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7] 이름 없는 장인들의 마을③ 그리고 귀족 무덤에 새겨진 이름 없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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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7] 이름 없는 장인들의 마을③ 그리고 귀족 무덤에 새겨진 이름 없는 얼굴들

문화매거진 2025-09-19 11:48:3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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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6] 이름 없는 장인들의 마을② 이네르카와 센누템에 이어 
 

▲ 룩소르 귀족의 무덤 Ramose – TT55. 귀족 무덤의 이 벽화에는 장례 의식에서 여인들이 두 팔을 들고 통곡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죽은 이를 애도하며 슬픔을 표현하는 고대 이집트 장례 문화의 한 장면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룩소르 귀족의 무덤 Ramose – TT55. 귀족 무덤의 이 벽화에는 장례 의식에서 여인들이 두 팔을 들고 통곡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죽은 이를 애도하며 슬픔을 표현하는 고대 이집트 장례 문화의 한 장면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문화매거진=한민광 작가] 귀족 무덤의 벽화를 바라보면 처음에는 주인공인 귀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언제나 크고 뚜렷하게 그려져 있으며, 장엄한 의자에 앉아 있거나 제사를 받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옮겨보면 그 곁에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들은 이름이 적히지 않았고, 귀족의 영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배경처럼 배치되었지만, 오히려 그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당시 사람들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곡물을 거두는 농부의 구부정한 어깨, 술을 빚는 여인의 분주한 손길, 연주에 몰두한 악사의 표정, 귀족 곁에서 늘 그림자처럼 서 있는 시종의 모습, 장례 의식에서 통곡하며 머리를 움켜쥐는 여인들까지… 이들은 이름 없는 인물들이지만, 무덤 벽화 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강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다.

▲ 룩소르 귀족의 무덤 Menna TT-69. 이 벽화에는 밭을 갈고 곡식을 베며 추수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인의 일상과 노동, 그리고 농업이 지닌 생명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룩소르 귀족의 무덤 Menna TT-69. 이 벽화에는 밭을 갈고 곡식을 베며 추수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인의 일상과 노동, 그리고 농업이 지닌 생명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특히 농부들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곡식을 베고 단을 묶는 장면, 커다란 자루에 곡물을 쏟아붓는 모습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노동의 리듬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선과 색은 단순하지만, 움직임은 사실적이다. 허리를 굽히는 각도, 손끝에 모인 힘, 땀에 젖은 듯한 자세 속에 고대 이집트 농업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진다. 귀족의 부와 권력은 결국 이런 노동의 결실 위에 세워졌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 룩소르 귀족의 무덤 Rakhmire TT-100. 이 벽화에는 노예들이 진흙을 이기고 벽돌을 만드는 장면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흙을 나르고, 물을 섞고, 틀에 넣어 벽돌을 찍어내는 과정이 마치 공정도처럼 이어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일상의 노동을 예술 속에 담아낸 사실은 그들의 현실적 삶과 예술적 감각을 동시에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룩소르 귀족의 무덤 Rakhmire TT-100. 이 벽화에는 노예들이 진흙을 이기고 벽돌을 만드는 장면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흙을 나르고, 물을 섞고, 틀에 넣어 벽돌을 찍어내는 과정이 마치 공정도처럼 이어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일상의 노동을 예술 속에 담아낸 사실은 그들의 현실적 삶과 예술적 감각을 동시에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가장 놀라운 장면 중 하나는 과수원 옆에서 노예들이 흙벽돌을 만드는 모습이다. 어떤 이는 흙을 반죽하고, 어떤 이는 벽돌을 찍어내며, 또 다른 이는 벽돌을 들어 옮기고 있다. 그림 한편에는 물독을 메고 들어가는 사람도 보인다. 주변을 감싸듯 그려진 나무들은 이 장면이 과수원 가장자리에 자리한 노동 현장임을 말해준다. 이 그림은 단순한 건축 준비 장면을 넘어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역사 속에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 노예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 역사에서 노예는 기록되지 않거나 이름 없는 그림자로만 남아 있지만, 이곳에서는 분명히 그들의 몸짓과 노동이 새겨져 있다. 허리를 굽히고 진흙을 다지는 모습, 힘겹게 벽돌을 들어 올리는 모습은 수천 년이 흘러도 그들의 숨결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 룩소르 귀족의 무덤 Rakhmire TT-100. 이 벽화에는 하프와 플루트를 연주하는 악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음악이 고대 이집트 귀족 사회의 잔치와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룩소르 귀족의 무덤 Rakhmire TT-100. 이 벽화에는 하프와 플루트를 연주하는 악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음악이 고대 이집트 귀족 사회의 잔치와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악사들의 장면도 자주 눈에 띈다. 하프와 리라, 플루트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신에게 드리는 제의와 잔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악사들의 얼굴은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특히 여성 악사들이 하프를 켜는 장면은 부드러운 선과 유려한 자세로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음악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귀족의 삶을 장식한 음악이 사실은 이 무명의 악사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그림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 룩소르 귀족의 무덤들. 이 벽화에는 하인들이 귀족 주인에게 음식을 바치고 시중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이집트 귀족 사회의 위계 질서와 일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룩소르 귀족의 무덤들. 이 벽화에는 하인들이 귀족 주인에게 음식을 바치고 시중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고대 이집트 귀족 사회의 위계 질서와 일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그리고 늘 귀족 곁에 서 있는 시종과 하인들의 모습이 있다. 그들은 음식과 물건을 들고, 부채를 흔들며, 때로는 귀족의 발치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고 단순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존재 없이는 귀족의 권위도 완성될 수 없었다. 그들의 그림자는 언제나 주인을 따라다녔고 그늘 같은 존재였지만, 사실은 삶을 떠받친 사람들이었다.

