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H-1B’ 취업비자 정책 변경으로 미국 내 중국인 근로자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4회계연도 기준 미국 내 전체 H-1B 비자 소지자 가운데 중국인은 4만 6722명으로 약 12%를 차지한다. 인도(28만 3755명·73%)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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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중국인 근로자 ‘패닉’…“유럽행 적극 모색”
SCMP는 “미국 내 중국인 근로자들은 최근 며칠 동안 공황 상태”라며 “이들 사이에서 탈(脫)미국 가능성이 급속 확산하고 있다. 백악관이 뒤늦게 기존 비자 소지자가 아닌 신규 신청자만 대상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고 전했다. 다만 낮은 임금 수준과 언어 장벽이 현실적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앨런은 SCMP에 “박사 학위를 마친 뒤 반평생을 미국에서 보냈지만, H-1B 추첨 탈락을 두 차례나 경험했다. 난 그저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을 원할 뿐인데 그런 선택권조차 주지 않는다.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토로했다.
미국 내 중국인 근로자들의 불안은 온라인에서도 표출됐다. 중국의 소셜 플랫폼 ‘레드노트’에선 유럽에서의 직장·생활 경험에 대한 공유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수천건의 호응을 얻은 독일 생활 경험에선 낮은 생활비, 장기간 유급휴가, 우수 인력을 위한 비자 제도의 용이성이 장점으로 부각됐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는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진 고학력자를 위한 비자 제도를 제공하며, 프리랜서까지 비교적 쉽게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SCMP는 부연했다. 이는 추첨제로 운영되는 미국 H-1B와 대조된다.
CNBC도 이날 “글로벌 인재 쟁탈전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유럽이 ‘워라밸’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고급 인력 유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인재 조사기관 랜드스타드가 올해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직장인들의 우선순위에서 워라밸은 사상 처음으로 급여를 앞질렀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과 미주 지역에서도 동일한 추세를 나타냈다.
독일 도이체방크 감독위원장 출신 파울 악슐라이트너는 CNBC와 인터뷰에서 “유럽의 삶의 질은 매우 중요한 경쟁 요소”라며 “사회보장, 의료, 교육 등의 인프라는 인재 유치에 강력한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행이 더 이상 예전처럼 쉽지 않은 만큼, 유럽이 인재 유출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 벤처캐피털 크레안덤의 파트너 페터 슈프레흐트도 “인재 밀도를 높이는 것은 단기적으로도 이득”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 같은 미래산업 연구개발 역량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유럽연합(EU) 단일 주주옵션 제도, 범유럽 노동 이동성, 우수 인재를 위한 저렴한 비자 제도 도입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럽 ’워라밸’ 장점 부각에도…언어·임금 절벽이 발목
물론 장밋빛 기대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난관은 언어와 급여다. 북유럽 국가에선 영어 소통이 비교적 원활하지만,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지에선 언어 장벽이 높다. 특히 임금이 미국보다 현저히 낮다는 점이 중국인 근로자들을 망설이게 만든다. 독일 이주 후 급여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증언도 상당수 공유됐다.
2023년 프랑스에서 어린 자녀가 있는 4인 가구의 세후 중위소득은 약 5만 4000유로(약 8886만원)인 반면, 미국의 맞벌이 부부 중위소득은 10만달러를 상회한다. 안정성과 제도적 장점에도 실질적인 생활 수준 하락은 불가피하다.
뉴욕에 거주하는 또 다른 H-1B 소지자 사샤(가명)는 “이번 사태로 너무 지쳤다. 돈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미국을 떠나고 싶다. 임금 문제 때문에 아직은 미국을 떠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유럽이 다른 지역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벤처캐피털 펀드 20VC의 창업자인 해리 스테빙스는 “두바이는 제로 자본이득세와 개방적 정책으로 세계 최고 유인책을 내세우고 있다. 영국 런던이 ‘영업 중단’ 간판을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이 미국을 대신하는 허브가 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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