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관계를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트라우마 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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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0:00 기준

끝난 관계를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트라우마 본딩’

나만아는상담소 2025-08-11 13:37:23 신고

끝난 관계를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심리적 이유

이별은 관계의 법적인 사망 선고와 같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말하고, 당신의 이성 또한 그것이 끝났음을 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새벽 3시, 당신은 또 그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본다. 비공개 계정으로 바뀌었지만,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보인다. 최근에 바꾼 것 같다.

누가 찍어준 걸까.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인다. DM을 보낼까, 말까. 이성은 비명을 지른다. ‘미쳤어? 그 인간이 너한테 뭘 어떻게 했는데?’

하지만 감정은 다른 노래를 부른다. ‘한 번만 더. 그의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본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관계의 영토를 떠나지 못하고, 구글 지도처럼 그곳을 끝없이 확대하고 축소하며 배회한다.

그가 자주 가던 편의점, 함께 걸었던 한강 다리, 싸운 날 비를 맞으며 서 있던 버스 정류장. 모든 장소가 유령처럼 당신을 따라다닌다.

친구들은 단체 카톡방에서 당신을 걱정한다.

  • - “야, 그 쓰레기 좀 잊어라”
  • - “언팔하고 연락처 지웠어?”
  • - “정신 차려. 너 지금 정상 아니야”

당신도 안다. 비정상이라는 걸. 그런데 왜 이 비정상이 정상보다 더 강력하게 당신을 지배하는 걸까.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다. 마치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이 니코틴 패치를 붙이듯, 당신은 그의 흔적들을 하나씩 들이마신다.

그가 남긴 티셔츠 한 장, 함께 찍은 사진 속 그의 미소, 카톡 대화창에 남아있는 하트 이모티콘.

‘미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필사적이다. 이건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부러진 나뭇가지라도 붙잡듯, 당신은 그와의 기억 조각들을 부여잡고 있다. 놓으면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

당신이 느끼는 이 감정의 정체는 사랑이나 미련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의 흔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붙잡았던 동아줄의 흉터다.

심리적 학대 관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형성되는 강력하고 병적인 유대, 바로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이다.

불건전한 애착에 대한 사례 연구: 떠나온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

"학대적인 관계에서 트라우마 본딩이 형성되는 심리. 나르시시스트의 학대 순환(긴장-학대-보상-평온)과 간헐적 강화가 어떻게 병적인 애착을 만드는지 설명."

‘미연’ 씨는 1년간의 지옥 같던 연애를 끝냈다.

그녀의 연인은 이중인격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다중인격자에 가까웠다. 아침의 그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연인이었다가, 점심의 그는 차가운 타인이 되었고, 저녁의 그는 날카로운 비평가로 변했다.

  • - “너 오늘 왜 그렇게 입었어? 좀 이상한데.”
  • - “친구들이랑 만나는 거 또야?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재미없어?”
  • - “네가 좀 더 노력했으면 승진했을 텐데. 의지가 부족한 거 아니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정확히 그녀의 급소를 찔렀다. 외과의사의 메스처럼 정교하게 자존감을 도려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가 그녀를 무너뜨린 바로 다음 순간, 구원자처럼 나타나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는 거다.

“미안해. 내가 너무했지?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거야. 너도 알잖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는 그녀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사 오고, 넷플릭스 보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것 같았다.

이별을 결심하기까지 그녀는 수많은 밤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화장실 바닥에 앉아 조용히 울었다. 그가 깰까 봐. 아니, 그가 깨서 또 “왜 그래? 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물을까 봐.

마침내 이사 트럭을 불러 그의 집에서 자신의 짐을 빼내오던 날, 그녀는 해방감을 느꼈다. 택시 뒷좌석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깊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다시는 그 혼란 속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성적으로, 그녀의 결정은 완벽하게 옳았다.

