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문학주간' 피날레 장식한 '김혜순, 시하다' 낭독회
동료 시인들과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전체 낭독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저는 이 시들을 쓸 때, 저와 타자, 저와 동물 식물 사물 광물의 경계를 지우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시간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도 넘나들었습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지하 2층 소극장. 무대 위 검은 화면에 이 같은 문구를 포함한 글귀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공간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
관객들이 숨죽인 가운데 미리 녹음된 김혜순(70) 시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시인이 최근 펴낸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첫머리에 실린 '시인의 말'이었다.
"이 시집 제목이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인 것은 제가 어느 건물의 로비에서 커다란 어항 같은 화면에 처음 보는 생물이 하나 일렁이는 걸 보고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말'에서)
녹음된 음성이 공연장을 채우는 동안 김혜순이 조명을 받으며 나타나 무대 위에 마련된 여섯 개의 의자 중 가장자리에 놓인 것에 앉았다.
빨간 뿔테안경에 파란 상의, 흰 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시인은 앞서 재생된 자기 음성을 이어받듯 이번 시집 맨 앞에 수록된 시 '그리운 날씨'를 낭송했다.
"날씨와 나, 둘만 있어 / 다정했다 매서웠다 날씨의 기분 // 나는 날씨와 둘만 살아 / 날씨에 따라 당연히 옷을 갈아입고 / 춤춰줄까 물구나무서줄까 물어봐" (시 '그리운 날씨'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문학주간 2025'의 막을 내리는 행사인 '김혜순, 시하다 - 신작 시집 낭독회'의 첫 장면이다.
이날 행사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김혜순이 자신의 신작 시집을 다섯 명의 젊은 시인과 함께 낭독하는 자리였다. 김상혁·신해욱·안태운·유선혜·황유원 시인이 김혜순과 무대에 올랐다.
처음에는 김혜순이 혼자 낭독하기 시작했고 이어 다른 시인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시작한 지 30여분이 지나자 무대 위 의자 여섯 개가 전부 채워졌다.
시인들은 초반에 시를 하나씩 낭독하다가 중반부에 접어들자 몇몇 시에서 화자가 여럿이라는 것을 표현하듯 서로 주고받듯 나눠 읽었다.
예를 들어 '알라모아나'는 모든 시인이 낭송에 참여해 마치 여러 생각이 두서없이 섞이는 듯한 인상을 줬다. 직전까지 시를 읊는 시인 한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쏘던 무대 조명도 이 시의 낭독이 시작되자 모든 시인을 조명했다.
"거울 속과 거울 밖의 두 사람 / 새를 임신했네 // 하나님은 초승달을 들어 내 목욕물을 휘젓고 // 치마를 입고 춤추는 남자들의 무아지경 // 무지개는 심심하다면서 어디서나 떠오르고" (시 '알라모아나'에서)
133석 규모의 소극장은 105명의 관객이 입장해 대부분의 자리를 채웠다. 관객들은 1시간 30분 넘게 차분한 목소리로 낭독되는 시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모든 시를 낭독하고 장내가 환해지며 시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터졌다. 김혜순이 무대 가운데로 이동해 동료 시인들과 함께 관객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자 박수갈채는 더욱 뜨거워졌다.
행사가 끝나자 9시가 가까운 늦은 시간임에도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김 시인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무대 뒤로 사라졌던 김혜순은 환한 얼굴로 극장 입구 앞에 나타나 시집에 사인해주며 관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혜순은 2019년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올해 독일 세계 문화의 집 국제문학상 등 유력한 해외 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3일 개막한 '문학주간 2025'는 이날 막을 내렸다. '도움-닿기'를 주제로 열린 올해 문학주간에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토니상 6관왕을 차지한 극작가 박천휴, 소설가 백온유, 성해나, 황정은,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등 여러 분야의 예술인들이 대중과 소통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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