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2] 파피루스① ‘나일강이 건네준 혁명’에 이어
[문화매거진=한민광 작가] 박물관에서 본 파피루스는 늘 먼 시간 속에 묶여 있는 것 같았다. 유리관 속에서 바스러질 듯 남아 있는 그 얇은 종이는 ‘역사’라는 이름 아래 머물러있다. 그런데 이집트의 어느 작은 시골에 가면 그 파피루스가 아직도 살아 있다. 3천 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오늘도 사람들의 손에서 종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곳의 파피루스는 누군가의 개인 사업이 아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이어가는 삶의 방식이다. 아버지가 뿌리를 뽑아내면 아들이 줄기를 자르고, 어머니와 딸은 그것을 얇게 켜고 말린다. 그렇게 세대를 거쳐 내려오며 종이는 집안의 숨결과 함께 완성된다.
농부가 파피루스 줄기를 베어내는 장면을 가까이서 보았다. 무심히 툭 꺾는 것 같지만, 사실은 뿌리에서부터 힘을 주어야만 한다. 잘려 나온 줄기는 20~30센티미터 길이로 가지런히 쌓인다. 신기한 것은 파피루스 줄기의 단면이 세모라는 사실이었다. 다른 나무처럼 둥근 모양이 아니라 건축의 기둥처럼 반듯하게 잘린다. 나는 그 단면을 보면서 ‘자연이 이미 스스로 건축가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린 줄기는 다시 낚싯줄 같은 얇은 칼로 곱게 켜낸다. 얇게 잘려나간 조각들이 손에 닿으면 미끄럽고 부드럽다. 그것들은 곧 물과 알코올이 섞인 큰 대야 속에 잠긴다. 하루, 이틀, 때로는 더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불린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그 과정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준비다.
이후 나무 조각들을 꺼내어 바둑판처럼 하나하나 올려놓는다. 세로로, 그 위에 가로로, 다시 세로로. 서로 겹치며 얽혀드는 순간, 단순한 식물 줄기가 아니라 직물이 된다. 그 모습은 마치 기하학적 무늬가 반복되는 고대 벽화를 보는 듯하다. 이것은 단순함 속의 질서, 질서 속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겹쳐진 조각 위로 두꺼운 천을 덮고, 기계로 눌러낸다. 물기가 빠지고, 섬유들이 하나로 달라붙는다. 그리고 햇볕에 바짝 말려내면 드디어 한 장의 파피루스가 손에 잡힌다. 표면은 거칠지만,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비친다. 마치 오래된 캔버스 같기도 하고, 세월의 주름이 담긴 천 조각 같기도 하다. 한 장의 종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시간이 지나갔는지를 떠올리면 쉽게 넘길 수 없다.
완성된 종이는 다시 한 노년의 예술가에게 전해진다. 그는 40년 넘게 파피루스 위에 그림을 그려 온 장인이다. 그의 손은 세월에 닳아 있었지만, 붓끝은 놀라울 만큼 정밀했다. 붓이 종이 위를 스칠 때마다 고대 신들의 얼굴이 살아나고, 나일강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때로는 동네 시장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이 스며들기도 했다. 한 장의 파피루스 위에서 신화와 현실이 나란히 놓였다.
나는 그의 작업을 오래 바라보았다. 종이 위에 색을 입히는 과정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불러내는 일 같았다. 수천 년 전 장인이 남긴 흔적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파피루스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무대였고, 예술가의 손은 그 무대의 조명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들은 결국 관광지에서 판매된다. 여행자들은 기념품 가게에서 그림을 고른다. 파라오 람세스의 초상, 상형문자, 피라미드가 그려진 그림들. 그들에게는 단순히 예쁘고 독특한 기념품일 뿐이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수많은 손길과 기다림, 그리고 세월의 무게는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
나는 파피루스 그림 한 장을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표면의 거친 결은 농부의 땀을 닮아 있었고, 그 위에 올려진 색은 화가의 인생을 닮아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림이 아닌, 시간을 겹겹이 쌓아 만든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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