이별 후 며칠간은 놀라울 정도의 평온이 찾아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그가 어떤 기분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퇴근 후 ‘오늘은 무슨 일로 화를 낼까’ 긴장하지 않아도 됐다. 카톡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그녀는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편하게 웃었다. 혼자 영화도 보고, 좋아하는 음식도 먹었다. ‘이게 정상이구나. 이게 평범한 일상이구나.’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의 빈자리는 거대한 싱크홀이 되어 그녀의 일상을 집어삼켰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그의 카톡 프로필을 확인했다. 상태 메시지가 바뀌었나,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나. 바뀐 게 없으면 안심하면서도 허탈했고, 바뀌었으면 가슴이 철렁했다. ‘누굴 만나는 걸까. 벌써 다른 사람이 생긴 걸까.’

이상하게도, 그가 자신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졌다. 대신 그가 얼마나 다정했는지에 대한 기억만이 선명하게 재생됐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던 그의 손길. 감기 걸렸을 때 죽을 끓여주던 그의 뒷모습.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고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

그녀는 이 기억들을 유튜브 영상처럼 반복 재생했다. 댓글란에는 이성의 목소리가 달렸다. ‘야, 그거 다 쇼였어. 연기였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 댓글을 무시하고 계속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그 사람, 나한테 정말 잘해줄 때도 있었어.”

친구들은 카페 테이블을 치며 화를 냈다.

“야! 그 인간이 네 생일날 뭐라고 했는지 잊었어? 너한테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냐’고 했잖아!”

하지만 미연 씨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변호하고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어렸을 때 상처가 많아서 그런 거야. 부모님이 이혼하고, 혼자 자랐잖아. 애정결핍이 심해서…”

친구들은 할 말을 잃었다.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변호인이 되어버린 이 아이러니한 상황. 그녀는 자신을 가장 깊이 파괴했던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충성심과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1시 47분.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잘 지내?’

단 세 글자. 물음표까지 합쳐도 네 글자. 하지만 그 네 글자가 그녀의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또 다른 게임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 메시지에 답하면, 다시 그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거라는 것을.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이성과는 상관없이 움직였다. 뇌에서 손가락까지 직통으로 연결된 신경이 있는 것처럼.

‘응, 잘 지내. 너는?’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도파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와 다시 연결되었다는 안도감. 이 지독한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그녀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그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마치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옆사람의 머리를 붙잡고 올라서려는 것처럼. 그것이 서로를 죽이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대의 심리학: 사랑과 트라우마는 어떻게 한 얼굴을 하는가

"트라우마 본딩의 본질은 사랑이 아닌 생존 본능임. 나르시시스트의 가스라이팅과 고립으로 인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원초적인 공포 심리."

미연 씨가 겪는 이 혼란스러운 감정은, 트라우마 본딩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예다.

트라우마 본딩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뇌의 적응 기제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일으킨 화학적 사고다.

마치 공장에서 화학물질이 잘못 섞여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것처럼, 사랑과 공포가 뒤엉켜 치명적인 중독을 만들어낸다.

1. 트라우마 본딩이란 무엇인가

트라우마 본딩은 학대적인 관계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느끼는 강렬하고 비이성적인 애착 현상을 말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6일간의 인질극이 끝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인질들이 인질범을 두둔하고, 경찰을 비난했다. 심지어 한 여성 인질은 인질범과 약혼까지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트라우마 본딩은 이 스톡홀름 증후군의 일상 버전이다. 총 대신 말로, 감금 대신 정서적 고립으로, 생명의 위협 대신 자존감의 파괴로 작동한다.

트라우마 본딩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힘의 불균형’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적, 정신적, 때로는 경제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황. 가해자는 피해자의 기분을 좌지우지하고, 하루의 색깔을 결정하며, 자존감의 수위를 조절한다. 마치 TV 리모컨을 쥔 사람처럼.

둘째는 ‘간헐적 강화’다.

도박장의 슬롯머신을 생각해보라. 만약 슬롯머신이 매번 돈을 뱉어낸다면? 사람들은 금방 흥미를 잃는다. 매번 돈을 잃는다면? 역시 그만둔다.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잭팟의 가능성. 바로 이것이 사람들을 의자에 묶어둔다.

