들까 궁리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하기도 했었다고 고백한다. 영화적 사건을 기다리며 초조해하다가 이내 그것이 “서사를 구축해야겠다는 망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거울이라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관객에게 정기용의 어떤 모습을 비추고, 보여줄지, 영화의 최종 편집권은 정재은 감독에게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의무와 권리를 가감 없이 발휘하며 그 속에서 고민했던 시간들과 오래 담아둔 말들을 꺼내어 보인다.

그런데 왜 지금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정재은 감독이 정기용 건축가를 찍기 시작한 것이 2009년 겨울이고 영화도 2012년에 개봉했다. 무려 15년여가 흘러서 이 책을 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말하는 건축가>를 필두로 여러 편의 건축 다큐멘터리를 냈다. 마치 시리즈와도 같은 영화들이다. 어쩌면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산물은 아닐까.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꼭 필요했던 대대적인 회고의 작업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서문에서 이미 그는 “앞으로는 하고 싶다면 왜 하고 싶은 것인지 그 이유를 더 확실히 한 후에 작업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고 말했었다.

정재은 감독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는 창작자가 아니다. 창작자라는 숙명 상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언제나 작품 속 인물을 빌려오고 그 밖의 말은 아낀단 뜻이다. 자기 PR이라든지 셀프 브랜딩이 필수적인 덕목으로 여겨지는 ‘현대 창작자’와는 거리가 멀다. 혹자는 그를 ‘클래식’하다고 표현했다.

그런 면모는 애초 책의 만듦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을 쥐고 펼쳐 제대로 그 안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우리가 책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책 뒷면에 그나마 이 책이 건축가 정기용을, 그리고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말하고 있는 책이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충분히 영화의 포스터나 정기용 건축가의 포트레이트를 활용해 홍보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책 내부도 마찬가지. 어떠한 이미지도 없이 그저 정재은의 문장들, 전진하고 진전하는 사유의 문장들이 담담히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창작자로서 자신이 창작 과정에서 느꼈던 온갖 번뇌와 갈등. 그것들은 고유하지만 또한 고유하지 않다. 책의 말미에서 독자는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묻어 있는 이 문장들이 결국 감독이 의도한 바였음을 깨닫게 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민하고 또 헤매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듣고 기록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창작자의 숙명이라는 것을.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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