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남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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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글에서 회피형 남성이 관계의 온도를 스스로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정교한 심리 기술, 비활성화 전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상대의 장점을 단점으로 보고,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며, 현실 너머의 환상을 좇는 그들의 모습은 상처받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들은 왜 애초에 그토록 견고한 방어벽을 쌓아 올려야만 했을까요?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일이 왜 그들에게는 이토록 어렵고 버거운 과제가 되었을까요?
그 해답은 대부분 한 인간의 가장 깊고 오래된 기억, 바로 어린 시절의 회피형 남자 가족 관계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한 사람의 관계 맺는 방식은 어른이 되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 부모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려진 ‘애착’이라는 밑그림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피형 애착 원인의 핵심입니다.
감정 표현이 거절당했던 아이: 무시 회피형의 탄생
무시 회피형 성향을 가진 사람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종종 ‘정서적으로 메마른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부모는 밥을 주고 옷을 입히는 물질적 보호자였을지는 모르나, 마음을 기대고 위로받을 수 있는 정서적 안식처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음식과 잠자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비춰주고 안아주는 따뜻한 거울인데, 그 거울이 부재했거나 왜곡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넘어져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갔을 때, “뚝 그쳐, 사내자식이 우는 거 아니야”라며 감정을 억압하도록 가르쳤을지 모릅니다.
혹은 아이의 감정에 어쩔 줄 몰라 “그래서 해결책이 뭔데? 무릎이 까졌으면 약을 바르면 되잖아”라며 문제 해결에만 집중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생존을 위한 지혜를 체득합니다.
‘나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구나. 오히려 표현하면 부모님을 귀찮게 하거나 실망시킬 뿐이구나. 사랑받고 인정받으려면, 의존하지 않고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구나.’
이것이 생존을 위해 아이가 선택한 최선의 전략입니다. 감정의 수도꼭지를 스스로 잠그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는 것.
심지어 이런 아이는 주변 어른들에게 ‘착하고 속 썩이지 않는 아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자신의 전략이 옳았음을 확인받기까지 합니다.
이 전략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이어져, 연인이 정서적 친밀감을 요구할 때 과거의 거절당했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그는 감정의 교류를 불필요한 소모라 여기고, 독립성을 지키는 일에 집착하는 ‘무시 회피형’ 어른이 됩니다. 이처럼 유년기의 불안정 애착 경험은 성인기의 관계 패턴을 결정짓는 견고한 주춧돌이 됩니다.
예측 불가능한 사랑을 경험한 아이: 공포 회피형의 탄생
공포 회피형의 내면은 훨씬 더 혼란스럽고 복잡합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안정감과는 거리가 먼, 예측 불가능한 환경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들의 비극은 부모가 위로의 원천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점입니다.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인 항구가, 동시에 집어삼킬 듯한 폭풍우의 진원지였던 셈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는 세상 다정하게 안아주던 부모가 오늘은 사소한 일로 불같이 화를 내며 아이를 밀어내는 경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혹은 부모 자신이 겪는 우울감이나 트라우마로 인해 아이를 돌볼 에너지가 없어 방치하다가도, 죄책감에 갑자기 과도한 애정을 쏟아붓는 식의 일관성 없는 양육 환경이 펼쳐집니다.
때로는 이것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말로 포장된 정서적 학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혼돈 속에서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모순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부모님이 절실히 필요한데,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워.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은 언제 나를 해칠지 몰라.’
이 아이러니한 생존 공식은 그대로 성인기의 연애 패턴으로 이어집니다. 친밀감을 누구보다 갈망하기에 상대를 뜨겁게 원하며 다가가지만, 막상 관계가 가까워지면 과거의 상처가 경고등을 켜며 상대를 밀어내게 만듭니다.
‘이 사람도 결국 나를 떠나고 상처 줄 거야.’ 이처럼 내면의 갈망과 공포가 끝없이 충돌하며,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공포 회피형’ 어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서도, 동시에 그 손에 언제 맞을지 몰라 몸을 움츠리는 아이의 모습을 평생 간직한 채 살아갑니다.
상처를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
회피형 남자 가족관계의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의 행동이 당신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새겨진 생존 본능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현재는 과거의 끊임없는 메아리인 셈입니다.
물론, 이 이해가 그의 상처 주는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당신이 무조건 감내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혹은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라는 자책 섞인 물음에서 벗어나, ‘이 사람은 이런 아픔을 가졌구나’라고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게 돕습니다.
관계의 문제를 나의 가치 문제로 끌고 와 스스로를 괴롭히던 일에서 멈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던질 힘을 얻습니다. 이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과 나는 과연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특히, 이 회피 성향이 자기애성 성격(나르시시스트)과 만나면 어떤 비극이 펼쳐질까. 다음 글에서는 최악의 조합이라 불리는 ‘회피형과 나르시시스트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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