학대적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인 학대 속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주어지는 다정함. 이것이 피해자를 관계에 묶어두는 마약이다.

2. 유대의 형성 과정: 학대의 순환이 곧 접착제다

트라우마 본딩은 학대에도 ‘불구하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대의 순환 ‘자체가’ 이 비정상적인 유대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접착제다.

1단계 – 긴장 고조: 폭풍 전야

관계에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그가 문을 닫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다. 젓가락을 놓는 방식이 거칠다. 대답이 짧아진다. “응.” “그래.” “몰라.”

당신은 레이더를 작동시킨다. 그의 표정을 스캔하고, 목소리의 톤을 분석하며, 눈빛의 온도를 측정한다. 기상청 직원처럼 폭풍의 진로를 예측하려 애쓴다.

‘오늘은 뭐가 문제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침에 인사가 짧았나? 어제 늦게 잔 것 때문인가?’

이 시기, 당신의 몸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근육이 긴장하고, 심박수가 올라가며,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다. 원시시대 인류가 맹수를 만났을 때와 같은 경계 상태.

2단계 – 폭발: 폭풍의 상륙

긴장은 필연적으로 폭발한다.

방아쇠는 사소하다. 컵을 싱크대에 놓지 않았다, 전화를 늦게 받았다, 그의 말에 0.5초 늦게 대답했다.

“넌 왜 맨날 그 모양이야?”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너같은 사람이랑 사는 내 인생이 한심해.”

언어는 둔기가 되어 당신을 내리친다. 그는 정확히 어디를 때려야 가장 아픈지 안다. 당신이 콤플렉스를 느끼는 부분, 가장 자신 없어하는 영역, 어렸을 때부터 상처였던 그 지점을.

피해자는 무력감과 공포에 휩싸인다. 코르티솔 수치는 최고조에 달한다. 심장은 터질 것처럼 뛰고, 손은 떨리며, 목구멍은 막힌다. 싸우거나 도망가고 싶지만, 둘 다 할 수 없다. 그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3단계 – 화해: 무지개의 등장

그리고 갑자기, 마법처럼, 폭풍이 멈춘다.

그가 다가온다. 표정이 부드러워져 있다. 손을 내밀어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안해. 내가 너무했지?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아서… 너도 알잖아, 내가 원래 이런 사람 아닌 거.”

그리고는 당신이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주고, 못 보던 넷플릭스 시리즈를 함께 보자고 한다. 연애 초기처럼 다정하게 안아주고, 귓가에 속삭인다. “사랑해. 너밖에 없어.”

이 순간, 당신의 뇌에서는 화학적 폭죽이 터진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벗어난 안도감. 지옥에서 천국으로 순간이동한 것 같은 극적인 반전. 이때 분출되는 도파민의 양은 일반적인 연애에서 느끼는 그것의 몇 배에 달한다.

마약 중독자가 금단 증상 끝에 마약을 투여받았을 때 느끼는 희열과 비슷하다. 고통이 클수록, 그 후의 안도감은 더욱 강렬하다.

4단계 – 허니문: 가짜 평화

관계는 일시적으로 평온해진다.

그는 예전의 그 다정한 연인으로 돌아온 것 같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주고, 퇴근길에 꽃을 사 온다. “어제 일은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

당신은 이 순간을 굳게 믿고 싶다. ‘이게 그의 진짜 모습이야. 저번 건 그냥 실수였어.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랬을 뿐이야.’

3단계에서 느꼈던 강렬한 도파민의 기억이 이 믿음을 강화한다. 당신의 뇌는 그 희열을 다시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음 폭발을 견딜 힘을 얻는다. ‘이 고통만 지나면, 다시 그 따뜻함이 돌아올 거야.’

이 순환이 반복될수록, 유대는 더욱 강력해진다.

당신은 고통(코르티솔)과 안도(도파민)의 극단적인 낙차에 생화학적으로 중독된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공포와 쾌감이 뒤섞여 기묘한 흥분 상태를 만든다.

가장 잔인한 건, 고통의 근원과 안도의 근원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이다.

