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거래의 기술(TRUMP : The Art of the Deal·이재호 옮김, 살림)에 나온 내용입니다. 트럼프는 자서전의 ‘나의 사업 스타일 11가지 원칙’ 챕터에서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1987년 12월에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출간했습니다. 출간 직후 뉴욕 타임스 논픽션 부문에서 32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 한미정상회담을 철저히 준비했다고 밝혀 다시 주목 받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스스로 자신의 민낯을 거침없이 드러낸 자서전이라 술술 읽히고 재미난 내용이 많은데요. 이 중에서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는 대목을 꺼낸 건 이 내용이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차세대 무탄소 미래 에너지로 지목되는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SMR) 관련 정책을 수립·추진할 때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는 대목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안팎의 얘기를 들어보면 SMR은 결국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을 만나 “한국이야말로 SMR의 강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이 대통령은 “SMR 개발 및 상용화로 AI 시대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충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이같은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원자력 산업계 안팎에서는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SMR이 차세대 미래 에너지인 이유는 안전성, 경제성, 활용성 등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대형원전(APR1400, 신고리 3·4호기 기준)의 중대사고 확률은 100만년에 한 번인데 SMR(한국수력원자력 혁신형 SMR 기준)은 10억년에 한 번입니다. 건설 기간도 대형원전(48개월)의 절반(24개월) 수준입니다. 소규모 원전이다 보니 건설 비용도 대형원전(4조~5조원)의 5분의 1 수준(1조원)이고요. 전력 생산 외에도 수소 생산, 해수 담수화 등에도 다목적 활용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이같은 장점 때문에 우리나라뿐만아니라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이 SMR 기술 개발 총력전에 나선 상황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전 발전 용량이 현재보다 2.5배 증가할 수 있고, 이중 4분의 1은 SMR에 의한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원전 전문가들은 글로벌 SMR 기술개발이 2028~2030년 사이에 완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2025~2030년)가 SMR 기술개발 ‘골든타임’인 셈입니다.
|
그런데 미래 에너지인 SMR이 긍정적 측면만 있을까요.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지 말아야겠지만,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는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이 SMR에도 적용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원전 전문가들은 SMR이 미래의 ‘꿈의 기술’이지만 리스크 역시도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기대되는 측면이 있지만 우려 역시도 만만치 않은 ‘양날의 칼’이라는 것입니다.
전문가 얘기를 종합하면 3가지 리스크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기술 개발 발목을 잡는 ‘규제’입니다. 진상기 대한기계설비산업연구원 실장은 지난 26일 부산에서 열린 한국정책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는 SMR 기술에서 세계 선두 그룹인데 SMR 규제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이것이 SMR 관련 산업계의 최대 불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애로사항은 ‘SMR 인허가 문제’라고 합니다. 최근 트럼프는 ‘원자로 심사를 18개월 이내에 완료’하는 내용의 ‘원자력 산업 활성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신규 원자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SMR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속내입니다. 이렇게 미국 등 선진국에선 치열한 SMR 기술 경쟁에 뛰어들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반대 상황이라는 게 산업계 애로사항입니다. (참조 이데일리 8월26일자
|
둘째로는 안전성입니다. 진상기 실장과 박영원 원자력산업정책연구원 정책연구본부 수석연구위원은 ‘SMR 안전규제의 주요 쟁점과 고려사항’ 공동연구에서 “SMR은 모듈화를 통해 여러 개의 원자로를 병렬 배치하는 형태를 띠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좁은 지역에 여러 기가 밀집할 수밖에 없다”며 “원전 여러 기가 밀집하는 경우 한 원자로의 안전 문제가 다른 원자로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SMR이 소형이다보니 대형 원전보다 출력량이 낮고 사고 발생 시 발생하는 붕괴열도 적을 수 있지만, ‘밀집’에 따른 안전성 우려가 있는 셈입니다.
관련해 진 실장과 박 위원은 “원자로 크기가 작아지면서 함께 작아진 안전 설비에 대한 안전성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어 이들은 “기존 대형원전의 안전성 평가 방법과는 완전히 새로운 안전성 평가 방법이 필요하다”며 “각 개별 모듈에 대한 안전성 평가의 분리를 병행해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SMR 기술 개발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안전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안전규제 기준이 개발자 및 사업자에게 선제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에너지기구(Nuclear Energy Agency·NEA)도 보고서에서 “SMR의 대규모 배치에는 기술적, 경제적, 규제적, 공급망상의 여러 도전 과제가 있다”며 “이를 실현하려면 상당한 정부 노력과 효율적인 국제 협력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
세 번째로는 국민 공감대, 국민 수용성입니다. 진 실장과 박 위원은 “SMR에 있어 국민 수용성을 확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방사성폐기물(방폐물) 관리와 처리”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SMR이 기존 대형원전보다 작고, 안전하고, 도시 주변에 건설 가능한 기술적 장점이 있더라도 부지 선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 반발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관련해 진 실장과 박 위원은 “우리나라는 SMR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 및 처분, 운반 등에 관한 구체적인 규제 기준이 미비한 상황”이라며 “관련 규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혁신형 SMR(i-SMR)에 대한 안전 규제를 내년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특히 국민 수용성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더라도 국민 공감대·신뢰를 얻지 못하면 좌초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박형준 한국정책학회장(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은 지난 26일 부산에서 열린 방폐물관리 연차보고대회(주최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주제발표에서 핀란드, 스웨덴, 독일 등 해외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관련 ‘사회적 합의’ 과정을 소개한 뒤 “(우리나라에서 방폐물관리 정책이) 수십 년간 표류된 것은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신뢰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꼬집었습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지적입니다.
트럼프는 ‘거래의 기술’에서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고 주문한 이유에 대해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일에 착수하면 크게 욕심을 내지는 않게 된다”며 “타석에서 볼 하나하나마다 홈런을 노린다면, 그만큼 스트라이크 아웃 당할 확률도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이재명 대통령의 지침 등으로 SMR 현장은 시간에 쫓기는 ‘속도전’에 내몰리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SMR 관련 규제 미비, 안전성 우려, 국민 수용성 문제 등 리스크를 차분히 살펴보는 어떨까요. 당장 홈런을 때리려고 하기보다는 안타부터 스텝바이스텝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국민 삶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에너지 정책일수록 각계각층의 국민 목소리부터 충분히 경청해보는 건 어떨까요. 국민 목소리가 중요한 이유는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더라도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 정책은 결국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와 미래=에너지 이슈 이면을 분석하고 국민을 위한 미래 에너지 정책을 모색해 봅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