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에게 물을 흘려보내 줬듯, 군포에서 제일 높은 이곳에서부터 곳곳으로 꿈이 퍼졌으면 해요.”
1991년 산본 신도시를 개발하며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했던 배수지 터. 30여 년간 비어 있던 이곳이 그림책 도서관이자 문화예술 공간이 된 건 재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오는 9월 1일 2주년을 맞는 군포 ‘그림책 꿈마루’를 찾았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니 옥상 정원이 나오고, 카페 위로 둥근 달이, 오른쪽엔 커다란 민들레 홀씨들이 군집을 이루어 피었다.
“비가 와도 달이 떠요. 달은 기도의 대상이죠. 기도를 왜 해요? 꿈이 있는 거거든요. 그림책을 보면서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꿈마루예요.”
안병훈 그림책꿈마루 관장에게 들었다. 낡은 배수지 터가 꿈마루로 다시 태어난 이야기.
“수돗물이 없으니까 물을 안양에서 끌고 왔어요. 꽤 멀잖아요. 그걸 저장할 수 있는 곳이 제일 높은 여기였어요. 배수지 터를 그대로 살렸죠. 도서관 창문 위 큰 구멍에서 물이 들어옵니다. 집수정도 보존돼 있고요. 꿈마루 전체를 받치고 있는 푸른 기둥들도 물탱크 저장실을 받치던 거죠.”
물처럼 민들레 홀씨처럼 꿈이 흘러 퍼지길 바라는 마음은 그림책 꿈마루의 공간 이름에도 스며 있다. 자료열람실은 ‘그림책움’, 강연이나 세미나가 열리는 교육 공간은 ‘상상피움’, 공연장은 ‘아리움’이라 부른다. 상상력이 움트기를, 꿈과 뜻을 피우기를, 그리고 이곳이 움막처럼 아늑한 울타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여기는 내 땅이다! 이런 느낌 있잖아요. 요즘은 아이들도 고시 치르듯이 살거든요. 친구 만나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여기는 너희들을 위한 공간이다, 여기 오면 항상 네 편이 있다, 이런 뜻을 담았죠.”
뛰어놀아도 되는 도서관
“아이들은 뛰어노는 거 외엔 관심이 없어요. 한 번은 아이들이 선생님들하고 줄 맞춰서 옥상정원에 올랐는데, 하늘이 맑고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늘 참 이쁘다- 그런 거예요. 아이들은 관심이 없어요. 하늘이 맑은지 이쁜지. 아이들 관심은 옆에 풀, 벌레, 잠자리, 친구한테 가 있어요. 그래서 의자나 테이블을 다 치우고 그냥 잔디밭으로 해놨어요.”
안병훈 관장은 ‘뛰어놀아도 되는 도서관’을 지향한다. 도서관이라고 꼭 조용해야 하냐며, 사서들한테도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조용히 그림책을 읽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직접 그림책 속 그림을 따라 그리고, 체험하며 이야기도 나누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애들이잖아요. 실수할 기회를 무지하게 줘야 하거든요.”
‘엥? 이런 걸 한다고?’ 싶은 프로그램도 많이 진행했다. 그림책 도서관이라면 그림책 관련 교육이나 행사만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관련 없는 공연들도 ‘일부러’ 했다. 개그, 마술쇼, 연극… 그림책 마니아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고. 뭐 하는 거야? 그림책 꿈마루에서? 저 관장 이상하다!
“공간도 좋은데, 정말 사람이 안 와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홍보를 한 거죠. 여기 많은 사람들이 오길 바라거든요.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그림책도 보고 가는 거지 그림책을 보러 가야지, 하고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공연이든 커피숍이든 자연환경이든 본 다음에 이런 그림책도 있구나, 하는 거죠. 접근하기 쉽게 다가가면 그림책이 더 활성화될 것 같아요.”
그림책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다. 많은 분야가 그렇지만, 그림책도 어찌 보면 ‘그들만의 리그’. 일반인들은 딱히 관심이 없다. 그래서 놀 수 있고, 커피도 마시고, 다른 일을 하더라도 전혀 상관 없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꿈마루를 꿈꾼 것. ‘누구나’를 위한 접근은 다른 방식으로도 이루어졌다.
