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재미’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예능이 대세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기존 예능에서 벗어나, 시청자들이 예능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형태의 예능이다. ‘예능 속의 인문학’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연출자들을 만나 직접 예능 속에 녹아있는 그들의 철학과 가치를 듣기 위해 기획됐다.
첫 번째로 ‘정글밥’의 SBS 김진호 PD를 만났다. ‘웃음을 만드는 사람은 본래 저렇게 투명한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 그를 만나 예능 속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
Q ‘예능 속의 인문학’의 첫 번째 인터뷰이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SBS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김진호PD입니다. 첫 번째 인터뷰이로 선정되어 영광이고요, 다만 걱정은 제가 예능 속의 인문학을 논할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인문학이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나와있어서요. 시간나면 주로 읽는 책이 그런 어려운 내용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입니다. 그래도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하겠습니다. 꼭 인문학적 내용은 아니더라도 글을 읽은 독자들께서 예능PD들도 나름 철학과 고민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든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Q. 여러 장르에서도 특별히 ‘예능 프로그램’ 연출자가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웃기고 싶었어요. 그런데 개그맨이 될 자신은 없어 예능PD가 되기로 했습니다(실제로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이 코미디언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나간 영어말하기 대회 발표 제목은 ‘Let’s laugh’(웃자)였고요. 코미디언 출신 이윤석 박사가 쓴 『웃음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이라는 책을 보면 다양한 웃음의 장점이 설명되어 있어요.
웃음은 면역력을 증진시켜 건강과 장수에 도움을 주고, 통증을 줄여주며,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스트레스 감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해요. 하지만 삶을 80년으로 본다면, 우리는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밥 먹는 데 6년, 웃는 데 22시간 3분을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의 웃음 시간을 1분이라도 늘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단 마음이랄까요? 물론 입사 후엔 원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엔 배정받지 못했지만요.
Q. 일명 ‘오지 전담 PD’로 유명하신데, ‘정글의 법칙’ 때문인가요? 아니면 독자들이 모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제 40 중반의 나이인데 인생은 절대 계획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최근 『세이노의 가르침』(데이원)을 읽었는데 성공한 사람들 역시 계획대로 꿈을 이룬 사람은 거의 없고 ‘우연히’, 혹은 ‘어쩌다’ 일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성공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웃음)
저 역시 2011년 선배가 그냥 아프리카 가보자고 해서 <정글의 법칙>에 합류했어요. 그러다 10년 간 오지를 다니게 됐죠. 그런데 천만 다행히도 저랑 너무 잘 맞았습니다. 제가 여행도 좋아하고, 음식이나 잠자리도 별로 안 가리거든요.
그리고 오지의 대자연과 사람들의 매력이 엄청나더라고요. 초록 정글과 푸른 바다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고, 냉장고와 에어컨은 없지만 매일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원주민들의 모습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관심이 생겼어요. 아직 방송에 나온 건 빙산의 일각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오지의 매력을 시청자분들께 더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Q.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혹은 가장 경계하는 점이 있다면?
재미 혹은 의미. 딱 두 가지만 생각해요. PD는 남의 시간을 소비하게 하는 직업이에요. 보고 났을 때 ‘에이... 시간 낭비했네’라는 반응을 제일 경계해요. 우리도 영화관에서 티켓 사서 영화를 보았는데, 보고나서 후회하는 경험들이 있잖아요. 책도 마찬가지이고요. 사서보든 도서관에서 보든... 꼭 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시간을 쓰게 하는 직업이죠. 본 사람이 시간 낭비했다고 느끼지 않으려면 적어도 재미가 있거나 의미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미라는 게 담보를 못해요. 나는 재밌는데 보는 사람이 안 재밌어할 가능성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확실한 방법은 의미입니다. 제가 말하는 의미는 꼭 감동이나 눈물이 아니고요, 오히려 ‘정보’에 가까워요. 프로그램 한 편을 봤을 때도 책을 한 권 읽은 것처럼, 몰랐던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노력해요. 그 방법이 제일 확실하거든요.
