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고 싶고, 달리고 싶던 조선의 여인”…광복80주년 뮤지컬 ‘향화’ 구슬픔 깃든 연습 현장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뛰고 싶고, 달리고 싶던 조선의 여인”…광복80주년 뮤지컬 ‘향화’ 구슬픔 깃든 연습 현장

경기일보 2025-08-25 18:20:16 신고

image
수원시립공연단 광복80주년 뮤지컬 ‘향화’ 공개 시연회 한 장면. 향화가 동료 기생들에게 만세운동을 이끄는 모습이다. 이나경기자

 

“기생의 이름으로 만세를 부르면 세상이 우리를 떠받들어 줄까? 오히려 세상은 너희들을 더 비웃을 것이고 권번은 몰락할 거야”.

 

수원 권번을 대표하는 기생 ‘김향화’가 동료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려 하자, 또 다른 동료는 그녀에게 “세상은 우리를 비웃을 것이요. 기생의 이름은 버리고 혼자 떠나라”라고 다그쳤다. 1919년에 내던진 질문은 마치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의 우리에게 되묻는 듯 했다. 당신도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느냐고. 기생이 웬 독립운동이냐고.

 

“언니, 우리들 본래 이름을 아시오? 나는 김향화요. 향화가 되고 나서야 난 자유롭게 숨 쉬고 노래하고 춤 출 수 있었소.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내 이름과 우리의 이름이 온전한 자랑이기 위해 우리 다 같이 만세를 부르자는 것이오”.

 

image
수원시립공연단 광복80주년 뮤지컬 ‘향화’ 공개 시연회 한 장면. 극 중에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1910년대 시대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의상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나경기자

 

기생으로의 모습을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정숙한 여인이자 평범한 소시민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만과 편견, 잣대를 비웃듯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은 기생 김향화요, ‘소리’를 알게 돼 감정을 노래할 수 있어 행복했고, ‘춤’을 통해 자유를 깨달아 뛸 듯이 기뻤으며 장구 소리에 심장이 뛰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나라’ 안에서 모두가 자유롭게 말하고, 움직이는 세상을 꿈꿨다.

 

지난 21일 수원제1야외음악당 대연습실에서 진행된 창작뮤지컬 ‘향화’의 공개 시연회 현장은 배우들의 열연과 만세를 외치던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생생히 느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 몰입하게 만들었다. 전통한복과 개량한복, 양장 등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던 1910년대 거리가 그린 다채로운 의상(여백 박선옥作)과 조선의 예인들이 기예를 정진하던 모습을 재현한 장구춤, 검무 등 안무(우현영作)와 노래(양승환作)는 극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고 판소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두 배우 향화(임지수 배우), 권번의 행수(박지아 배우)의 단단하면서도 기품 있는 목소리는 무게감을 더했다.

 

image
수원시립공연단 광복80주년 뮤지컬 ‘향화’ 공개 시연회 한 장면. 이나경기자

 

수원시립공연단 광복 80주년 특별기획공연으로 다음 달 5~7일 수원SK아트리움에서 진행되는 이번 작품은 1919년 3월 29일, 동료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고 훗날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은 김향화 열사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들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이미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아닌, 사회적 제약과 편견에 맞선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지역의 공공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제시했다.

 

‘김순이’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16살의 어린 나이에 수원의 어느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가난과 조혼, 시집살이는 여인을 옥죄었다. 그런 순이의 눈 앞에 삼일 여학교의 운동회가 펼쳐진다. 팔다리가 드러나는 간편한 복장을 입고, 온 힘을 다해 힘껏 뛰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순이에게도 동네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여인도 배워야 스스로 걸어갈 수 있다’고 알려주는 김세환 선생의 말은 이날 순이의 가슴 속에 깊은 깨달음을 남겼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에서 진정한 자유로움과 정체성을 느낀 순이는 기생이 되기 위해 권번으로 향한다. 권번에도 일제의 검은 그림자는 드리웠다.

 

극에는 장구춤, 검무, 선유락 등 그 시대 기생들이 밤낮없이 기예를 정진하는 모습이 펼쳐지는데 기생을 길들이고자 했던 순사 무리에 맞서 순이와 동료 기생들이 장구춤으로 맞서는 순간은 명장면이다. 여인들은 천둥같은 소리의 장구소리로 일본군을 몰아낸다. 밤낮없이 기예를 갈고 닦은 순이에게 행수는 ‘조선의 꽃, 삼천리 꽃, 제일의 꽃’이라며 최고의 1패 기생으로 ‘향화’라는 이름을 선물한다.

 

image
수원시립공연단 광복80주년 뮤지컬 ‘향화’ 공개 시연회 한 장면. 수원 권번의 기생들이 장구춤을 연습하는 모습이다. 이나경기자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꽃을 필 것이요. 마땅히 봄이 올 것을 알기에 그 믿음을 가지고 겨울을 견디자”고 학생들을 향해 말하는 김세환 선생의 이야기는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향화와 동료들의 가슴 속에도 뜨거움을 남긴다. 김향화는 1919년 1월 고종이 승하하자 동료들을 이끌고 대한문 앞에서 망곡례를 했는데 이는 역사(매일신보)에도 기록돼 있다. 동료들과 태극기를 만들어 주변에 나누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김향화의 모습은 인상 깊다. 일제에 끌려가면서도 ‘우리의 이름’을 노래하며 만세를 외치는 향화와 기생들의 눈빛은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권호성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겸 연출가는 “향화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위해 살다갔지만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이름 없는 들꽃으로,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죽음의 두려움에도 맞선 김향화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 “내 이름은 향화, 조선의 꽃입니다” 수원시립공연단, 김향화 열사 뮤지컬 선봬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