당신을 절벽에서 밀어뜨린 사람이, 떨어지는 당신을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역설. 이 끔찍한 모순에 당신의 생존 본능이 길들여진다.

3. 사랑이 아닌 생존 본능

트라우마 본딩을 사랑과 구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랑은 안정감을 준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심박수가 안정되고, 호흡이 깊어지며, 근육이 이완된다.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

트라우마 본딩은 정반대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호흡이 얕아지며, 온몸이 긴장한다. 마치 지뢰밭을 걷는 것 같은 불안함. 하지만 이 불안함 자체가 중독이 되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갓난아기를 생각해보라.

아기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지도, 걷지도, 자신을 보호하지도 못한다. 오직 양육자에게 100% 의존한다. 그래서 아기는 양육자에게 절대적인 애착을 형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애착이 양육자의 ‘질’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양육자가 다정하든, 냉담하든, 일관적이든, 변덕스럽든, 아기는 무조건 애착한다. 생존을 위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새끼 원숭이들에게 두 가지 가짜 엄마를 제공했다. 하나는 철사로 만들어졌지만 우유를 주는 엄마, 다른 하나는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졌지만 우유를 주지 않는 엄마.

결과는? 새끼 원숭이들은 우유를 먹을 때만 철사 엄마에게 갔다가, 나머지 시간은 모두 천 엄마에게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실험이 있었다. 철사 엄마가 가끔씩 새끼 원숭이를 전기충격으로 공격하도록 설계했다. 놀랍게도, 새끼 원숭이들은 공격받은 직후 더욱 강하게 철사 엄마에게 매달렸다.

공포의 근원에게 위안을 구하는 이 역설적 행동.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 본딩의 생물학적 기초다.

학대적 관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가해자는 당신의 세계를 자기 자신으로 가득 채운다.

당신의 친구들을 하나씩 멀어지게 만든다. “걔는 너한테 나쁜 영향을 줘.” “걔랑 만나면 항상 늦게 들어오더라.”

가족과의 관계도 차단한다. “네 엄마는 너무 간섭이 심해.” “명절에 꼭 가야 해? 우리끼리 있는 게 더 좋잖아.”

취미 생활도 포기하게 만든다. “요가 다니는 거 돈 아깝지 않아?” “주말에 혼자 등산 가는 거 위험해.”

그렇게 당신의 세계는 점점 작아진다. 그가 당신의 유일한 우주가 된다. 다른 행성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그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위성이 되어버린다.

동시에 그는 당신의 자존감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

“너 요즘 살쪘네. 관리 좀 해.” “그 정도 실력으로 뭘 하려고 그래?” “너 아니었으면 벌써 더 좋은 사람 만났을 텐데.”

반복되는 평가절하에 당신의 자기 가치는 바닥을 친다. 당신은 정말로 자신이 못나고, 부족하고,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이제 그의 함정이 완성된다.

당신은 그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가 당신의 산소이자 물이 되었다. 그가 떠나면 죽을 것 같은, 아니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당신을 지배한다.

이때 당신이 그에게 느끼는 충성심과 헌신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이 사람에게 버림받으면 나는 끝이다’라는 원초적인 생존 공포에 대한 방어기제다.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이 썩은 밧줄이라도 놓지 못하는 것과 같다.

유대를 끊어내기: 감정적 독립을 향하여

"트라우마 본딩에서 벗어나 감정적 독립을 이루는 법. 자신이 사랑에 실패한 것이 아닌 생존자임을 인지하고, 관계를 끊는 '무연락(No Contact)'이 치유의 필수적인 첫 단계임을 강조."

당신이 그를 놓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나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당신의 생존 본능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 결과다. 문제는 그 생존 전략이 이제는 당신을 죽이고 있다는 점이다.

항생제 내성처럼, 한때 당신을 살렸던 것이 이제는 당신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이제는 완전히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첫 번째 단계는 명명(Naming)이다.

당신이 느끼는 이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트라우마 본딩이다.” “이것은 그리움이 아니라 금단 증상이다.” “이것은 운명이 아니라 중독이다.”

