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표면 너머 시대의 숨결을 포착해 뚜렷한 자기 어법과 응시로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김진열 작가의 작품 세계가 23일부터 예술공간 아름·실험공간 UZ(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34)에서 펼쳐졌다. 전시명 ‘드로잉 모심전 2025’. 사람과 삶, 생명에 대한 경배가 작품으로 피어났다.
전시의 주인공은 드로잉과 폐자재를 활용한 입간판 형식의 부조회화로 표현된 일상의 시민, 서민들이다. 원주에 거주하는 김 작가는 길에서 마주하고 포착한 평범한 서민들을 붓으로 옮겼다. 먹과 응고재를 섞어 그들을 연결하고 표면엔 한지를 발라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마치 생명력이 더해진 듯한 이들은 벽면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저마다의 일상을 살며 노동을 하고 밥벌이를 한다. 밭일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 시장에서 무언가를 파는 할머니, 괭이 든 농부,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 노동 현장에서 움직이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 배경은 노랗거나 푸르다. 김 작가는 그림 속 주인공들의 현실 속 삶은 고단하더라도 이들의 삶에 밝음이, 푸름이 비치길 바라는 소망을 색으로 표현했다. 작가의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인간 존엄성에 경배를 올리는 숭고한 의식이다.
이들은 얼굴은 모두 얼굴이 뭉개졌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어디에도 쉽게 정의되지 않은 서민들의 몸에서 읽히는 표정을 위해” 얼굴의 표정을 없앴다고 설명했다. “권력과 자본, 기교가 배제된 서민들을 표현하기에 표정 없는 몸을 던져주면 상상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관람객을 작품으로 끌어오고 싶었어요. 이들은 모두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고 싶은 사람들로 제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저의 예술세계로 모셨습니다.”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개인전을 28회 열고 광주비엔날레, 예술의전당 개관전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참여해온 그는 상지대 총장을 지낸 뒤 현재 원주에서 터를 잡고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제2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으며 원주에서 환경운동을 이끌며 생명에 대한 숭배, 애정을 작품에 녹여 왔다.
이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 아프진 않을까, 더 나은 삶은 없을까. 저마다의 역사를 품은 하나하나의 작품과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작품과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고요한 대화를 하게 된다.
지하 전시장 실험공간 UZ에선 입체감 있는 부조회화로 탄생한 각각의 작품이 마치 하나의 영화처럼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작품의 재료는 제 역할을 다하고 녹 슬고 버려진 물건들이다. 그는 여수에서 배 타고 두 시간을 더 가면 만나는 외딴섬 연도에서 버려진 녹슨 물건들을 싣고 온다. 녹슨 금속판들은 그의 작업실에서 합지와 금속판이 더해지며 자르고 붙여져 형상미술로 완성된다. 녹이 슬어 삭은 냉장고의 부속철판들과 녹물을 드러낸 함석판은 거칠고 투박한 서민의 삶, 그러면서도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민중의 분투를 드러낸다.
예술공간 아름 관계자는 “그의 붓끝은 기억과 감정, 삶의 흔적을 더듬어 인간 존재의 존엄과 따뜻함을 다시 불러낸다”며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근원적 몸부림이자 우리를 삶의 본질에 대한 사유로 이끄는 철학적 울림”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9월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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