그것이 저에겐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신기한 동식물이라든지, <공생의 법칙>에 나오는 생태계 교란종의 폐해라든지, <녹색아버지회>에 나오는 쓰레기 먹는 스리랑카 코끼리의 현실 같은 거에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들을 좋아하는데 박진감과 긴장감 있는 스토리도 일품이지만, 소설마다 배경이 달라지고 지역의 역사나 정보가 은연중에 묘사되어 있으니 읽고 나면 꼭 여행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제가 만드는 프로그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Q. 오지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사건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가장 기억이 남은 사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데 하도 많아서 항상 답하기 어려워요. 특강에 가면 방송내용을 각색해 만든 만화책 『정글의 법칙』(김영사) 시리즈를 본 아이들도 항상 물어봐요. 나미비아에서 말벌 떼에 쏘이기도 했고, 바누아투에서 배가 뒤집혀도 봤고, 통가에서 태풍으로 일주일 간 고립도 되어봤어요. 남극 극점에서 카메라가 고장 난 적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을 굳이 뽑자면... 사건이라기보단 결국 사람이더라고요.
특히 초창기 바누아투 갔을 때가 제일 기억나요. 답사 때 여러 무인도를 돌아보다 적합한 장소를 찾을 수 없어서 며칠 간 허탕을 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제가 현지 원주민 가이드에게 화를 냈어요. 왜 얘기한 것과 다르냐고. <정글의 법칙>이 주말 프라임타임으로 편성 이동을 앞두고 있어 다들 예민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랬더니 현지인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한동안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무슨 말을 꺼냈는데 그 때 말투와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왜 너희는 돈도 많고 걱정도 없을 거 같은데 화를 내냐고. 하나도 안 행복해 보인다고.
그 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진짜 나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현타가 왔다고나 할까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생활 속 인문학자 아닐까 싶어요. 행복을 설명하지는 못해도, 행복을 삶으로 실천하는. 바누아투는 행복지수 1위 국가에요. 진짜인지는 그 나라에 가보면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진짜로 까만 피부에 이만 보일정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두가 웃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바누아투를 가장 좋아해요. 기회가 있으면 또 가보고 싶고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더 많이 배우고 싶어요.
Q. 극한의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후회한 날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오늘도 여전히 ‘정글밥’이라는 오지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계십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후회는 정말이지 전혀 없습니다. <정글의 법칙>이 코로나로 끝났어요. 그 때 후회보다는 허무함이 많이 들었어요. 평생 좋아하는 정글만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국내에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이왕이면 ‘정글’로 대표되는 자연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찾은 게 침입외래종 문제였어요. 중국에서 넘어온 생태계 교란종 등검은 말벌이 국내 꿀벌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사로 접했거든요. 이를 토대로 <공생의 법칙> 시리즈를 제작했어요. 그리고 뒤이어 쓰레기 문제를 다룬 <녹색아버지회>라는 환경프로그램까지 제작하게 되었고요. 그야말로 오지PD가 ‘어쩌다’ 환경PD까지 된 셈이지요.
하지만 마음속엔 항상 정글에 다시 가는 날을 꿈꾸고 있었어요. 마침 <녹색아버지회>에서 류수영씨와 인연이 되었어요. 당시 류수영 씨는 <편스토랑>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집밥 레시피로 유튜브 1억뷰를 달성하며 한창 셰프테이너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거든요. 얼마 전 『류수영의 평생레시피』(세미콜론)란 책을 내기도 하셨고요.
결국 새로운 기획은 제가 가진 자원에서 시작되더라고요. 그것이 저의 전작일 수도 있고, 출연자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정글’과 ‘류수영’을 조합하면 새로운 그림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오지에서 식문화 교류를 목표로 한 ‘정글밥’을 기획했고, 그토록 노래하던 다시 바누아투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Q. 오지(정글)와 같이 어려운 상황이나 환경에 처하면 ‘인간의 본성’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럴 때 피디님은 연출자(리더)로써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사실 남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어서 배고프고 힘들어하는 연예인들을 별로 신경 안씁니다. (웃음) 속으로 ‘출연료 많이 받는데 뭐...’ 라고 그냥 웃으며 넘어갑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오지의 어려운 이슈는 안전입니다. 제가 겁이 제일 많거든요. 이론상 리더는 표정관리 잘하고 항상 웃어야 정상인데 저는 항상 제일 먼저 겁에 질려요. 그리고 스탭들 모두 그걸 알고 있습니다. 놀림감도 되고요. 사실 제가 어린 나이에 입봉(메인 연출자가 되는 것)을 하여 다들 경험 많은 형, 누나들을 이끌고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신기한 건 제가 무서워하면 40여 명의 스탭들이 다들 앞장서서 나서줍니다. 제가 오히려 말리는 편이고, 스탭들이 자발적으로 굳은 일을 해줘요. 절벽을 먼저 오르고, 바다에 먼저 들어가고, 벌집 가까이 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하지요. 심지어 제가 스탭들에게 쉬라고 해도 쉬지 않고 촬영을 하기도 하고요. 반대이고 이상하죠. 하지만 저는 그게 우리 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스탭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웃음)
이런 게 바로 오랜 시간 쌓아온 친밀감, 신뢰, 팀워크 같은 거 아닐까요? 전쟁 속에 전우애가 꽃핀다고 하지요. 질문하신 오지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물론 인간의 나약한 본성도 드러나지만, 한편으로는 희생이나 의협심, 협동심 같은 인간의 긍정적 면이 나타나는 때도 많더라고요. 좋은 사람들만 모인건지, 아니면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니 서로 닮아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 신기한 경험입니다.
