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더’ 잘 쓰고 싶었는데 ‘급’마무리했어요…104가지 ‘쓰기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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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명문장] ‘더’ 잘 쓰고 싶었는데 ‘급’마무리했어요…104가지 ‘쓰기의 말들’

독서신문 2025-08-27 09:20:17 신고

살다 보니 때를 놓친 것, 사라져 버린 것, 엉망이 되어 버린 것, 말이 되지 못하는 것이 쌓여 갔다. 자주 숨이 찼다. 참을 인 자로 가슴이 가득 찰수록 입이 꾹 다물어졌다. 토사물 같은 말을 쏟아 내긴 싫었던 것 같다. <20쪽>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 주는 일이 된다. <82쪽>

국어의 어색함을 나도 써먹고 싶다. 자동 진술 같은 능숙함보다 자기 진술에 다가가는 시도에 따르는 어색함을 사랑해야지. <94쪽>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박완서의 단편 「그 남자네 집」에 나오는 대목이다. 감탄사가 나왔다. 있는 그대로 사실 묘사만 정확해도 진실이 드러난다. 거짓으로 우는 건 아니지만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것도 아니라니. 눈물의 이중성에 관한 탁월한 보고다. <95쪽>

글쓰기의 장애물(로 여겼던 일)이 디딤돌이 되었다. 나를 세계로 밀어내니 세계가 나를 글로 밀어 준다. <125쪽>

그런데 쏟아지는 인터넷 서평이나 기사에서 한 존재가 드러난 글, 목소리가 생생한 글은 드물다. 책의 서문을 요약하거나 좋은 구절을 정리한 고만고만한 글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안 쓰는 것보단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글쓰기는 감각의 문제다. 남의 정신에 익숙해질수록 자기 정신은 낯설어 보인다. 들쑥날쑥한 자기 생각을 붙들고 다듬기보다 이미 검증된 남의 생각을 적당히 흉내 내는 글쓰기라면 나는 말리고 싶은 것이다. <132쪽>

글이 꽉 막힐 때는 이유가 있다. 정보와 지식이 얕아서 그렇다기보다 충분히 소화되지 않아서 문제다. 논픽션 쓰기란 무엇인지 한 줄 문장으로 정리하고 왜 이 책이어야 하는지 설득해야 하는데 모호하고 어설펐다. <150쪽>

“제 인생에 대해서, 가치관이나 신념이 확고한 사람도 아니고요, 상황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히는 사람이에요. 딱 말을 하기가 어렵죠. 1분 후에 바뀔 수도 있으니까. 네, 저는 이렇게 바뀌는 사람이에요.”
잡지 『지큐』GQ에 나온 가수 아이유의 인터뷰 기사다. ‘나는 바뀌는 사람’이라는 선언에서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서 눈길이 간다. 도덕 강박은 매력 없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는 미화하거나 비하하기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158쪽>

쓰기 전엔 잘 쓸 수도 없지만 자기가 얼마나 못 쓰는 줄도 모른다는 것. 써야 알고 알아야 나아지고 나아지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안심한다. <183쪽>

이 사례가 꼭 필요한가 점검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과시인가 소통인가.’ 소설가이자 번역가 이윤기가 글쓰기 전에 묻는다는 그 물음을 나도 던져 본다.
내 경험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가. 뻔뻔한 자랑이나 지지한 험담에 머물지는 않는가. 타인의 삶으로 연결되거나 확장시키는 메시지가 있는가. 이리저리 재어 본다. 자기 만족이나 과시를 넘어 타인의 생각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자기 노출은 더 이상 사적이지 않다. <191쪽>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다. — 폴 발레리
‘더 고치고 싶었는데 잠이 들어서요.’ ‘수업 시간에 늦을까 봐 대충 마무리하고 왔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과제 글을 ‘더’ 잘 쓰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급’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원래 글쓰기의 생리가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글을 시작하는 건 자기 의지이지만 글을 끝내는 건 외부 조건이다. 원고 제출 마감일이 걸려서 파일을 닫고, 졸립고 피곤해서 원고에서 손을 뗀다. <193쪽>

『쓰기의 말들』
은유 지음 | 유유 펴냄 | 232쪽 | 14,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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