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판소리 완창은 오늘날 거의 의례에 가까운 공연 형식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오로지 소리와 북장단만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연행자의 예술적 기량뿐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내구성을 검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동시에 완창은 판소리가 단순히 민속예술이 아니라 문학적 구조와 음악적 형식을 모두 갖춘 종합예술임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는 서사 전체를 감상하고 내면화하는 드문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김수인의 ‘동초제 춘향가’ 완창 무대는 이런 전통 형식이 오늘날 어떻게 계승되고 해석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시도로 읽힌다.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약 460분에 이르는 장시간 공연으로, 동초제 춘향가의 전체 서사를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동초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예능보유자였던 김연수 명창이 정리한 창본으로, 극적 구성과 사설의 완결성이 높아 창극 대본으로도 자주 활용된다. 그만큼 장면 전환이 뚜렷하고 인물 간의 감정선이 정교하게 짜여 있어 완창을 통해 작품 전체의 구성미를 체감할 수 있는 사례로 손꼽힌다.
김수인은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최근 몇 년간 창극과 방송, 크로스오버 무대를 넘나들며 활동 반경을 확장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무용과 가야금을 익히며 판소리에 입문했고, 국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국립단체에 입단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임방울국악제 일반부 장원 수상,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흥보가’ 전수장학생 선정 등 전통 예술 내에서도 탄탄한 이력을 쌓아왔다. 동시대 대중문화와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젊은 예술가라는 점에서 김수인의 이번 완창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판소리의 동시대적 가능성을 점검하는 실천으로 볼 여지가 있다.
완창 판소리가 갖는 형식의 엄격함은 예술가에게 높은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하나의 선언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무대는 김수인 스스로가 “젊은 관객들이 전통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힌 만큼, 형식은 고전적이되 그 구현 방식은 동시대적 감각을 어느 정도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해설이나 무대 연출, 음향 디자인 등 외형적 요소를 통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할 여지를 마련하면서도, 정작 핵심인 소리의 구조나 사설의 흐름은 원형을 유지하는 방식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재 국악 공연 전반에서 관찰되는 이중 구조와도 닮아 있다.
이번 무대에는 고수로 김준영(광주시립창극단)과 송대의(음악그룹 HUM 동인)가 함께한다. 두 고수는 전통 연행과 현대 음악 협업 경험을 고루 갖춘 인물들로, 북장단의 유연성과 서사 흐름에 대한 해석력 모두에서 안정적인 지원이 기대된다. 완창 판소리에서 고수는 단순히 리듬을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창자와의 긴밀한 호흡을 통해 음악적 완결성을 형성하는 공동 연행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 또한 공연의 질을 가늠하는 주요 요소가 될 것이다.
전통예술은 자칫 형식과 관습의 반복으로 고착되기 쉽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끊임없이 해석과 실천의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김수인의 이번 춘향가 완창 무대는 바로 그 접점에 놓여 있다. 전통을 답습하지 않되, 변형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전통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동시대 청중과의 접촉면을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하다면, 이 공연은 완창이라는 오래된 형식을 통해 판소리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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