Q. 피디님은 예능 연출을 하지만 책도 쓰시고, 칼럼도 쓰시는데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전혀 아닙니다. 제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보시다시피 글을 못 써요. 그런데 사람이 무언가를 못하면 그거를 잘 해보고 싶다는 동경이 생기잖아요. 공부를 못하면 서울대 한번 가보고 싶다 이런 것 처럼요. 결국 서울대도 글쓰기(논술) 시험에서 떨어져서 못갔지만요. (웃음)
칼럼과 책은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겨서 쓰게 되었습니다. 칼럼은 대학생 시절 조선일보 인턴 경험을 통해 친해진 기자 선배가 갑자기 칼럼 자리가 빵꾸(?)났다고 해서 대타로 들어갔고요. 책은 PD연합회 공모에 기획안이 당선되었는데, 혼자 쓰기가 엄두가 안나 PD연합회를 통해 많은 동료분들께 도움을 요청해서 같이 쓰게 됐어요. 그 책이 『카메라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김가람 외 7인, 느린서재)입니다. 글재주가 없어 진땀을 뺐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기자님처럼 글로 먹고 사시는 분들을 더 리스펙트하게 되었고요, 어린 시절 꿈을 조금이나마 이뤄본 시간이어서 행복했습니다.
Q. 글쓰기가 예능을 연출하는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조건이라 생각해요. 요새는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타이탄의 도구들』(토네이도)이라는 자기계발서를 읽었는데 무조건 일기를 쓰라고 하더라고요. 생각도 정리되고, 나중에 인생을 복기하며 성장할 수 있다고요. 범생이 답게 좋은 얘기들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지요. 일기를 쓰니 꼭 연출에 도움 된다기보다 생각이 정리되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글쓰기보다는 읽기가 더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프로듀서란 결국 ‘Thinker’라고 생각하거든요. 생각이 기획이 되고, 기획이 영상이 되는 거니까요. 글쓰기보단 다양한 장르의 서적을 읽는 게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그게 창의성과 기획력, 혹은 정보력을 높여줄 수 있거든요.
또한 작은 예지만 책이 직접적으로 연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자막입니다. 제가 명언을 좀 좋아하는 편인데 자막을 쓰다보면 어디서 읽은 문구가 의식 중에 숨어 있다가 한번 씩 튀어나오더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정글의 법칙> 통가 편에서는 시를 한번 방송에 쓴 적이 있어요. 은하수를 운 좋게 찍은 적이 있는데 그 장면을 내보내며 자막을 어떻게 쓸까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하늘을 수놓은 수 억개의 별들’ 류의 뻔한 자막은 너무 쓰기 싫었거든요. 그 때 생각해낸 것이 윤동주의 시였습니다. ‘별헤는 밤’의 문구를 상황에 맞게 썼었고, 시청자 게시판에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Q. 가장 좋은 예능 피디는 어떤 피디라고 생각하시나요?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많은 시간을 촬영장에서 보냅니다. 사람들의 인생이 거기에 있으니까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씻기도 하고 노닥거리기도 하는 일상의 행복이 거기서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촬영은 누군가한테는 특수한 행위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스태프들에겐 일상이거든요. 촬영장을 학교라 치면 반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잡담도 하고 연애도 하는 곳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질문이 ‘좋은’PD를 물어보셨죠? 물론 높은 시청률을 내서 사람들을 많이 행복하게 해주는 PD도 좋은 피디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성공한’ PD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 하는 PD가 좋은 PD라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인간미가 실종될 수밖에 없어요. 조난 영화에서 보는 것 처럼요. 그럴수록 인간성을 지키고, 행복한 현장을 만들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해요.
Q. 피디님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조금 진지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신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를 전달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크리스천이거든요. 오지에 가면 마치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가 살 던 때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자연 한복판에서 바다와 숲이 주는 풍요로운 선물을 받으며, 필요한 만큼만 수렵, 채취하고 자족하며 살고 있어요. 대가족이 마을단위에서 아이를 양육하니 저출산이니 그런 문제도 없고요.
