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었다 꽃을 피운 장미, 항암 후 회복하는 내게 생명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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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었다 꽃을 피운 장미, 항암 후 회복하는 내게 생명력을 주었다

캔서앤서 2025-08-24 15:48:47 신고

마지막 항암치료 후 3개월이 되어가는 2021년 초여름의 어느 날, 암생존자 지지센터의 온라인 원예테라피 수업을 신청했다. 엄마가 가꾸시던 정원에 가끔 물을 주었을 뿐, 한 번도 온전히 내가 식물을 키워 본 적이 없었지만 처음 접하는 원예테라피라는 수업이 궁금했고 어떤 식물을 키우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며칠 후, 작은 장미나무 묘목이 화분, 흙과 함께 집으로 배송되었다. 수업 날 원예테라피 강사님과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장미나무를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예쁜 주황색 장미꽃 두 송이가 피어 있는 장미 화분이 금세 완성되었다.

식물을 키우며 치유를 느끼는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공유하고 있다./아이엠공실이
식물을 키우며 치유를 느끼는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공유하고 있다./아이엠공실이

방 안에서 키워도 괜찮다고 해 내가 자주 볼 수 있도록 침대 맞은편 안방 구석에 작은 스툴을 놓고 그 위에 화분을 올려두었다. 엄마의 정원에도 장미나무가 있었지만 내가 처음 직접 키워보는 장미 화분에 자꾸 눈길이 갔다.

어서 장미꽃이 화려하게 활짝 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초보 식집사였기에 햇볕 쬐기와 통풍의 중요성을 몰랐다. 며칠이 지나자 싱그러웠던 장미꽃이 급격하게 시들기 시작했다.

햇볕이 잘 안 들고 통풍이 안되는 안방 한쪽 구석은 장미나무에게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저 가까이 두고 싶었을 뿐인데, 다 내 욕심이었구나. 일주일 만에 시들어 버린 장미꽃을 보고 있으니 서글퍼졌다. 눈물도 났다.

마지막 항암 후 골절로 인해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시들어버린 꽃들이 암 투병으로 건강을 잃은 내 모습 같아 더 서글펐나 보다.

강사님께 문의하니 가지치기를 하고 해가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면 다시 꽃이 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장미나무는 예뻤던 꽃 두 송이를 모두 잃고 안방에서 야외로 옮겨졌다.

집에 마땅한 곳이 없어 거실 창문 밖의 좁은 선반에 화분을 올려둘 수밖에 없었다.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람과 함께 건강하게 다시 잘 자라나 꽃을 피우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시간이 흘러 정리된 가지에서 새 잎들이 올라왔고 2주 정도 지나자 새 꽃봉오리가 생겼다.

다행히 잘 자란 장미나무에 4개의 꽃봉오리가 생기고 하나둘씩 예쁜 주황색 장미꽃이 폈다. 기분이 좋아졌다. 꽃이 지고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이 건강을 잃었던 내가 다시 건강해지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장미나무에 이어 키우기 시작한 아이비. 마크라메로 화분걸이를 만들고 그 안에 넣어둔 작은 화분에 아이비를 옮겨 심었다./게티이미지뱅크
장미나무에 이어 키우기 시작한 아이비. 마크라메로 화분걸이를 만들고 그 안에 넣어둔 작은 화분에 아이비를 옮겨 심었다./게티이미지뱅크

시들었던 장미꽃을 보며 상실감도 느꼈지만, 이내 새로 잎이 돋아나고 예쁘게 꽃을 피워내는 장미나무의 생명력이 나도 모르게 나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싱그럽고 예쁜 꽃들을 피워낸 장미나무가 마치 항암 후 회복해가는 나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새로 피어난 잎들과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울했던 나의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 장미나무에게 참 고마웠다.

장미나무가 성공적으로 새로 꽃을 피우자, 다른 식물도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장미나무에게서 받은 치유의 힘을 다른 식물에게서 또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마크라메 매듭공예 수업이었는데, 한 줄 한 줄 매듭을 묶어서 마크라메로 화분걸이를 만들고 그 안에 넣어둔 작은 화분에 아이비를 옮겨 심었다.

아이비야, 너도 나랑 잘 지내보자! 안방 문에 예쁜 마크라메와 함께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아이비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도록 별일 없이 잘 자랐다.

아니, 자랐다기보다는 잘 있었다. 안방 문에서 나를 묵묵히 지켜보며 초록의 싱그러움을 주는 아이비였지만 계속 키우기에는 심심했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비는 새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지고하는 모습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아 장미나무를 키우며 느꼈던 꽃 피는 재미와 치유의 힘은 아쉽게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결국 추운 겨울이 되기 전에 장미나무와 아이비 모두 식물을 좋아하시는 시부모님께 보냈다.

겨우 2개뿐이던 화분을 떠나 보내고 나니, 하루하루 얼마나 잘 자라고 있나 지켜보고 때맞춰 물을 주고 하던 소소한 일상의 한 부분이 없어져서 나의 하루는 무료해졌다. 예쁜 꽃을 피우던 장미나무도 없고 초록을 보여주던 아이비도 이제 없다. 심심해진 초보 식집사는 겁도 없이 새로운 식물에 도전하게 되는데...

▶아이엠공실이 : 공실이는 2020년 가을, 난소암 3기-자궁내막암 1기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은 뒤 정기검진을 하며 산정특례 5년 종료(완치 판정)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이버블로그(https://m.blog.naver.com/iam_gongsil2)와 인스타그램(@iam_gongsil2)에서 공실이의 치유 일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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