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N] ‘대장금’-‘폭군의 셰프’로 본 음식으로 빚은 권력과 정체성, 그리고 시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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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N] ‘대장금’-‘폭군의 셰프’로 본 음식으로 빚은 권력과 정체성, 그리고 시대의 초상

뉴스컬처 2025-09-23 16:01:56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음식은 언제나 문화를 말해왔다. 그것은 시대의 미각을 담는 그릇이자, 인간이 몸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한국 사극에서 음식은 단지 조리의 대상이 아닌, 권력과 질서, 계급과 주체성을 둘러싼 복합적인 상징체로 기능해 왔다.

특히 드라마 ‘대장금’과 ‘폭군의 셰프’는 서로 다른 시대와 미학을 바탕으로, 음식이라는 공통의 매개를 통해 매우 다른 세계를 그려낸다. 전통과 혁신, 여성과 권력, 국가와 문화의 문제까지 이 두 작품이 다루는 담론은 단순한 ‘먹는 이야기’를 넘어선다. 음식은 이들 드라마 안에서 시대를 해석하는 키워드이며, 동시에 우리가 어떤 문화 안에서 살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대장금'. 사진=MBC
'대장금'. 사진=MBC

2003년 방영된 MBC ‘대장금’은 조선 궁중음식과 의학을 통해 유교적 이상국의 질서를 재현하며, 음식이 어떻게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주인공 장금은 궁이라는 봉건적 공간 안에서 요리사이자 의녀로 성장하며, 당시 여성에게 허용된 가장 제한적인 틈 사이로 스스로의 자리를 개척해 나간다.

장금이가 조리하는 음식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거나 맛을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왕의 신체를 관리하고 국가의 질서를 지지하는 정치적 행위로 기능한다. 전통 조리법의 계승과 의학 지식의 정통성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사회 전체를 지탱하는 윤리이자 이상이었다. 장금의 성공은 곧 전통 사회에서 여성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제도와 이념을 돌파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tvN ‘폭군의 셰프’는 전혀 다른 풍경을 그려낸다. 작품은 조선과 명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요리 대결을 중심으로, 음식이 국가 간 권력 투쟁과 문화적 자존심의 전장으로 기능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주방은 전장이 되고, 셰프는 문화를 수호하는 전사가 된다. 해당 작품에서 음식은 조리 기술을 넘어 민족 정체성과 문화적 저항, 나아가 시대의 변화에 대한 대응을 상징한다.

주인공 연지영은 세계 요리 대회 우승 경력을 지닌 현대적 여성상으로 등장하며, 조선의 폭군 이헌과의 협력과 대립 속에서 단순한 여성 주체를 넘어서 복합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연지영의 존재는 음식이라는 문화 코드를 통해 여성 주체성의 전통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현대적 서사를 구현한다.

'폭군의 셰프'. 사진=tvN
'폭군의 셰프'. 사진=tvN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이 전통과 혁신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대장금’은 조선의 전통 조리법과 의학을 계승하며, 유교적 질서 안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음식은 계승과 존중의 대상이며, 역사 속 지식의 정수로서 보호받는다. 반면 ‘폭군의 셰프’는 괴짜 기술자 장춘생 같은 인물을 통해 질서에 대한 도전과 기술적 혁신을 긍정하며, 창의성과 실험정신을 강조한다. 이 같은 설정은 전통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통을 어떻게 갱신하고 다시 쓰느냐에 집중하는 현대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혁신과 변화는 위험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자,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열쇠로 그려진다.

문화적 교류와 정체성의 문제 또한 두 드라마의 시선을 갈라놓는다. ‘대장금’이 조선 내부의 권력 구조와 유교적 가치에 집중하는 반면, ‘폭군의 셰프’는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외교적 긴장과 문화적 충돌을 테마로 삼는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배경의 차이를 넘어, 글로벌 사회 속에서 한국 문화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음식은 여기서 자국 문화의 자존심이자, 타자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공통의 언어로 작동한다. 그것은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다시 쓰여야 할 자신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장금’과 ‘폭군의 셰프’는 모두 음식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시대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르다. ‘대장금’이 유교적 세계관 속에서 여성의 성장을 그린다면, ‘폭군의 셰프’는 권력과 기술, 문화 충돌이라는 복합적 층위 속에서 여성 주체와 국가 정체성을 동시에 재구성한다. 이 두 작품은 각기 다른 시대의 질문에 답하며, 사극이라는 장르가 단순한 과거 재현을 넘어 시대적 상상력을 담아내는 하나의 문화적 공간임을 입증한다.

결국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지금 이 시대, 우리는 어떤 음식을 만들고 있는가. 그 음식은 무엇을 기억하며,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삼키고, 문화를 발효시키며, 우리 안의 세계를 조리해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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