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MIA 작가] “과연 이 작업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돼요.”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P는 내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명함 뒷면에 간단히 적힌 그의 이력을 보니 언뜻 봐도 부족함 없는 경험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진행하고 있다는 작업 결과를 의심할 만한 최소한의 장애물들은 거뜬히 넘어설 내력은 갖추었다고 짐작하게 만드는 포트폴리오였다. 그런데도 그의 걱정이 왜,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이해되지 않아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P가 부러 의뭉스러운 태도를 취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단지 그의 걱정은 ‘이 작업을 효과적인 루트로 발표할 수 있을지’에 집중돼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 질문은 자꾸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 작업을 어떤 동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로.
어쩐지 그 질문에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알면 내가 다음에 올 말들을 이어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질문에 P는 끝까지 명쾌히 답하지 않았다. 대신 현재의 걱정을 반복해 들려줄 뿐이었다. 그의 대답이 제자리를 맴돌 동안 나는 그림을 어쩌다 그리기 시작했는지 돌아보기에 이르렀다. 친분이 있는 작가들의 시작은 어떠했는지와 더불어 여기저기서 들었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리곤 어떤 확신으로 인해 나는 P가 말하고 있는 도중에, 밀려오는 답답함을 누르고 딴에는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하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아요. 저는 그 외에는 잘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작업을 해 놓으면, 그 작업이 알아서 갈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내 말을 잠자코 듣던 P는 몇 마디 더 하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제가 만났던 다른 작가님들도 대부분 그렇게 말씀하세요’라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혼자 되뇌었다. 아쉽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이런 말도, 허술한 주장에 근거를 덧대려는 서툰 시도로 보일지 모른다.
그가 떠나고 정체 모를 무력감이 밀려왔다. 나의 깨끗하며 순수한 실제 경험을,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이라는 소위 ‘쿠션어’를 덧대어 설명하다니.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사실들이지만, P도 그럴지에 관한 가능성은 왠지 희박하게 느껴진 탓에 입을 열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얘기를 듣는 대상이 꼭 P가 아니라 해도,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이라는 말은 작업이 가진 진정성과 무게를 드러내기에 다소 부족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작업 동기를 설명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림책 ‘커다란 포옹’에는 ‘나, 엄마, 아빠, 동생’을 비롯한 여러 주인공이 등장한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사람 모습으로 그리는 대신, 동그라미를 비롯한 간단한 조형으로 표현했다. 동그란 조형은 반달이 되었다가 무지개 같은 모양이 되기도 하고, 여러 색이 섞이기도 한다. 그림만 보면 추상적인 도형 놀이책 같아 보이지만, 글을 읽으면 이 그림책이 한 가정의 탄생, 부모의 이혼, 새로운 가족에 관한 이야기 등 꽤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의미나 의의에 관해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나는 여러 가지 중에서도 작가는 왜 하필 이런 방식을 선택했는지 가장 궁금했는데, 같이 그림책을 보던 작가님의 한마디가 도움이 되었다. 바로, 이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고 싶어서’라는, 이토록 빈약해 보이기만 하는 작업 동기는 작품의 시작점인 동시에 결과까지 조망한다는 사례는 많다. 물론 작업을 시작하게 된 극적인 사건을 겪은 작가도 있고, 그것은 작가의 고유한 스토리가 되기에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유를 또렷하게 설명하기 힘든 순수한 동기가 전혀 관여하지 않고 태어난 작업이 과연 있을까 싶다.
‘작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할 수 있는지’로 시작하는 고민은 최근 내게 일상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빈번하고 익숙하다는 것이 덜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이 질문은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주되어 내 앞에 나타나 답을 요구하곤 하는데, P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깨달은 바가 있다. 지금까지 나의 작업을 방해한 건 대개 외부 환경이었다는 사실을 새로 떠올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 어떤 작업의 심지는 때로는 내 의지보다 선행했고, 그가 나를 이끌어왔다는 것도. 이건 예전엔 몰랐던, 비밀 같은 진실이다. 지금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뿐이지만, 혹은 이 정도로밖에 표현하지 못하지만, 한편으론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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