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은 동네 ‘수레국화마을’에 사는 이주민 소년 모모는 지루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께 ‘이번 여름에 읽었으면 하는 책 목록’을 받게 되기 전까지는. 이 많은 책을 다 어떻게 구하지? 아, 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모모는 이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 모모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서가로 둘러싸인 세계. 빽빽한 서가 앞, ‘언젠가 이 책들을 다 읽겠지’ 하며 행복해하는 모모. 『모모의 여름 방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3주는 너무 긴 시간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주신 목록에 있는 책을 다 읽으려면요. 모모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왜, 그 정도면 시간은 충분하지 않니?”
“아뇨, 너무 길어요! 읽을 책이 이렇게 많은데요!” _『모모의 여름 방학』, 29~30쪽
처음 도서관에 발을 들인 모모는 회원등록 절차부터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방법, 모든 것이 낯설다. 첫 번째로 빌린 책은 책 목록 맨 위에 올라와 있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이다. 모모는 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아플 정도”인 이야기를 읽으며, 책이 주는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든다.
모모의 여름 방학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아플 정도의 이야기가 되는 건 모모가 에두아르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언덕 위의 벤치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그는 하얗게 센 머리를 하나로 묶은, 은퇴한 교사다. 책에 관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자마자 그는 모모를 ‘수레국화마을의 어린 왕자’로 임명하고, 모모 왕자와 문학을, 어린 왕자를, 수레국화마을과 닮은 ‘벨빌’을 배경으로 모모와 같은 이름을 지닌 ‘모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소설의 작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를, … 그러니까 우정을, 나눈다.
이야기 끝에서 모모가 받게 되는 선물은 모두 교장 선생님이 건네준 ‘이번 여름에 읽었으면 하는 책 목록’으로부터, 그리하여 도서관이라는 세상을 알게 되고부터, 여름 내내 책을 읽으면서부터, 그러다가 에두아르 할아버지와 만나게 되고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여름 방학이 끝난 모모는 어딘가 달라져 있을 거다. 훌쩍 자랐겠지. 도서관이 모모를 자라게 한 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설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비비언 고닉도 저서 『끝나지 않은 일』에서 유사한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한다. 뉴욕 브롱크스의 이민자 동네에서 살아가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뉴욕 공공도서관의 지역 분관에 첫 발을 들였던 경험. ‘엘리너 루스벨트’와 꼭 닮은 사서가 어린 고닉의 손을 이끌고 어린이책 서가로 데려가며 말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돼.”
(…) 아이들이 도서관에 잘 오지 않아서 그랬는지 저를 엄청 반갑게 맞아주셨거든요. 그렇게 저만의 큰 놀이터가 생겼죠. (…) 서가에 『그리스 로마 신화』, 『이솝우화』 등 다양한 책들이 쫙 꽂혀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읽자’ 하고 결심했습니다. 그러곤 정말 다 읽었어요. _『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 24쪽
‘도서관 생활자’ 4인이 도서관에 관해 말하는 도서관 대담집 『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는 맨 첫 장을 ‘도서관은 어떻게 사람을 키우는가’로 연다. 인용한 부분은 이명현 천문학자가 회상하는 도서관과의 첫 만남이다. ‘언젠가 이 책들을 다 읽겠지’ 하며 행복해하던 모모와 “사방 벽을 빙 둘러가며 책을 읽”던 고닉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다.
어릴 적 마법 같은 도서관과의 만남이 있어도 좋지만, 대학생 때 도서관을 본격적으로 드나들게 되더라도 너무 늦지는 않을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대학 도서관의 커다란 창, 그 사이로 햇살이 드는 넓은 원형 공간을 회상한다. 사람이 드물게 찾아오는 그곳에서 고립된 채 책을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면서. 한편,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장은 독일 유학 시절 도서관 사서들 덕분에 첫 책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달력과 관련한 책들을 빌리던 그에게 사서들이 다음으로 읽어야 할 책들을 고집스럽게 추천해 준 덕에 그에게는 한 권의 달력 책을 써서 정리해야 할 만큼의 지식이 쌓이고 말았다.
대담은 도서관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공공대출보상제와 희망도서제 등 도서관의 제도, 도서관의 쓸모, 타국 도서관에서의 경험, 도서관 공간, 종이책과 전자책, 미래 도서관의 모습… 도서관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로 뻗어나가고 되돌아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도서관에 대한 이들의 방대한 지식(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을 술술 풀어내게끔 유도하는 역할은 초대 서울도서관장과 전국사서협회장,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한 이용훈 도서관 문화비평가가 맡았다.
이들은 ‘읽고 쓰는’ 사람으로 성장해 이제는 전국 도서관을 순회하며 강연을 다니는 작가가 되었지만, 그보다 먼저 도서관에서 독자가 되기를 배웠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말하고 책에서도 인용되듯, ‘무상의 독자’로 시작한 독자 경력은 결국 ‘유상의 독자’까지 이르게 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어느 서점의 유명한 문구와 같은 거대한 선순환은 정말로 일어난다. “독서 인생을 시작”하기에 도서관만큼 좋은 곳은 또 없을 것이다. 도서관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선불제 공공서비스’니까. 도서관 생활자 선배들이 전하노니,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으면 당신이 손해”다.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사진=불광출판사, 어크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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