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주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체포·구금된 사건은 단순한 이민 단속을 넘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전반에 내재된 ‘비자 리스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더 나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미국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지난 4일(현지시간) 전격적인 급습 작전을 통해 총 475명을 체포했다. 이중 한국인은 332명에 달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실제 활동과 맞지 않는 비자 사용이었다. ESTA, B-1 등 단기 체류 비자를 활용해 현지 근로를 이어온 관행이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기조 속에서 차단된 것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일 국회 산업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에 송구하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기업의 미국 투자 시 비자·고용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수년간 비자 문제를 미국에 제기했음에도 이번과 같은 충격적 단속이 발생한 것은, 해외투자 정책 공백과 미 정부 기조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는 지적이다.
사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ICE는 할 일을 한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7일(현지시간) 발언은 달라졌다. 그는 “배터리든 조선이든, 우리 국민이 복잡한 일을 하려면 전문가들이 들어와 훈련시켜야 한다”며 전문 인력 비자 완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인 트루스소셜을 통해서도 “투자는 환영한다. 다만 합법적으로 영리한 사람들을 데려와 미국 근로자를 훈련시키라”며 “우리는 빠르고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 내 제조업 부흥을 위한 ‘외국인 전문가 활용+미국인 훈련’이라는 조건부 유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환경이 한층 불확실해졌음을 경고한다. 미국은 매년 8만 5000개의 H-1B 비자를 추첨제로 발급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L-1 주재원 비자도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 대규모 인력 수요에 적합하지 않다. 그 결과 한국 기업들은 단기 출장 비자에 의존해왔으나, 이번 단속으로 이 관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트럼프의 발언은 단기적으로 ‘출구 전략’을 마련하려는 제스처일 수 있으나, 향후 대미 투자가 비자·노동 규제 변수에 크게 좌우될 것임을 시사한다. 투자비용은 늘어나고, 일정은 지연되며, 법적 리스크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이 ‘생산기지+인력 파견’ 전략 대신 현지 채용·교육 중심 모델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제 비자·고용 관리 시스템을 투자 전략의 핵심 변수로 삼아야 한다. 미국 내 투자 확대라는 정부·재계의 공동 목표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투자를 유치하면서 투자 비자를 보수적으로 보면 어떻게 하느냐”는 김정관 장관의 항의는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라, 한미 경제협력 구조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경고음이다.
이번 조지아주 사태는 ‘미국 투자=고정된 성공 방정식’이 아니라, 언제든 정책 리스크에 흔들릴 수 있는 불안정한 선택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달라진 미국'을 입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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