자꾸 얘기하지만 냉장고, 에어컨, 핸드폰, TV 없이도 우리보다 훨씬 많이 웃습니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행복지수가 높습니다. 어쩌면 성경이 묘사하는 천국에 가깝지요. 제가 정글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발전하고 있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더 행복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가득해요. 그리고 그 자연이 사라져 가는 것도 안타깝고요. 성경에는 ‘만물을 다스리라’나왔는데, 이건 군림하라는 뜻이 아니라 공생하며 살라는 말이라 생각해요. 인간이 신께서 창조하신 대자연을 진짜 잘 다스리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Q. 피디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선·후배 연출자나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이유는?
피디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딱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차인표 선배님입니다. <녹색아버지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반년 정도 함께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린 시절 “띠리리라리라라라~”의 팬이었거든요. 물론 분노의 칫솔질도 여러 번 돌려봤고요. 수많은 연예인과 함께 했지만, 차인표 선배님과 함께 한 시간이 가장 기억이 남아요.
일단 그렇게 카메라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정말로 스탭들을 하나하나 배려하고, 친절하시고, 젠틀하세요. 제작진을 존중해주고요. 또 그분의 책을 다 읽어봤는데 글도 기가 막히게 잘 쓰시더라고요(잘가요 언덕, 오늘 예보, 인어사냥 등) 이 인터뷰도 차인표 선배님이 주선(?)해서 하게 되었고요.
기억에 남는 선배님의 얘기는 ‘이 나이 먹고 아무거나 할 수 없잖아요’라는 멘트였어요. 항상 어떤 일을 할 때 이 일을 ‘왜’하는지 스스로 묻고, 또 그에 대한 답을 계속 찾아나가는 모습이 멋진 어른으로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 식사를 했는데 지금도 책을 쓰며, 호시탐탐(?) 좋은 일을 하실 기회를 엿보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지 꼭 한번 다시 일하고 싶은 분입니다.
Q. 김진호 피디님에게 ‘예능’은 무엇인가요?
밥벌이? 우아한 얘기를 하다가 현실로 돌아오네요. 웃음의 과학이니, 신이 창조한 세상이니 있는 대로 폼은 잡았지만, 사실 저도 PD이기 이전에 직장인이고, 남편이자 아빠입니다. 예능은 밥벌이를 하게 해준 고마운 장르입니다. 재미와 보람까지 느꼈으니 말할 것도 없지요.
사실 몇 년간 많이 힘들었어요. 고난의 신비(?)를 알기 위해 『욥이 말하다』(양복있는사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 같은 책도 찾아서 보기도 했고요. 물론 아직도 힘든 시기를 겪는 중이지만, 멀리서 바라보고 돌아보면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뻔한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욕심 한 스푼 보태면 예능PD이다보니 그래도 제 인생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희극이면 좋겠어요. 그렇게 앞으로도 쭉 예능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았으면 하고요. 마음처럼 되지는 쉽지 않겠지만요. 그리고 위에 언급했듯 인간만이 가진 ‘재미’, ‘정보’, ‘웃음’ 등을 버무려 신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열심히 홍보하고 싶어요. 거기에 스탭들과 함께 하는 현장을 천국까진 아니어도 행복한 곳으로 만든다면 바랄 게 없겠네요.
Q. 마지막으로 연출자도, 작가도, 칼럼리스트도 아닌 인간 ‘김진호’로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단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되는 게 꿈입니다. 아, 이건 남편이자, 아빠로서 얘기네요. 인간 김진호로 돌아가면요, 아까 잠깐 종교 얘기를 했는데, 요즘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디모데)을 다시 읽고 있어요. 아마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한 번쯤 읽어보셨을 거 에요. 2002년에 쓰인 책인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목처럼 인생의 목적에 관한 내용입니다. 책을 다시 읽는 이유는 교회에서 목사님이 읽으라고 시키기도 했지만, 사실 최종 목표를 정확히 못 찾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찾으면 좀 알려주세요(이메일 : zino@sbs.co.kr)
다만 거창하기는 싫습니다. 꼭 큰일하고 유명해지고 선한 영향력이니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럴 능력도 안 되고요. 그저 신이 나를 만드신 이유와 목적에 대해 정확하고 알고, 이를 행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정말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 직업과도 연관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아직도 답이 오리무중인지라, 이 문제가 요즘 제 인생에 가장 큰 화두입니다. 인터뷰를 계기로 답을 찾기 위해 인문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해봐야겠습니다. 바누아투도 한 번 더 갈 수 있으면 좋겠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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