▲ 룩소르 귀족의 무덤 Ramose – TT55. 귀족의 장례 행렬이 장엄하게 묘사되어 있다. 앞에서는 여인들이 두 팔을 들고 통곡하며 슬픔을 표현하고, 뒤이어 하인들이 제물과 가구, 귀중품을 운반하고 있다. 행렬의 중심에는 신에게 바칠 제물과 함께 고인의 영혼이 사후 세계로 인도되는 장면이 담겨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룩소르 귀족의 무덤 Ramose – TT55. 귀족의 장례 행렬이 장엄하게 묘사되어 있다. 앞에서는 여인들이 두 팔을 들고 통곡하며 슬픔을 표현하고, 뒤이어 하인들이 제물과 가구, 귀중품을 운반하고 있다. 행렬의 중심에는 신에게 바칠 제물과 함께 고인의 영혼이 사후 세계로 인도되는 장면이 담겨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장례 의식의 벽화도 마찬가지다. 귀족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장엄하게 묘사하는 장면 속에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함께 등장한다. 통곡하며 가슴을 치는 여인들, 제물을 나르는 하인들, 악기를 연주하며 의식을 돕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은 단순한 의례적 몸짓을 넘어선 감정의 진실을 보여준다. 눈물을 흘리며 손을 뻗는 모습은 수천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이렇게 귀족 무덤의 벽화는 주인공인 귀족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이름 없는 얼굴들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배경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천천히 바라보면 그들이야말로 당시 사회와 문화를 떠받친 진짜 뿌리임을 알 수 있다. 귀족의 부는 농부의 땀에서 나왔고, 의식의 풍요는 노예들의 손길에서 비롯되었으며, 권위의 장엄함은 하인과 시종들의 그림자 같은 존재를 통해 완성되었다. 음악과 노래, 그리고 통곡과 눈물까지… 그 모든 것이 모여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채웠다.

역사는 늘 왕과 귀족의 이름만을 남겼다. 그러나 벽화 속에는 분명히 이름 없는 다수의 얼굴이 남아 있다. 그들은 역사에서 그림자로만 존재했지만, 사실은 역사를 떠받친 사람들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미술은 파라오의 영광만이 아니라 무명의 사람들의 손길과 삶을 동시에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귀족 무덤의 벽화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주인공의 위엄보다 오히려 그 곁에서 묵묵히 일하는 얼굴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 작은 선과 단순한 색채 속에 담긴 힘은, 이름은 남지 않았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진하게 다가오는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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