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시의 섬, 아이들의 순수한 생존기

*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아무도 모른다' 포스터

[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작 '아무도 모른다'는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세상의 무관심 속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네 남매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화려한 연출이나 극적인 갈등 없이 담담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아이들의 순수하고도 고단한 일상을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과 함께 인간 존재와 사회의 역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과 단절된 작은 섬: 도쿄 아파트의 네 남매

영화는 엄마와 함께 도쿄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온 첫째 아들 아키라(야기라 유야)와 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전학도 가지 못하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며 밖으로 나갈 때는 늘 보이지 않는 규율을 따라야 한다. 엄마는 때때로 돈과 먹을 것을 남기고 사라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결국 돌아오지 않게 되자 남매는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장 어린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생활을 이어가지만 전기, 수도가 끊기고 먹을 것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은 어린 남매에게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무게로 다가온다. 특히 어린 유키는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마냥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아 더욱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영화는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신파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시선으로 그려내, 오히려 더 큰 비극성과 쓸쓸한 감정을 안겨준다.

담담한 시선 속 비치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생명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절제되고 관조적인 연출은 '아무도 모른다'의 강렬한 인상을 형성한다. 감독은 아이들을 비극의 대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현실의 냉혹함 속에서도 서로를 보살피고 작은 놀이에 행복을 찾으며 잃지 않는 순수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그린다. 큰 사건 없이 반복되는 아이들의 일상, 그 속에 숨겨진 작은 행복과 아픔들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겨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과 꾸밈없는 행동, 그리고 봄여름 가을겨울을 거쳐 담담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은 일종의 맑고 깨끗한 시선으로 현실을 담아내는 감독의 미학적 접근과 연결된다. 이는 아이들이 처한 상황의 비극성을 더욱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도 그들의 순수한 영혼만큼은 훼손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회의 그림자, 그리고 고요한 울림

'아무도 모른다'는 단순히 아이들의 불행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이들이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무관심과 책임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세상의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이웃들의 삶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책임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존재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사회로부터의 외면은 결국 그들을 고립된 비극으로 몰아간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그들이 놓여있던 냉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은 잊혀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는다. '아무도 모른다'는 불편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진정한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관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