“여기 걸어 올라오기가 좀 힘들죠. 특히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들. 유모차는 못 올라온다고 봐야죠, 너무 힘드니까. 또 배수지를 리모델링한 곳이라 주차장이 협소해요. 그런 와중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작년 한 해 14만 명 정도가 왔어요. 시민분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도, 아이와 동반한 가족도 편하게 찾으실 수 있게요.”
그림책의 ‘그’ 자도 모르는 관장이라고요?
관장님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무려 그림책 도서관장인데, 안 관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사업가의 그것이었고, 이 촉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사업가로 소개하며, 그림책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이 그런지라 그의 관장 부임을 둘러싸고 말이 많았던 모양.
“그림책 꿈마루 관장이 그림책에 문외한이다, 하는 게 제일 힘들었죠. 지금은 그런 오해가 거의 다 풀렸어요. 재단이나 군포시에서 저를 인정한 이유는 여길 많은 사람이 찾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저는 그림책은 모르는데 사람을 모으는 방법은 그림책 작가나 전문가보다는 잘 알아요. 직원분들이 그림책 전문가이기 때문에 저는 홍보에 더 집중하는 거죠.
나도 사람인지라 “그림책에 ‘그’ 자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니 그림책을 읽게 되더라고요. 출근할 때마다 그림책을 봤어요. 매일 읽은 거지. 한 5분이면 한 권 다 읽어요. 처음에는 그림책이 도대체 뭐, 예상한 대로 유치하다, 했어요. 근데 가끔 대박인 게 있어요. 전 책 원래 잡식성으로 좋아하고, 한 권 읽는 데 평균 일주일 걸리거든요. 그런데 한 달 지나서 제목밖에 생각 안 나는 책들이 되게 많아요. 제목도 어느 땐 생각이 안 나요. 그런데요, 그림책이 시간 대비 뭔갈 배우기에 너무 좋아요. 꾸준히 읽다 보니까. 일반 책들처럼 그림책도 사상이나 이념을 다루는 거 되게 많고요. 내가 보니까 책은 다 똑같아. 시간은 5분밖에 안 되어서 한 권을 다 읽었는데 감동은 일반 책보다 더 큰 것도 있더라고요.”
그림책 꿈마루 관장의 그림책 익히기는 나름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학예사 직원이 그림책이 들어올 때마다 일고여덟 권씩 안 관장의 책상에 쌓아둔다. “OO 작가님 겁니다”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안 관장은 자신을 위해 학예사가 직접 선별한 그림책들을 하나씩 다 읽어본다.
“현대인들이 책을 너무 안 읽잖아요. 두꺼운 책들 읽는 것보다 그림책 정독해서 두 권 읽으면 정말 괜찮을 거라고 봐요. 그림책 마니아분들도 좋아하는 작가 아니면 보질 않던데, 다양하게 읽으면 정말 좋을 것 같고요.”
평소 책을 ‘잡식성’으로 읽는다는 그에게 ‘인생책’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데일 카네기의 고전 『인간관계론』을 꼽았다. 꼭 읽어보라며 직원 전체에게 돌렸다고. 의외의 이유에서였다.
“백희나 작가님이 온갖 상을 휩쓴 그림책 『알사탕』 있죠, 여기에 이 책 내용이 나와요. 그런데 각색을 기가 막히게 한 것 같아.”
분명 『인간관계론』과 『알사탕』 둘 다 읽었는데,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림책 꿈마루의 미래를 물었다. 지속 가능한 문화 기반이 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안 관장의 답은 “공감대”이다. 서로 공감하고 인정하는 마음. “몸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 엘리베이터에 탈 때 버튼을 누르고 누군가를 위해 잠시 기다려주는 것.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 아이가 울거나 뛰어다닐 때 즉시 비난하지 않는 것. 세상이 급해지고 각박해졌지만, 그림책 꿈마루에 왔을 때만이라도 “그런 콘셉트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전해졌다.
“그림책은 아이처럼 살 수 있는 길 같아요. 난 니체가 이제야 이해가 돼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러잖아요. 낙타, 사자, 어린아이 중에 아이가 인간 정신의 최고 정점이라고. 왜 그런지 알았어요. 아이들은 내일의 계산이 없어요. 지금이 최고야.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징도 이거예요. ‘실수하면 어떡하지’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으면 지금 그냥 하는 것.”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사진=안경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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