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줄 평
“슬픔과 통증에는 유통기한이 없지만, 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시 한 편
<고백의 기술> - 하두자
한 죽음이 시작되었다
수목장으로 옮겨 간 그는
어슴푸레 읽을 수 있는 초봄 안부를
연두로 풀어 놓는다
이른 아침
낯선 사람처럼
봄꽃이 내 안에 핀다
산과 들을 헤매다 산벚나무에 뜨거운 나의 이마를 걸어놓는다
꽃가지 아래서 숨을 참아 본다
바람 불지 않아도 가만가만 말 걸어오는 대답
하려던 말과 몸짓으로 애써 꽃피우려 하지 마라
꽃나무 아래에
얼굴을 묻는다
실천하기 벅찬 말이 나를 위한 기도
연두와 분홍 사이
별을 가리키는 몸속 나침판을 믿는다
그냥 울음이 터진다
▲시평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초봄, 한 사람이 죽어 산벚나무 아래 묻힌다. “수목장으로 옮겨 간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봄꽃이 피자 바로 찾아간 것으로 보아 시인과 무척 가까운 사람으로 보인다. “어슴푸레”는 슬픔의 농도를, “낯선”이나 “헤매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심경을 대변한다. 눈물이 나 “연두”가 흐려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봄이 낯설어 몸과 마음이 헤매고 있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고인을 떠나보내지 못한 상태다. 수목장 나뭇가지에는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패를 걸어놓는 게 일반적인데, 이 시에서는 대상과 나무패의 존재 여부가 드러나지 않는다. 개인 소유의 수목장이라 굳이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산벚나무 아래 선 시인은 나무패 대신 “뜨거운 나의 이마를 걸어놓는다”. 이마가 뜨거운 건 고인이 묻힌 곳으로 가다가 오른 열기나 ‘사랑의 신열’일 수 있다. 아직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 것이다. “꽃가지 아래서” 고인과 하나가 되기 위해 숨을 참는다. 잠시나마 죽음의 고통을 느껴보려는 행위일 수 있다. 눈을 감고 고인을 생각하자 “가만가만 말”을 걸어온다. “애써 꽃피우려 하지 마라”는 음성을 듣는다. 사람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애를 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애써 피우려는 꽃의 정체는 “실천하기 벅찬” 일과 연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하늘의 별이 된 사랑하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내려다보고 있다. 시적 분위기나 ‘그’라는 인칭, “하지 마라”는 애정 어린 조언으로 보아 고인은 아마도 ‘아버지’가 아닐까. “별을 가리키는 몸속 나침판”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굳은 다짐이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애정, 그리움이 절절한 시다. (김정수 시인)
▲김정수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과 평론집 『연민의 시학』을 냈다. 경희문학상과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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