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청사와 광복군 사령부부터 포로수용소까지…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
(충칭=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광복 80주년을 맞아 중국 대륙을 따라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자취를 쫓는 여정은 난징을 거쳐 충칭에 닿았다.
인구 3천300만명의 초대형 대도시 충칭은 요즘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광지다.
밤이면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진 홍야동 거리는 젊은이들로 붐비고 훠궈 냄비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러나 불빛 뒤편 골목 곳곳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이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1919년 상하이에서 출발한 임시정부는 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을 거쳐 1940년 9월 중국의 전시 수도인 충칭에 자리 잡았다.
충칭 시기는 임정 27년 역사 중 가장 강력한 조직과 체제를 갖추고 활동한 시기다.
광복군을 창설해 대일 전선에 참여했고,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이 시기 임정은 4개의 청사를 사용했으나 일본군의 폭격으로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마지막 청사인 연화지 건물만 남아있다.
도심 한복판 고층 빌딩 사이에 기적처럼 보존된 연화 임정 충칭 청사에 들어서면 광복을 향한 임정 요인들의 시간이 되살아난다.
회색 벽돌로 지은 2층 건물 안에는 주석과 각 부서 집무실, 의정원 회의실, 국무회의실 등이 정갈히 복원돼 있다.
작은 찻잔이 놓인 테이블은 대륙을 떠돌며 굴하지 않았던 열정을 증언했고, 빛바랜 태극기 앞에서는 누구라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념관 관계자는 "한때 철거 직전까지 갔으나 복원 사업으로 제 모습을 찾았으며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이했다"며 "충칭의 근현대사를 알리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람객이 예전만 못하다는 현실은 씁쓸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할 만큼 발길이 뜸해진 현실은 뼈아픈 대조였다.
임정 청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이 있다.
1940년대 한국 청년들이 총칼을 들고 항일투쟁을 준비하던 본거지다.
충칭시는 당초 건물 철거를 계획했으나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9년 새롭게 복원했다.
답사단이 찾은 이날은 국가보훈부와 충칭한국인(상)회 주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창설 85주년 기념식이 열려 의미를 더했다.
현재 임정 청사와 광복군 사령부 건물 주변은 '충칭의 명동'으로 불릴 만큼 화려한 상업지구로 변했다.
롤렉스와 구찌 등 명품 매장이 줄지어 있는 금싸라기 땅에 우리의 역사가 보전돼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국외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적지 탐방단' 단원인 안유림씨는 "중국이 서울 한복판에 자국의 낡은 건물을 보전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라고 읊조리기도 했다.
도심을 벗어나 찾은 옛 일본군 포로수용소는 또다른 표정을 보여줬다.
일본군 포로 1천여명을 수용했던 곳으로, 광복군은 이곳에 억류된 한국인 포로 32명을 광복군에 합류시켰다.
그러나 현재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방치돼 있다.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며 거주하지만, 벽에 남아 있던 포로들의 낙서는 보수 과정에서 이미 사라졌다.
노인 주모씨는 "한국인이 온 건 수년 만에 처음"이라고 반가워한 뒤 운동장과 초소가 있던 자리 등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마을 한편에 세워진 '붉은 깃발 일본군 포로수용소'라는 안내판은 중국이 이곳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표였다.
그러나 한국인 포로의 존재나 중국군과 함께 일본에 맞서 싸운 사실은 언급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전쟁과 식민지의 고통을 품었던 공간이 역사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임정 요인들이 살았던 토교촌은 더 아득했다.
하천에 놓인 다리의 이름이 흙다리라는 데서 이름 붙여진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누군가가 설치한 담장으로 막혀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멀리서 지형만 가늠할 수 있을 뿐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탐방단원 박지원씨가 "난징도 그렇고, 충칭도 그렇고, 가는 곳마다 유적지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아쉬워하자 탐방단을 이끈 홍소연 전 백범김구기념관 자료실장이 "흔적이 없어도 여기에 서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말해 현장은 잠시 숙연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기억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희미해지고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독립운동의 발자취는 현장보다 기록과 증언 속에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마저 사라진다면 항일의 기억을 어떻게 후대에 전할 수 있을까.
화려한 불빛 아래 점점 자취를 감추는 충칭의 항일 유적들은 우리에게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기억하지 않으면, 지키지 않으면, 역사는 그렇게 사라져간다.
답사단은 저녁 시간을 이용해 독립운동 주제 발표를 하고, 휴식 시간에는 독립운동 퀴즈대회를 여는 등 잊혀가는 역사를 붙잡으려 애썼다.
광복 80주년 임정로드 여정은 단순한 추억 여행이 아니었다.
사라지고 잊혀 가는 현장을 기록으로 묶어두려는 간절한 몸짓이자, 후대에 물려줄 기억을 지키는 일이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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