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거절당할 게 분명한 순간에 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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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명문장] 거절당할 게 분명한 순간에 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까?

독서신문 2025-08-21 10:34:59 신고

채 소화되지 못한
빗물이 철벅거리며
바짓단에 흔적을 남기는 동안
하늘은 그 많은 비를 털어 내고도 조금도 개운치 않아 보였다

거절당할 게 분명한 순간에 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까?
모르면서 네 손을 잡았다

_「히치하이커」 중에서

 

음악을 알지 못해도 춤을 출 수 있는 것처럼 수영을 배운 적 없어도 손발을 뻗어 물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창문을 연다 발코니 너머로 폐장된 수영장이 보인다 한 아이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허공에 발을 구른다 그렇게 하면 허공을 흔들 수 있다는 듯이 한쪽에서 시작된 파동이 잔금을 내며 물결처럼 번진다

_「호흡법」 중에서

 

할머니는 말했다 파도가 두려워지기 전까진 파도를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이 무서워지기 전까진 세상을 무서워하지 마라 할머니의 뼛가루를 바다에 뿌린 뒤 자주 바다로 나가 헤엄을 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할머니가 남긴 말을 이해해보려고

_「빛 헤엄」 중에서

 

시력이 좋지 않아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져 보였는데요 일렁이는 게 꼭 수명을 다한 별무리 같았어요

끝에 도착하면 내가 품었던 말들 쏟아낼 수 있을까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건 억울하니까 끝까지 나 혼자만 아는 건 괴로우니까

방금 아파트 복도에 노란불이 켜졌습니다

_「부재중 전화」 중에서

 

침대에 누워 이불을 심장께까지 덮었어요 충분히 어두워 커튼을 치지 않았는데 맞은편 창가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아, 누군가 불을 켜면 이토록 환해지는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했어요

_「불 켠 사람」 중에서

 

학자는 책을 덮는다
사유를 덧씌우지 않고
이름 짓기를 그만둔다
별들의 위치를 베끼지 않는다
각기 다른 조도를 기억하면서
부스러질 것 같은
과거의 필체와 접촉한다

_「여름 대삼각형·9-수지상결정눈」 중에서

 

나무는 간혹 토분 바깥으로 실뿌리를 내보내며 나는 올해 첫 여름비가 내리는 날 나무와 거리에 앉아 수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한사코 한사코 그것은 나무와 내가 나눠 가지게 될 아주 개인적인 사건이다 _「아주 개인적인 나무」 중에서

 

『여름 대삼각형』
정다연 지음 | 아침달 펴냄 | 138쪽 | 12,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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