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취향을 지닌 이의 집에는 어떤 작품이 걸려 있을까? ‘취향을 닮은 집’을 통해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디뮤지엄의 전시 <취향가옥>이 시즌 2로 돌아왔다. 2026년 2월 2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개인 컬렉터의 프라이빗 컬렉션도 두루 소개한다. 그중 M2에 위치한 한 전시실은 갤러리 소프트코너와 카페 노커피 서울을 운영하는 고기환 대표의 공간이다. 카우스, 톰 삭스, 무라카미 다카시, 키네(KYNE), 하나이 유스케, 스니커울프, 코인 파킹 딜리버리, 그라플렉스, 옥승철 등 인기 아티스트의 아트토이와 판화, 컬래버레이션 굿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단순히 유명 작가의 작품을 모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만의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고기환 대표가 수집이란 관계를 통해 이뤄진다고 말하는 이유다. 입구에 걸린 원형의 타이포그래피 작품은 소프트코너의 ‘soft’를 담은 스니커울프의 작업이다. 노커피 서울 오픈을 기념해 작가가 선물한 것이라고. 자전거 헬멧에는 일본 작가들의 사인이 가득하고, 테이블 위에 하나이 유스케가 그린 고 대표의 캐리커처가 놓여 있다. 침실에는 양현준 작가가 고 대표의 아이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 걸렸다.
전시실에서 고기환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스폿은 크고 작은 사진과 티켓, 메모, 지류 기념품 등을 붙인 아카이브 보드다. 누구나 티켓이나 엽서, 팸플릿 등을 모은 상자를 하나쯤 갖고 있을 것이다. 그가 처음 참여한 경매의 숫자 패드, 카우스 홀리데이 후지산 전시의 캠프 기념 증서, 공연 및 전시 티켓과 기념사진 등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물건들이다. 이는 고 대표의 사무실에 걸린 게시판을 옮겨둔 것인데, 그는 물건을 잘 아카이빙하는 것만으로도 기억의 힘이 강해진다고 믿는다.
베어브릭에서 출발한 장난감에 대한 관심이 어느새 아트토이로, 그리고 갤러리를 운영하며 아트로 확장되었다고 말하는 고기환 대표. 그의 컬렉션은 쿨하고 멋진 아이템을 넘어 아티스트와 연결되는 매개체로 의미가 더 깊어졌다.
1 하나이 유스케 판화 앞에서 그의 베어브릭을 든 고기환 대표. 2 일본 아티스트 스니커울프가 선물한 ‘SOFT’ 타이포그래피 작품.
수집은 어떻게 시작했나? 일본 유학 중이던 대학생 시절, 작은 베어브릭 하나에 400엔이었다. 유학생 신분에 호기롭게 살 만한 가격인 데다 랜덤으로 뽑는 재미가 있어 하나둘 사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뽑을 확률이 아주 낮은 시크릿 베어브릭을 모으는 즐거움이 컸다.
그러다 아트토이를 접한 것인가?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베어브릭을 판매하는 토이 숍에 갔을 때 점원이 카우스의 피노키오 피규어를 추천했다. 70만원 정도였는데, 20대 중후반 청년이 쉽게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그때 카우스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됐고, 언젠가 이런 토이를 모으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아트토이를 수집했나? 꾸준히 베어브릭을 모으다 작가의 아트토이에 집중한 건 소프트코너 시작 전후다. 아트토이 분야에 실질적인 수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더 깊이 파야겠다고 생각했다.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라지만 잘 해내는 곳이 없다면 내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누군가 소프트코너의 시작점을 물으면 사업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아트토이 컬렉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전시를 준비하며 추려보니 대략 200~300점 있는 것 같다. 사실 정리를 잘해두진 못했다. 집이나 사무실에 꺼내놓지 않은 아이템은 박스째 창고에 보관한다.
집에는 어떤 아트토이나 작품을 두었나? 현재 전시 중인 컬렉션이 집에 있던 주요 아이템이다. 거실에는 도라에몽 50주년 판화와 한국 작가 아방의 작품을 걸어두었다. 또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판타지아>를 좋아하는데, 그라플렉스 작가님이 <판타지아>를 테마로 작업해 선물한 판화도 있다.
1 <취향가옥 2> 전시장 전경. 그라플렉스의 판화와 인형, 키네의 판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2 고기환 대표의 사무실에서 가져온 아카이브 보드. 3 키네, 코인 파킹 딜리버리, 톰 삭스, 무라카미 다카시의 컬래버레이션 굿즈.
유난히 구하기 어려웠던 아이템이 있다면? 작가나 에이전시와 관계를 만드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사실 쉽게 손에 넣은 건 없다. 에피소드가 하나 떠오르는데, 카우스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들을 때였다. 마지막에 진행자가 무언가를 보고 귀엽다며 무엇인지 물었다. 작가가 BFF 피규어의 파란색 버전이라고 설명하더니 ‘대외비인데 핑크색도 곧 나올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걸 듣자마자 홍콩에서 ‘카우스 홀리데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파트너사에 연락해서 구하고 싶다 말했다.