이 명명은 당신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진짜 정체를 존중하는 행위다. 암 환자가 자신의 병명을 정확히 아는 것처럼, 진단이 있어야 치료가 가능하다.

두 번째는 애도(Mourning)다.

당신은 두 가지를 애도해야 한다.

먼저, 그가 연기했던 ‘환상의 연인’을 애도해야 한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당신을 공주처럼 대했던 그, “너는 내 전부야”라고 말했던 그. 그 사람은 실재하지 않았다. 연극의 한 배역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실재했다. 그래서 그 환상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가 있다.

다음으로, 그 관계 속에서 잃어버린 당신 자신을 애도해야 한다.

한때 당당했던 당신, 자신감 있었던 당신, 혼자서도 잘 살았던 당신. 그 관계는 당신의 그 모습을 훔쳐갔다. 도둑맞은 자아에 대한 애도 없이는, 새로운 자아를 건설할 수 없다.

애도는 시간이 걸린다. 눈물도 필요하고, 분노도 필요하다. 친구의 위로도,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차단(No Contact)이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으려면 술집에 가지 말아야 하듯, 트라우마 본딩을 끊으려면 그와의 모든 연결고리를 차단해야 한다.

전화번호 차단, SNS 차단, 공통 지인과의 대화에서 그의 이야기 금지.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단 한 번의 접촉도, 그것이 단순한 “잘 지내?”라는 문자일지라도, 당신의 뇌에 다시 코르티솔과 도파민의 롤러코스터를 작동시킨다.

차단은 그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당신 자신을 위한 보호막이다.

네 번째는 재건(Rebuilding)이다.

텅 빈 땅에 새로운 것을 심는 작업이다.

그가 차지했던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운다. 요가, 독서, 그림, 무엇이든 좋다. 중요한 건 ‘당신만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가 끊어놓은 관계들을 다시 잇는다. 오랜 친구에게 연락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한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미안해. 그동안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이제는 달라질 거야.”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어떤 날은 다시 그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이 tsunami처럼 밀려올 것이다. 그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고, 그의 향수 냄새가 환각처럼 맡아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상기시켜라.

이것은 사랑의 아픔이 아니라, 뇌의 화학적 장난이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약해진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이.

그리고 언젠가,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를 잃은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되찾았다는 것을. 그것이 진짜 사랑이었다면, 당신을 이토록 작게 만들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진짜 사랑은 당신을 확장시키고, 성장시키고,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당신은 사랑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생존했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살아갈 차례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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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출간 안내

당신의 이야기는 ‘운명’이 아닌, ‘용기’가 될 거예요.나만 아는 상담소 첫 번째 책, 『운명이라는 착각』 출간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처럼 느껴졌나요?

그 아픔과 혼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관계 전문 심리 상담소, 나만 아는 상담소입니다.

저희는 수많은 마음의 상처 속에서 흩어져 있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정성껏 모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정서 학대, 가스라이팅, 교제 폭력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 고통의 실체를 당신이 쉽게 이해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요.

오랜 기다림 끝에, 그 마음이 드디어 ‘운명이라는 착각’ 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 책은 당신을 탓하던 세상의 목소리 속에서 당신의 편이 되어줄 다정한 친구이자, 아픈 관계를 끊어낼 용기를 주는 단단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그 착각의 안개를 걷고, 당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진정한 길을 찾아 나설 시간입니다. 그 길의 시작에 저희의 책이 작은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해주세요.

“이제, 잠시 눈을 감고 편안하게, 깊은숨을 한 번 크게 내쉬어 보자.
그리고 천천히 아팠던 이야기를 마주할 준비를 해 보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어둡고 긴 혼란의 터널 속에서
마침내 한 줄기 빛처럼 이 책을 발견했다.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 다.
그것은 바로 삶이 정체된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신호이다.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아가는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이제, 바로 지금,
함 께 시작해 보자.삶은 그 누구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것이며,
‘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서 충분히 사랑받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

– 운명이라는 착각: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법, 프롤로그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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