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 소년, 10년의 기록”…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나나와의 왕자’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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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위 소년, 10년의 기록”…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나나와의 왕자’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 [인터뷰]

경기일보 2025-09-21 16:30: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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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 스틸. 청소년이 된 앙헬(오른쪽)이 바닷가에서 자유롭게 달리고 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누군가는 때로 “A와 B, 둘 중에 당신은 무엇이냐”며 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는 세상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으며 누군가에겐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홉 살 소년이 성인이 되어가는 10년의 시간을 옆에서 지켜보며, 영화로 담아낸 작품은 ‘삶’이란 영원히 두 세계의 경계를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1~17일 임진각평화누리 등 경기도 전역에서 국내외 50개국 143편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선보였던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227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으로 관객의 주목을 받은 영화가 있다. 국제경쟁부문 초청작이기도 한 ‘나나와의 왕자’다. 영화는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두 경계에 자리한 소도시 ‘나나와(Nanawa)’에 살아가는 한 소년의 기록이지만, 그 속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영화제가 열린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은 “불완전함을 겪는 청년 세대, 두 나라 사이 비무장지대라는 특수한 경계에 놓인 한국의 관객에게 영화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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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고양의 한 카페에서 만난 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 감독은 9살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10년을 카메라에 기록했다. 이나경기자

 

■ 두 개의 세계, 두 개의 언어

 

2부로 구성된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됐다. 1부는 나라, 정체성, 언어, 가족 등 소년을 구성하는 외부 세계와 관한 이야기이며 2부는 소년에서 남자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학생에서 노동자로, 누군가의 아들에서 한 아이의 부모로 성장하는 소년의 내면 세계와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파라과이의 소도시 ‘나나와’의 어느 골목에서 시작한다. 24살의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인 클라리사 나바스와 제작진은 경계의 도시, 나나와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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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 스틸.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자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의 경계를 잇는 다리가 담겨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파라과이는 스페인어와 과라니어 두 개가 모두 공용어인데, 라틴아메리카에서 원주민 언어인 토착어가 국가 공식 언어 지위를 갖는 건 매우 드물다. 그만큼 파라과이 사람들에게 ‘과라니어’는 민족적 자부심이자, 정체성이자, 역사적 뿌리를 담는다. 반면 스페인어는 파라과이란 나라를 세계와 연결하는 중요한 공식적 언어로 스페인어는 ‘제도’의 언어, 과라니어는 ‘뿌리’의 언어라 할 수 있다.

 

감독이 만난 한 파라과이 여인은 제작진에게 “스페인어와 과라니어 사이에 경계가 있냐”고 묻고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파라과이 사람들에겐 두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다. 이때, ‘앙헬’이 그들에게 말을 건다. “왜 나에겐 질문하지 않냐”고. 그것이 클라리사와 앙헬의 첫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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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 스틸. 주인공인 앙헬과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이 처음 만난 순간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당찬 질문을 던진 9살 소년에게 감독은 이끌린다. 소년은 자신은 파라과이의 피가 흐르면서 동시에 아르헨티나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소년은 자신이 학교에서 친구와 과라니어로 대화하자 선생님이 화를 냈던 일화를 설명하며 ‘그것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고 반문한다. ‘자신은 그저 동물을 사랑하고 돌보고 싶은 수의사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어른조차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문제와, 선택의 강요 사이에서 아홉 살 소년의 자기 확신에 찬 대답과 영민한 모습에 감독은 앙헬이란 소년에 매료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클라리사 감독은 10여년 전 앙헬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기적 같은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앙헬이 삶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저 역시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의 경계에서 자라났고, 저조차도 답하지 못했던 질문에 앙헬이 자신만의 명확하면서도 올바른 대답을 하는 것을 보며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카메라를 줬고, 자신의 세상과 친구들을 담아보라고 했습니다.”