깨진 상태로 전시된 카우스의 세라믹 조각이 눈에 띈다.1,000점 한정 출시된 카우스 홀리데이 UK의 세라믹 에디션이다. 벽 선반에 올려두었는데 선반이 잘 고정되지 않았는지 떨어지며 파손됐다. 내 명함을 보면 그림이 하나 있다. 깨진 세라믹을 발견한 당시 CCTV에 찍힌 내 모습을 옮긴 것이다. 세라믹 작품이 400만원 정도였는데, 깨진 조각을 찍어 티셔츠로 판매해 원금을 회수했다(웃음).
일본의 ‘갤러리 타겟’이 롤모델이라고.미술 전공자가 아니지만 이 분야에 진입해보니 한국에는 상업적으로 운영하면서 한 카테고리에 집중하는 갤러리를 찾기 어려웠다. ‘갤러리 타겟’ 대표님도 미술을 전공한 분이 아니다. 빈티지 자동차 숍에서 일하다 바스키아나 앤디 워홀 작품을 하나씩 모으면서 39세에 갤러리를 열었다고 한다. 그는 소개하고 싶은 젊은 작가를 모아 전시를 여는 동시에 소장품을 세컨더리 마켓에 2차 판매해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 당시 함께 작업한 무명의 작가가 하나이 유스케, 키네(KYNE) 등이다. 그러니 작가와 오너의 관계도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크루 같은 느낌이다. 그런 협업 관계가 멋지다.
1 하나이 유스케의 ‘커피와 사색’.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짐 호퍼를 묘사했다. 2 카우스 홀리데이 한정판 세라믹 조각. 깨졌지만 여전히 보관 중이다.
소프트코너가 아티스트를 찾는 기준은 무엇인가? 데이터와 정보를 기반으로 디깅한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예를 들어 무라카미 다카시를 좋아한다면 그의 팔로우 목록에서 젊은 작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또 미국이나 홍콩 등 해외 매거진이나 경매 웹사이트를 살피며 미술 전문가가 언급하는 작가를 검색한다. 이후 작가를 섭외할 때는 연락을 나눈 뒤 인터뷰 일정을 잡는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확신을 얻는다.
최근 주목하는 아티스트를 소개해달라.영국에서 활동하는 나이지리아 태생 작가 슬론(Slawn)이 최근 인스타그램에 ‘카우스X슬론’이라는 문구와 함께 작품 사진을 올렸다. 언뜻 보면 협업 같지만 실은 오마주 작품이었다. 포스팅이 화제가 되자 카우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실이 아니라는 스토리를 게시했다. 그러니까 카우스가 안 멋있어 보이는 거다(웃음). 쿨하게 응원한다고 하면 멋질 텐데 굳이 진지하게 부정한 거니까. 그렇게 관심이 생겨 찾아보니 슬론은 이미 나이지리아에서 친구들과 브랜드도 론칭했고 버질 아블로의 인정을 받은 작가였다. 카우스가 우리 세대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라면, 2000년생인 슬론은 우리보다 젊은 세대가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슬론은 성공한 작가가 되면 나이지리아로 돌아가 고국의 문화와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꿈이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그러한 포부를 품고 활동한다면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집품 중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아이템을 고른다면? 유 나가바 작가의 비너스 아트토이는 내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 토이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시위가 한창이던 때, 작가의 첫 홍콩 전시 소식이 들려왔다. 전시를 주관하는 업체에 밑도 끝도 없이 연락해 ‘작가의 팬인데 오프닝 리셉션에 초대해줄 수 있냐’라고 문의했다. 자기소개도 하고 언젠가 당신들과 협업하고 싶다고 어필하니 오프닝에 오라고 하더라. 당시 전시장에서 비너스 토이를 구매해 작가에게 사인도 받았다. 무작정 작가를 찾아간 것도 토이에 사인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이제는 작가와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돌아보면 갤러리의 시작점 같은 물건이라 할 수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피카츄 그림을 사인과 함께 받았기 때문에 더 의미가 크다.
8월 30일까지 소프트코너에서 수집에 관한 전시 <My Mess, My Wolrd>가 열린다. ‘누군가에게는 잡동사니,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일 세상’이라는 소개 글이 수집이라는 행위와 들어맞는다. 어떻게 기획한 전시인가? 이 전시는 컬렉터를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출발했다. 올 초 갤러리 확장 공사를 준비했는데, 공사가 미뤄지며 전시 일정을 잡기 애매해졌다. 그러다 아트 갤러리 대표이자 운동화, 피규어 등을 수집하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마땅한 수집품 정리함이 없어서 문승지 디자이너에게 가구를 의뢰했다고 하더라.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지만 나를 표현하는 취향을 선보이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논의 끝에 그분의 컬렉션을 전시하기로 했다. 수집품 전시인 동시에 상업적인 플리마켓이자 새로운 가구를 론칭하는 프리뷰 행사 성격도 띤다. ‘소프트코너’는 인도식 영어로 ‘누군가를 이유 없이 좋아하는 감정’을 뜻한다. 원래 그런 감정이 가장 무섭지 않나. 이번 전시처럼 이유 없이 좋은 것과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갤러리를 운영하고 싶다.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은 이 같은 전시를 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수집이라는 행위에서 어떤 기쁨을 느끼나? 물건은 가지기 전, 가지기까지의 과정이 좋다.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은 잠깐이지만, 구하는 과정의 모든 순간이 추억으로 남는다. 그게 수집의 진정한 희열 아닐까.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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