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월, 고종 황제가 승하했다는 소식에 모든 백성이 일손을 놓았다. 수원기생조합(水原妓生組合) 소속 김향화를 비롯한 기생들은 경부선 열차에 올라타 덕수궁 앞에서 호곡했다. 같은 해 3월1일 전국의 만세운동 속 김향화는 화성행궁 앞 자혜병원과 경찰서 앞에서 30여명의 기생과 직접 만든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다.
시대의 편견과 한계 속에서도 목놓아 ‘만세’를 외치던 20세기 예기(藝妓)의 독립운동이 21세기 발레라는 장르로 재탄생했다. 시대도, 장르도 다르지만 예술이라는 언어로 외친 광복의 메아리가 시민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지 주목된다.
전문예술단체 수원시티발레단은 오는 30일 오후 3시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창작발레 ‘그날, 서대문 형무소 8번방의 메아리’ 공연을 선보인다.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해 발레라는 예술로 시민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전한다는 계획이다.
독립운동 기념사업소에 따르면 김향화는 수원기생조합에서 춤과 노래 등 기예가 가장 뛰어난 기생이었다. 서울에서 발간된 조선 예기의 사진과 소개를 적어 놓은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에는 수원을 대표하는 기생으로 소개된 바 있다.
일등 예기인 김향화는 창, 기예, 시, 서예, 화, 학문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다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국가 행사나 연회를 위해 동원되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고종이 승하하자 장례일에 맞춰 소복을 차려입고 동료 기생 20여 명을 이끌고 상경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망국의 설움을 토로하며 통곡했다. 김향화는 선배 기생인 서도홍을 찾아가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고 수원기생조합 소속의 기생 30여 명을 모았다.
1919년 3월29일, 수원의 자혜병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그는 이어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감금과 고문의 옥고를 치른 그는 출옥 후에도 감시와 탄압에 시달렸다. 가족과 뿔뿔이 흩어졌고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향화에게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이번 작품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사회의 장벽 속에서도 나라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자는 배경에서 탄생했다. 광복이라는 대의와 큰 떨림을 위해 존재하던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울림과 가치 및 숭고함을 전하는 게 공연의 목적이다.
김문신 수원시티발레단장은 “김향화의 이야기는 뮤지컬 등으로 제작된 바 있으나 창작 발레로 제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수원 대표 예기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향화의 의지와 신념을 발레로 해석하고 지역의 콘텐츠를 예술로 승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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