 

영화는 이처럼 클라리사가 그를 관찰하며 그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 더불어 앙헬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들로 구성돼 있다. 앙헬은 자신의 고민을 카메라에 이야기하며 가장 내밀한 친구가 됐고, 그와 클라리사는 영상을 통해 서로를 지켜주는 유대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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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 스틸.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와 어린 앙헬이 함께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 어느 날 찾아온 변화, 소년은 어른이 됐다

 

2부에서 나타난 앙헬의 변화는 누군가에겐 충격일 수도 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되고, 타인에게 무례하면 안된다고 말하던 맑고 순수하고 귀엽던 어린 소년은 거친 모습의 10대로 자라났다. 소년을 구성하던 주변의 세계도 달라져 있었다. 마약에 노출되거나, 파티에서 누군가 죽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몰며 어른과 뒤섞여 있는 앙헬의 모습은 불안해 보인다.

 

다큐멘터리의 세계에서 피사체와의 거리는 늘 고민의 대상이다.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대상을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는 것이기에 피사체와 연출가 사이의 경계는 가까울 수밖에 없다. 9살 어린 아이의 모습부터 지켜왔던 어른으로서 감독인 클라리사 역시 깊은 고민을 하는 지점이 존재했을 것이다.

 

“앙헬이 사춘기를 겪으며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파라과이라는 사회에선 소년에게 더욱 남성적인 모습을 강요하기도 하구요. 제가 알던 앙헬의 모습과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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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고양의 한 카페에서 만난 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 감독은 9살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10년을 카메라에 기록했다. 이나경기자

 

클라리사와 제작진인 어른들이 한 것은 ‘기다림’이었다고 한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작품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앙헬의 삶이라는 것이니다. 앙헬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고, 영화라는 건 언제든 다른 소재로도 찍을 수 있습니다. ‘소년의 삶’을 다루기 위해 앙헬을 선택한 게 아니라, 앙헬과 우리가 맞닥뜨리게 됐고, 그러면서 그와 영원히 그의 삶을 카메라로 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작품을 촬영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영화는 관찰자이면서도 동시에 여느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감독과 피사체가 활발하게 소통한다. 앙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슬픔과 단란하기만 했던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 나의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만나는 순간, 남자가 되어 여자친구와의 사랑으로 고민하는 그 순간들 속에서 클라리사는 그의 곁에서 언제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를 지켜준다. 10여 년의 세월을 하나의 영화로 압축하는 편집 과정에서도 그녀는 앙헬과 함께 편집하며 그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직접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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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 스틸. 10대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앙헬이 어깨에 짐을 지고, 다리를 건너고 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 두 세계의 다리를 건너다

 

“앙헬이 어깨에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는 모습을 처음 보며 슬픔과 충격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잇는 보도교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는다. 더 저렴한 가격, 높은 이윤을 위해 누군가는 그 다리를 건너며 밀매를 하기도 한다. 앙헬 역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그 다리를 건너던 때가 있었다. 클라리사는 앙헬이 앙헬의 아이를 안은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아직 성인이 채 되지 않은 십대의 소년이자, 어린 아이였던 앙헬은 어느새 어른이 돼 있었다.

 

“앙헬이 영화 편집 과정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장면을 더 보여주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만큼 그의 삶이 담긴 소중한 기록입니다.”

 

자신의 아들 ‘노아’에게 앙헬은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듯 노아가 언젠가 작품을 보고, 아버지인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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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나나와의 왕자’ 스틸. 어린 앙헬이 제작진이자 어른에게 업혀 길을 건너고 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영화는 앙헬의 삶이 불행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건 누군가의 잣대로 보는 편견일 뿐이다. 수의사를 꿈꾸던 소년은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됐고, 지금은 상업 영화의 배우라는 꿈을 꾸고 있다. 여전히 그와 활발히 소통하며 스위스 등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그녀는 앙헬과 함께 무대에 나서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앙헬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가치를 인정하는 치유를 받기도 했다고 말한다. 온전하지 않은 세계에서도 앙헬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경계는 무언가를 구별짓는 가림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곳은 두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문이자 기회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경계는 두 지역을, 두 세계를 흡수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녀는 작품이 관객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앙헬의 삶이자 고작 카메라 한 대밖에 없던 24살의 제가 30대가 되어간 제 삶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의 삶이기도 하죠. 작품을 다 보고 나면, 모두에게 질문이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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